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굴한 금관총에서 목조가구 흔적이 확인됐다. 이는 무덤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나무를 엮어 만든 구조물이다. 고신라시대 왕족을 비롯한 최고 지배층 무덤인 적석목곽분에서 이런 목조가구가 출현하기는 인근 대릉원 지역 황남대총에 이어 두 번째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월 23일부터 금관총을 재발굴한 결과, 무덤은 5세기 말~6세기 초 만들어졌으며 당시 왕과 왕족, 최고위급 귀족만 묻힐 수 있었던 거대 봉분의 지상식 돌무지 나무덧널 무덤(적석목곽묘)임을 확인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이 무덤은 지상에 나무덧널(목곽)을 축조해 망자와 부장품을 안치하고 장례를 치른 후 나무덧널 위와 사방 주위를 큰 강돌로 두껍게 쌓은 후 흙을 덮은 구조다. 현재까지 거대 봉분을 가진 신라의 ‘지상식’ 돌무지 나무덧널 무덤 중 발굴된 것은 서봉총,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있다. 이번 발굴에서 주목되는 성과는 일제가 당시 완전히 조사하지 못했던 금관총의 돌무지 구조를 확인하고, 돌무지를 쌓기 전 목조가구(나무를 이용해 기둥을 세우고 가로를 연결해 만든 바둑판 모양의 틀) 시설을 한 흔적을 발견한 점이다. 이를 통해 목조가구를 짜고 그 안에 돌무지를 축조해 가는 과정을 차례대로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발짝 진전된 조사 결과를 도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조사단은 망자와 부장품이 있었던 나무덧널의 크기가 일제 연구가가 제시한 것보다 좀 더 클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으며, 덧널의 수도 하나가 아니라 2개, 즉 이중곽일 수도 있음을 추정했다. 부장품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대부분 수습했기 때문에 이번 발굴에서는 당시 수습하지 못한 것에 주목해 조사를 진행했다. 나무덧널 주변의 흙을 물 체질한 결과, 유리 그릇, 은제 허리띠 장식, 유리구슬, 금실, 달개 장식이 달린 금실과 같은 부장품이 발견됐다. 이중 주목되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황금에 버금가는 귀중한 재료인 유리그릇이다. 비록 작은 조각만이 확인됐지만, 코발트색의 유리그릇 편은 당시 보고서에 없는 것으로 새롭게 확인된 부장품이다. 또한 은제 허리띠 장식도 일부 발견됐는데, 이 역시 일제강점기 보고서에 없는 새롭게 발견된 유물이다. 하지만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조사단은 금관총의 봉분 파괴가 극심해 크기를 짐작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봉분 주변 두름돌인 호석 흔적이 거의 없어져 정확한 크기를 가늠하기는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돌무지 경계인 적석부 남쪽 끝과 북쪽 끝은 최대 길이 20.7m로 측정됐다. 이에 따라 조사단 김대환 학예연구사는 “봉분은 아마도 40m가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봉본 기준으로 천마총이 지름 47m로 금관총의 규모가 거의 천마총에 맞먹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6월말 발굴 종료 후 조사단은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금관총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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