‘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 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가수 비의 히트 곡 ‘태양을 피하는 법’에 나오는 가사다. 노래 가사니 망정이지 실제상황이라면 더워 미칠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가? 위 노랫말은 한 여름 경주에 놀러온 사람들, 특히 아이를 동반한 분들의 애로사항을 담고 있다는 것을. 다음 대화에서 그 애로가 뭔지 알 수 있다. 필자와 울산에 사는 여자후배와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여름방학하면 아이들이랑 경주에 놀러오지 그래?” -“경주엔 잘 안가요.” -“아니, 왜?” -“볼만한 건 많지만 쉴 데가 별로 없어서요.” -“......” 경주시내는 사방으로 확 트인 평지 지형이다. 그래서 봄과 가을엔 시원한 뷰(view)를 제공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그리 덥지 않다. 하지만 여름은 다르다. 너무 더워서 위 노래 가사처럼 태양을 피하고 싶어도 그늘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경주에는 쉘터(shelter)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쉘터, 우리말로는 햇빛을 피할만한 쉼터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만약 쉘터가 부족해서 여름철 관광객이 경주방문을 주저한다면 이건 큰 문제다. 가뜩이나 인근 해수욕장으로 여름 손님을 뺏기고 있는 판에 말이다. 더욱이 피서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아닌가? 매슬로우 (A.H.Maslow)의 욕구 5단계 중 1단계 욕구, 즉 생리적 욕구다. 이 욕구의 충족 없이는 다른 건 기대할 수 없다. 관광객들은 이런 생리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곳엔 오지 않는다. 그럼, 해결방법은? 쉘터를 더 만들면 된다. 하지만 버스정류장 부스 같은 그저 그런 쉘터는 지양하자. 주변 환경과 어울리면서 ‘경주다움’을 보여주는 쉘터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이디어를 내 보자. 경주는 ‘알’의 도시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가 모두 알에서 났다. 왕릉은 알이 절반가량 땅에 묻혀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동부사적지대의 경우, 쉘터가 알 모양이면 제격일 것이다. 주변 환경에도 부합하고, 신라역사의 고유성을 보여주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쉘터가 음용수를 제공한다면 그 모양은 나정(蘿井)의 형상이면 좋겠다. 신라 건국신화의 배경인 이 우물은 상징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쉘터를 만드는 작업은 예술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술가들이 설치미술의 관점에서 쉘터에 접근한다면 도시의 이미지가 크게 개선될 수도 있다. 바로셀로나의 가우디(A.Gaudi) 같은 위대한 아티스트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공산품 같은 영혼 없는 쉘터가 양산되는 것만은 반드시 경계해야한다. 쉘터는 관광객들의 체류시간을 연장시키는데 기여한다. 여름이든 아니든 말이다. 머물면 한 푼이라도 더 쓰게 되고, 이곳에 더 매료시킬 수 있다. 나아가 예술작품 같은 쉘터에서의 달콤한 휴식은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도시의 가치까지 드높일 수 있다. ‘너를 너무 잊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넌 내 안에 있어’ 첫 줄의 노랫말에 이어지는 가사다. 만약 쉘터 조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관광객들이 함께 부를 노래가사가 될 것이다. 너(경주)를 너무 잊고 싶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넌(경주) 내(관광객) 안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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