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의 아들·딸들은 모두 잘났다. 공부면 공부, 취직이면 취직 못 하는 게 없다.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 안 다녀오고도 토익점수가 엄청나고, 대학 졸업하자말자 그 어렵다는 S회사에 떡~하니 붙었다고…항상 무엇이든 잘 하고, 쉽게 이루며, 그 결과 또한 깜짝 놀랄 수준이다.
그래서 생긴 말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고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다. 공부든 취직이든 무한경쟁 시대에 좋은 소식이니 축하해 주는 게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반짝거리는 1%의 엄친아를 위해 나를 포함한 평범한 나머지 99%의 아들, 딸들은 어두운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 친구의 아들’ 현상으로 드러난 것 중 하나는 한국 사람들의 ‘비교 행복관’이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나 근처에 얼씬도 못 하던 애였는데, 시집 잘 가더니 지금은 사모님 소리 듣는다고 동창 모임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들고 온 가방이며 입은 옷을 흘깃 쳐다보는 동창들 표정도 나와 다르지 않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해 주는 대신 질투하고 시기함을 이르는 말이다. 시기와 질투도 본능이지만 비교도 그렇다. 똑같이 나눴더라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다. 비교도 본능이라지만 우린 그것이 좀 심하다. 비교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 하는 데서 시작되니 문제다. 엄친아의 노력과 그 결과에 대해 우린 박수를 치지만 진심은 아니다.
타인의 성공이, 반짝거리는 그 행복이 부럽기에 순수해야 할 박수는 질투와 시기심으로 변질된다. 급기야 아무 죄 없는 내 아들 딸을 엄친아 너머 비교항으로 세우고는,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박수로 시작한 일이 ‘비교’ 과정을 거치며 불행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왜 남의 행복을 기어이 나의 불행으로 허전해 하고, 왜 지금 우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할까? 누가 그랬더라? 유독 한국 사람들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행복이 결정된다고. 가령 타인이 1만5000원 가지고 내가 1만원 가지는 경우보다, 남이 800원 가지고 내가 1000원 가지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남이야 얼마를 가지든 객관적으로는 내 주머니 속의 만원은 1000원보다 10배 낫다. 하지만 ‘비교 행복론’에 따르면 내가 가지는 금액보다 상대방의 금액이 더 적기만 하다면 비록 적은 돈을 가진다 해도 내가 절대적(?)으로 행복하다는 논리다. 즉, 내 행복은 내가 아닌 남 주머니 속에 달렸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자들은 누가 폼나는 차로 바꾸면 멀쩡한 내 차도 따라 바꾸거나, 그럴 능력이 안 되면 멀쩡한 차를 이유 없이 똥차로 구박하게 된다. 아내들도 동창모임에만 갔다 오면 불행모드다.
동창이지만 지금은 사모님으로 불리는 그녀들의 핸드백, 구두, 밍크코트, 물방울처럼 생긴 다이아반지가 뇌에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 속마음도 모르고 와이프 눈앞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얼쩡거리다 그만 꽝!! 그 결과란 예상한 대로다.
‘세계 행복의 날’(3월 20일)을 맞아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조사를 해보니, 한국의 행복은 전 세계 143개국 중 118위였단다. 이미 행복을 성적 순으로 줄 세우는 것 자체가 무리는 있다지만 우리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갤럽은 지극히 주관적인 행복의 척도를 다섯 가지 기준으로 평가했다.
첫째, 어제 잘 쉬었는지, 둘째, 존중받았는지, 셋째로 자주 웃었는지, 넷째, 재미있는 것을 배우거나 했는지, 마지막으로 얼마나 즐거웠는지로. 행복에 대해 참 간단하고 명료한 기준이란 점에서 씁쓸하다.
우리가 이렇게 간단한 기준조차 충족치 못하며 살아왔구나 하고 말이다. 이 기준에 남의 반지나 차에 얼마나 궁금한지가 없는 걸 보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행복은, 또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다른 나라와 다르다.
인상을 팍팍 써가며 이 글을 어떻게 마칠까 고민하는 필자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 녀석을 붙잡고 물어봤다. “넌 뭐가 그리 신나냐?” 하니 아들 녀석은 “아빠, 일곱 밤만 자면 어린이날이잖아!” 하고 온몸으로 행복해 한다. 받아쓰기 20점 맞았다고 엄마한테 꾸중들은 지 얼마 안 된 녀석이 저래도 되나 싶다. 여기서도 비교가 문제다. 아빠는 우울하고 자신에 충실한 아들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