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성의 강퍅한 현실에 마치 편백나무 향 같은 내적 성찰을 유도하는 산문집이 발간됐다. ‘먼지까지도 정화시킬 것 같은 여자의 기도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감화시켰다. 종교 그 자체 같은 진실의 힘이었다’ 고 책 머리에 적고 있는 강석경 작가의 ‘저 절로 가는 사람(마음산책)’ 이 그것이다. 저자 강석경은 경주 고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연을 맺은 지 20여 년째인 경주의 보배로운 작가다. 지난달 29일 황남동의 한 커피집에서 만난 강 작가의 손에는 예의 그렇듯 ‘허균의 생각’ 외 두 권의 책이 들려져 있었다. 틈만 나면 동국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그의 행보답다고 생각했다. 기자는 그의 신간을 읽으며 온통 밑줄을 그어댔다. 책을 덮으면 다시 치열한 삶의 현장속에서 부대끼겠지만 고요했던 울림은 버거운 일상을 버틸수있게 할 것이다. 원론적이고 ‘드라이’한 기자의 질문에도 그에게선 여전히 매혹적인 문학의 향기가 배어 나왔다. 그의 이번 신작은 ‘문학적이면서도 종교적이다. 독특한 에세이다’라는 평을 얻고 있다. 작가는 전국의 절을 오가며 스님부터 행자, 재가 불자 자연과학자까지 만난 인연과 감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문학적이고도 종교적인 문체로 엮어낸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쏟아지는 ‘진리의 비’를 맞으며 가진 환희심을 삭힌 결정체다. 저자는 때가 되면 마치 의식을 행하듯 절로 향했다. 통도사, 송광사, 해인사, 화운사, 불국사까지 모든 이에게 너른 품을 열어 준 전국 방방곡곡의 고찰을 돌아다녔다. 이 책에서 그는 깨달음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에 틈을 열고 지친 영혼을 위무한다. 깨달음과 진리에 대한 갈망을 삶의 명징한 언어로 탐색하며 그윽하게 이끌고 있는 것. ‘화엄산림법회에 영가를 청했다. 동생 은경과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최인호 선생과 지인의 위패까지 함께 올렸다. 글로 자신을 소진시키고 원대로 원고지 위에 못 박혀 스러진 작가,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둠의 포대기에 질식해 서둘러 이승을 떠났지만 결벽한 흰 뼈로 우리가 죄인임을 가르쳐준 동생, 무거운 생의 짐을 바둑판 위에서 조용히 풀려 했던 아버지, 이들은 벌써 땅의 매듭을 풀고 하늘에서 안식하고 있을 테지만 화엄의 바다에 갈매기처럼 잠시 내려앉아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라고 쓰며 자전적 아픔도 녹였다. ‘승이되 승을 사절하고 속이되 속을 넘어 선 바로 그 경지에 닿으시네. 삶에는 여기저기 떠돈 발걸음의 회포가 깔려 있어야지. 이 무욕의 글들 가운데서 그런 세월의 기척과 비탈 내려오는 발소리 적요하게 들려오시네’ 작가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고은 시인이 흔쾌하게 써 준 한 편의 시와도 같은 발문은 책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문학이 내 중심이긴 했지만 워낙 불교에 심취해 있었고 부처님에게 의지하곤 했다. 젊은 날은 고뇌의 시간이었고 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불교는 마음의 공부고 마음이 영원한 숙제라는 걸 알았다. 자기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결국 문학은 구도였고 업이란 인간의 불완전에서 연유한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하며 “2009년 동국대학교 화공 스님의 선문화 강의를 듣고 오아시스를 만난듯한 환희를 느꼈고 불교에 더욱 다가갔다”고 했다. 그는 ‘가까운 골짜기’, ‘미불’, ‘신성한 봄’ 등 세 편에서 예술가의 삶을 다루었다. 2012 ‘신성한 봄’ 이후 작가의 또 다른 주제였던 ‘종교’로 영역을 달리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월간중앙에서 연재 제의가 왔고 송광사 이야기를 필두로 절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본격적 구도자의 소설을 쓰리라는 생각을 했고 그 전초 작업으로 이 책을 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하는 이들에게 종교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싶었다. 여러 종교가 극성을 피우는데도 불구하고 인성은 너무 피폐하지 않은가. 그래서 불교를 좀 더 친숙하게 알리고 싶었다”며 지금 우리는 지나치게 물질중심적이고 외피 위주인 것에 대해 일갈 했다. “탈북자(새터민)를 주인공으로 하는 환타지를 가미한 동화 한 편과 본격적 구도자 소설을 쓰려고 구상중이다. 또 기행문과 더불어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세계적 작가를 찾아가는 ‘21세기북스’에서 제안한 기획을 받아들였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작가 토마스 만의 작품 이야기와 작가의 시선으로 보는 작가의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며 향후 집필 계획을 밝혔다. 강 작가는 ‘생은 자기를 찾아가는 구도(求道)’라고 했다. 이번 신간은 불심이 깊은 독자뿐만 아니라 불교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에게 가까운 절에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당을 밟을 수 있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보듬고 있는 작가에게 ‘진정한 고향’으로 역할하는 경주를 선물하는 일은, 절정의 문체로 지금이야말로 원숙기를 맞이하고 있는 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마음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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