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등재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처용무를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부활을 시도해 드디어 ‘실크로드경주2015’에서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하고 있는 이들의 중심에는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성혜 학술팀장이 있다. 그의 처용무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학술적 고증 등의 애정이 근간이 돼 발화된 것. 처용가는 현전하는 신라의 대표적 향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울산에서 수년째 처용문화제를 개최해 오고 있고 있는 차제에 안타까움을 느낀 김 팀장은 ‘1848년 헌종무신진찬의궤’를 읽다가 당시 전국의 선상(選上)기녀들 중 경상도 기녀는 특히 처용무를 잘춘다는 기록을 보게 된다. 처용무에는 반드시 경주와 안동에서 3명씩 그 지방 사람을 올려보내라는 기록이 있었다고. 그 기록에는 기녀 이름도 명시됐다. 1962년 신라문화제가 처음 개최될 당시 서제를 올릴때 처용무를 춘 것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김 팀장은 “처용무는 조선 후기까지 춘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시 중단되었다가 1923년 일본의 요청에 의해 아악부 이왕직이 재현한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단절되고 1963년 국립국악원에서 부활된다. 당시 국립국악원에 재직중이던 김용이라는 이가 처용무를 전승한다. 김용은 한국전쟁때 경주로 피난 와 이말량(경주출생. 경주 동도국악원의 사범)씨 옆집에 살았고 처용무를 배우게 됐다”고 했다. 다시말해 경주에서 처용무를 배워 상경한 이다. 따라서 현재 처용무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보유자인 김용 선생은 경주와 그 맥락이 닿아있는 셈이다. 처용무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80대인 김용 선생은 전국 어디든지 전수관을 지어주는 곳에 가서 전수하겠다고 하자 울산에서 발 벗고 나서는가 하면, 신라문화동인회에서도 선생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신라문화제 처용무 공연시에도 경주에서 처용무를 추는 이가 없어 부산, 울산 등에서 초빙해 처용무를 추는 것을 보고 김 교수는 개탄했다. 이에 “우리 경주 사람이 처용무를 춰야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원래 신라의 처용무는 독무였으나 고려에 와서는 쌍처용으로 2명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오방처용이라고 해 5명이 처용무를 췄다. 지금도 이 오방처용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되고 있다”고 했다. “2012년 대구시립국악관현악단 무용단에 처용무를 잘추는 제자가 있어 그를 초빙해 경주 시민 5명을 선정해 동경관을 빌려 배우게 했다. 레슨비는 모두 자부담이었다(웃음)” 이렇게 경주에서 배운 처용무를 시연을 하자는데 중지를 모으고 공연을 시도했으나 난관에 봉착한다. 처용가면이 없고 의상도 없었던 것이다. “대여비도 엄청났고 제작에는 2000여 만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중단됐다. 지난해 12월, 경주시의 실크로드경주 2015와 사업 연계성을 확보해 처용무 복원도 탄력을 얻게 됐다. 처용무에 관심있고 국악 관련자를 공고해 모집한 결과 30명의 시민이 모였고 안무는 김용 선생의 이수자 김용목 선생을 초빙해 올 3월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또 처용탈과 의상 등 일체를 경주사람의 손으로 제작해보자는 의도로 서울 국립국악원에서는 1492년 악학궤범을 복원해 처용무를 공연 중이나 경주는 헌종무신진찬의궤에 초점을 맞춰 제작하자고 착안한다. 헌종무신진찬의궤 그림의 5명 중 2~3명은 경주 사람이다. 이번 복원은 전국 유일의 독자적 경주처용탈과 의상이 되는 것이다. 한편, 처용탈은 박경희 조각가가 자발적으로 제작을 지원해주었다”고 했다. 김 팀장은 “쳐용무는 경주에서 가장 잘 췄다는 옛 문헌기록도 있는 우리 경주의 귀한 문화며,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록이 된 상황이다. 우리의 처용무를 지키고 보존해 문화관광자원화 해야 한다. 올해는 실크로드경주 2015 사업비 예산으로 공연되지만 이런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로 어렵게 부활이 되고 있는 만큼 김용 선생과 이수자를 함께 모셔 와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시의 지원이 아쉽다”면서 “‘신라처용무 보존회’를 발족시키자고 제안한 상태다. 이러한 열기를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라시대 처용무가 지금까지 존속된 것은 처용무를 추기 시작한 당시부터 ‘악귀를 쫓는’ 민간 신앙이 원동력이었다. 워낙 민간에서 활성화되니까 궁중에서도 수용이 되었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귀신을 쫓는 의식으로 반드시 처용무를 추게 한 것이다. 이는 후일 궁중 잔치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등장해 전체 연희를 정리하는 의미로도 췄다. 김 팀장은 “경주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추지 않았던 처용무를 60~70년대부터 신라문화제에서 공연했다. 이는 우리 경주시민들이 전통을 잘 지켜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을 계승해 온 이러한 요소들이 내재돼 있어 오늘에 전승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탄생한 독자적인 경주의 처용무는 실크로드2015 시민참여 공연으로, 행사기간 내 9월 중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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