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반대도 없고 사업성도 보장된 A 사업과 주민 반대와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한 B 사업이 있다. 사업자는 두 사업 중 어떤 사업을 해야 할까? 대부분 A 사업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B 사업을 택한 조합이 있다. 바로 경주시수협이다.
감포3리 주민들은 경주시수협이 주민 의사를 무시한 채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FPC)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가 건립되면 조망권과 일조권 침해는 물론 수산물 가공 시 악취와 폐수 처리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건립 중단을 요구했다.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는?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FPC)는 어업 전초기지 등을 중심으로 산지에서 수산물을 집적한 후 상품의 생산·판매 기능을 맡는 거점유통시설이다. 지역별 또는 품목별로 수산물을 집적한 후 세척단계에서부터 선별과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처리 가공을 통해 생산과 판매 기능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수협은 지난 2013년 해양수산부 공모사업인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 사업자로 선정됐다. FPC는 해양수산부 발족과 함께 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정부 국정과제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던 사업이다. FPC에는 국비와 도비, 시비에 수협 자부담 등 총 6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감포항에 가로 134m, 높이 18m 2층 규모로 전처리실, 위판장, 가동처리실, 급랭실, 수산단체 사무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왜 반대하나
감포3리 주민들은 FPC가 완공되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마저 사라져 버린다는 이유로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주민들은 조망권보다 주민을 무시한 수협의 일방적인 사업을 비난하고 있다.
감포 3리 개발위원회에 따르면 그동안 수협은 활어회센터, 냉동창고, 급유소, 어민센터 등 분별없는 사업으로 감포항을 점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바다가 보이는 마지막 감포 3리 앞에다 가로 130m, 높이 18m가량의 수산물유통센터를 건립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감포 3리 장충헌 이장은 “수협은 주민 공청회와 설명회 하나 없이 주민 피해는 무시한 채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공사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주민과 상생하지 않는 수협은 있어선 안 되며 감포 발전을 위해 공사 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수협도 주저하는 사업
수협은 FPC 사업 강행을 고민하고 있다. 노후화된 위판장 개선 사업을 위해 FPC 사업을 신청했지만 사업의 지속성 불투명과 주민 반대까지 더해져 사업 강행 타당성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수협은 처음부터 FPC 사업을 신청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2013년 수협은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위판장 개선이 시급한 과제였다. 수협은 위판장 개선 사업을 최우선에 두고 정부 지원금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부의 위판장 개선 지원 사업이 없어져 정부 지원금을 받기 어려워졌다. 수협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위판장 개선사업이 아닌 FPC 사업으로 지원금을 받게 된다. FPC 사업 내 위판장 현대화 사업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협 관계자는 “위판장 현대화사업이 주목적이었지만 정부 지원이 없어 FPC 사업을 신청해 지원을 받았다”면서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사회와 대의원회의를 거쳐 사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의 반대와 지자체의 강행 방침 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은 반대하고 사업자도 난감해 하는 사업. 시는 강행 방침?
경주시는 이 사업이 필요한 사업이라며 사업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이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다른 지원사업 신청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주시는 국비와 지방비를 받았기 때문에 사업을 해야 한다는 뜻을 고수했다.
시 해양수산과 관계자는 “지금까지 사업비를 받고 미이행한 사업은 없었다. 사업은 진행돼야 한다”면서 “민간사업이기에 무조건 강행을 요구할 수는 없다. 주민 설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안 된다면 사업비를 반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예산을 반납하면 다른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침상 사업비를 반납한다고 해서 패널티를 받는 것은 없다. 하지만 어렵게 예산을 마련해 줘도 쓰지 못한다는 인상을 남기면 다른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협조합장은 모든 것이 탁상행정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사업 중단 의지를 밝혔다.
전철호 수협조합장은 “FPC는 물동량과 수익성, 입지, 주민 타당성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입지를 선정해야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서 “수협이 시설 적자와 주민 반발까지 감수하면서 사업을 강행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위판장 현대화 사업은 꼭 필요하지만 가공공장은 들어와선 안 된다”면서 “돈이 내려왔다고 무조건 밀어붙여서는 안된다. 지금이라도 사업 타당성이 없다면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