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봤는지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마음 깊숙하게 각인된 광고가 있다. 장소는 손님이 몰린 어느 레스토랑 주방이다. 음식주문 지시도 내리고 간도 보며 정신없이 주방을 휘젓고 다니는 주방장, 그리고 화면 한가운데서 감자를 까고 있는 두 남자. 그 중 오른쪽은 어눌한 얼굴의 장애인이다.
손놀림으로 봐서 둘은 수습 과정 중인 모양이다. 갑자기 주방장이 둘에게, 그것도 장애우 귀에다가 고함을 지른다. 정황상 ‘음식을 주문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꾸물거리냐?’고.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어색해진다. 비장애인 요리사는 초조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 하는데, 어라? 시간이 지나면서 실~실 웃는 장애인 요리사가 수상하다. 시청자들이 이게 뭐지? 하고 궁금해 할 즈음에 “(주방장은) 날 정상인으로 대해주는구나” 하는 자막이 행복한 장애우 얼굴 위로 오버랩 된다.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자는 공공캠페인 성격의 광고였다. 욕을 먹고 꾸중을 듣는 상황이었지만 그 초짜 요리사는 정말로 행복해 보인다. 정상인으로 대해준다고, 선배가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욕(!)해준다는 사실 하나로 말이다. 인면수심의 주방장은 어느새 로맨티시스트로 바뀌었다.
‘인간에게 행복이란 예외 없다’는 절대 원칙을 확인하고 우리는 비로소 안심한다. 그래, 행복이다... 행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물이나 공기 같은 존재다. 주방장에게 인정받는 느낌도 당연히 행복이다.
이 험한 세상을 기어이 살아내려는 의지이며 명분이고 또 원동력이다. 부모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거나 기꺼이 기러기아빠가 되려는 것도 행복의 구체적 모습이다. 무한경쟁의 한국사회에서 내 자식은 아마 평생 행복하지 못할 것 같은 우려에서다. 우리는 이미 늦었지만 아랫세대에게만은 행복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다.
그것이 멀리 북유럽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스웨덴, 핀란드 같은 교육 선진국에서 우리 자식의 행복을 찾아보려는 억척스런 모습이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이다. 잘 사는 상위 1%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서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니 우리는 정말 행복하지 않은가 보다.
유럽에서 오래 산 한 블로거가 ‘북유럽 기러기(아빠)가 되기를 희망하는 한국의 부모님에게’ 라는 이름의 기사를 올렸다. 이민에 관한 정보나 생활 전반에 대한 정보를 올린 후, 그 블로거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자녀에게 좋은 경험과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한국 부모의 태도에 무한한 공감과 존경을 표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장기를 팔아서라도 하겠다는 부모의 마음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크게 놓치는 부분이 있다. 당신이 대안으로 꿈꾸는 북유럽은 아이가 중심인 사회가 아니다. 부부가 중심이다. 아이는 선물이고 부부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표일 뿐이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이 그 자체다. 가정은 부부가 서로 이야기하고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걸 보여주는 산 교육장이다. 아이가 그 증인이다. 자녀들에게 (행복을) 주려고 해도 그것은 아이들이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 아이는 이미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은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일상, 그 단순함이었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들도 그것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부모 스스로 행복하지 않거나 그런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자식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겠냐는, 한국을 상대로 한 장군죽비 소리다. 아이는 목마르다고 냉수 한 잔 달라는데, 사랑한다는 핑계로 뜨거운 미역국 한 그릇을 권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