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경주는 볼 만한 게 많은데 홍보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모른다”라는. 사람들이 모르니까 경주를 찾지 않게 되고, 이것이 관광사업 부진의 원인이라는 거다. 열심히 경주를 홍보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조금 억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경주에 볼 만한 게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홍보부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는 두루뭉술한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홍보부족 말고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볼만한 것을 누가 결정하느냐?”라는 화두를 조심스레 던지고 싶다.
신라천년의 문화유산은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 안다. 교과서에도 실리고, 웬만한 여행서적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요즘도 불국사, 안압지는 인기 관광지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유산들은 “볼만한 것을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굳이 말한다면, 유구한 역사가 결정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우리 경주에서는 누가 볼만한 것을 결정하고 있을까? 문화관광 정책담당자일 수도 있고 관광업 종사자 일수도 있다. 더러는 우리 고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열혈시민일 수도 있다.
대체로 현지인들이 게이트 키퍼(gate keeper)다. 문제는 이들의 결정만으로 관광객들을 공략할 수 있느냐이다. 혹시 결정에서 누락된 것들 중에 관광객들을 매료시킬 볼만한 것은 없을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산내면에는 산 정상에 참숯 찜질방이 있다. 토요일에는 참숯 가마를 개방하여 삼초삼겹살을 구워먹을 수 있다.
찜질방이 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 것도 특이하지만, 참숯에 삽으로 삼겹살을 굽는 체험은 매우 이색적이다. 함께 간 지인들도 색다른 체험에 매우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나 이곳은 경주의 현지인들에게는 별로 특별한 장소인 것 같지 않다.
보문호반길을 자정 넘어 가본 적이 있는가? 야간조명과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늦은 시간에도 유유자적 이곳을 걷는 사람들을 꽤 많이 목격할 수 있다. 필자의 지인들도 꽤 경쟁력 있는 장소라며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자정이 넘은 시각의 아름다운 호반길이 홍보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필자가 보기에 색다른 장소인 참숯 찜질방과 야간호반길은 현지인의 시각에서는 별로 볼만한 곳이 아니다. 볼만한 곳이 아니기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예 홍보대상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홍보부족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럼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필자는 홍보대상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참숯 찜질방은 일반적으로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청정 공기, 참숯 가마, 삼초삼겹살은 휴식과 충전을 원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조건들이다.
포항이나 울산 같은 인근 공업도시 거주자에게는 산속 찜질방 체험이 일상탈출을 위한 꽤 낭만적인 시도일 수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가 수도권 거주자들의 일상탈출 욕구를 절묘하게 자극하여 성공한 사례란 걸 잊지 말자. 야간 호반길은 전국에서도 흔치않은 야간 명소이다.
아직은 야간에 즐길만한 유흥시설이 충분치 않지만 야간 호반길이 아름답고 즐거운 장소라고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해 보자. 차를 가진 인근지역의 연인들을 밤마다 보문으로 끌어들여 볼까?
이런 시도들이 보문 야간 관광상품 개발의 도화선이 되고, 나아가 보문 관광 생태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어떤가? 이 정도면 홍보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는가? 가치를 인식하면 누구든지 많이 알려야 한다.
특히 교과서에 나오는 천년의 문화유산을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주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매력’은 현지인보다 외지인의 눈에 더 잘 포착된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외지인은 늘 관광객의 시각으로 경주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주의 볼만한 것을 주로 결정했던 현지인은 외지인의 시각을 더 참고할 필요가 있다.
외지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자. 특히 경주에 스스로 매료된 현자(賢者)들의 조언은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시각에 대한 열린 수용이 경주 관광의 난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