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중의 최고의 농사는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다. 100세 시대인 지금은 자식농사를 끝낸 후의 남은 노후를 어떻게 농사짓느냐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상교(60)씨는 봉사로 인생의 이모작을 시작하고 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들이 결혼할 때까지 내 삶을 잊고 살았죠. 딸 둘을 시집보내고 난 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 둘 시작 했어요” “처음에는 도자기 빚는 것을 해봤습니다. 2년 정도 했는데 힘들고 어려워서 그만두고 관심이 있었던 악기(색소폰)연주를 배웠습니다” 취미로 시작했던 색소폰이 재능기부를 다닐 정도로 실력이 늘기까지는 1년. 그 후 꾸준히 매주 2회씩 5년간 공연봉사를 다녔다고 한다. 의류업을 하면서 봉사를 다니기 위해 매장을 비우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 5년이라는 시간동안 가능했던 것은 처음 공연을 했을 때의 감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 공연 나갔던 곳이 경주푸른마을 이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그곳의 아이들과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의 연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정을 계기로 ‘더 열심히 연습해서 이들에게 멋진 공연을 즐기게 해주자’라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자신의 삶과 너무 달랐던 장애인들의 모습에 놀랬고, 그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느낀 상교씨는 멋진 연주를 보여주고 싶어 개인레슨을 받으러 대구까지 다닌다고 한다.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시작하니 이모작을 하는 기분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은 배움에 대한 욕심까지도 불러일으키더군요(웃음)” 그의 열정이 식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역할도 컸다. 연주를 배우러 다니고, 봉사를 하는 엄마를 멋지다며 더 열심히 하고 싶은 것 하라는 두 딸과, 남편의 지원은 상교 씨에게 자존감을 더해줬고, 연주를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해 한음, 한음 온힘을 다해 연주하고, 남은 인생의 농사를 멋지게 짓고 싶다는 욕심은 자신감을 더해줬다. “몇 년 뒤에는 저 역시도 제가 봉사 다니는 시설의 한곳에 있을거라 생각합니다(웃음). 하지만 그전까지는 열심히 배워서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직접 경험했으니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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