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필자는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도시가 좋다. 경복궁이 없는 서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목포도 근대화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어서 더 멋있어 보인다. 일본의 교토를 가거나 미국의 시골 조그만 도시를 가도 카우보이가 활보하던 그런 모습이나 금광 붐이 불었던 그런 역사가 느껴지는 도시가 아름답고 멋있어 보인다. 경주는 단연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최근에 경주는 반월성, 월지, 첨성대, 불국사보다도 현대적인 휴양지로 알려진 보문의 매력 때문에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는 보문단지에 컨벤션 센터를 포함하여 새로운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반가운 뉴스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역사 유적지가 그렇게 매력적인 유인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보문단지가 외국의 휴양도시만큼 몇 달씩 머무르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 아닐진대 시내권 유적지가 보문단지에 밀린다는 것은 그만큼 시내유적지가 관광객들에게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마디로 시내 역사 유적지는 한나절 보고 나면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시내 유적지가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반월성을 가보니 오사카성이나 구마모토성을 본 사람에게는 성같이 보이지도 않고 월지를 가보면 소주의 정원이나 북경의 이화원에 비하면 너무 작아 보이고 첨성대는 규모면에서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하다. 천마총을 포함하여 거대한 봉분들이 매우 이색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무덤이기에 가까이 느끼기는 어렵다. 시내에 있는 한옥들의 모습들은 억지로 전통한옥을 흉내 내기만 해 우리 전통 한옥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는 흉한 모습들뿐이다. 신라 시대의 마을 모습을 복원하기 어려우면 양동마을이나 하회마을 아니면 전주 한옥마을이라도 흉내를 내는 것이 현재의 모습보다는 훨씬 보기 좋을 것이다. 필자도 경주 시내 유적지의 이런 모습보다도 오히려 그림 한 장에 더 흥분을 하였는데 이는 경주 시청 알천홀 전면에 그려져 있는 경주 왕경도의 그림이다. 긴 역사의 시간 속에 폐허화된 잔재로 남아있는 유적지가 아니라 신라 당시의 서라벌 왕경의 모습을 보고 싶다. 맥락이 없어진 월지가 아니라 왕궁 안에 하나의 작은 정원의 모습으로서의 월지의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다. 폐허화된 유적지 안에서는 신라인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데 왕경의 그림에서는 바로 신라인들이 살아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애석하게도 알천홀에 그려진 경주의 왕경도대로 경주가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이 중 일부만 복원될 계획이라 한다. 2025년에는 계획대로 일부라도 복원된 왕경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바란다. 10년 후가 아니라 100년 후에는 완성된 왕경도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 왕경은 영화세트장 같은 모형으로서 건축물이 아니라 경주 시민이 그 안에서 장사도 하며 사는 왕경이 복원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때가 되면 스쳐가는 경주가 아니라 머물고 가는 경주가 될 것이고 관광객을 보문단지에 빼앗긴다고 불평하는 시내 상인들이 신라인의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신라인들이 살아 돌아와 현재의 경주의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원망을 하고 있을까? 많은 면에서 역사는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퇴보해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를 복고적 낭만주의자라고 치부해도 좋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대화된 도시로서의 경주의 모습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라만의 경주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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