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화 한편이 인기몰이 중이다. 만화에 기반한 영웅 이야기인데 수퍼맨처럼 혼자서 악당을 물리치는 게 아니다. 영웅이 아주 떼로 나온다. 천둥을 마음대로 다루는 토르, 과학자와 온몸이 초록색 괴물인 두 얼굴의 헐크, 천하의 바람둥이에 백만장자이기까지 한 강철 갑옷 아이언맨, 근육도 평범하나 이름 때문에 대장 역을 맡은 캡틴아메리카 등이 만들어가는 〈어벤져스 속편〉이 그것이다.
아무리 만화라지만 사실 영웅은 그 당시 시대 정서를 엿볼 수 있는 키워드다. 슈퍼맨만 해도 그렇다. 스타킹 위에 팬티를 입어서 그렇지 백인 피부에 파란 눈, 남성미를 상징하는 각진 턱, 근육질 몸매, 지혜를 상징하는 검은 머리 등의 조합은 그 사회가 어떤 영웅을 필요로 하는지 문화인류사적 맥락으로 접근을 가능케 한다.
만화 속 영웅이 그저 코흘리개 애들만을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중요한 임무의 영웅을 골라 모아놓은 영화 〈어벤져스〉는 화려한 볼거리만큼이나 논란거리도 화려했다.
미국 영웅들만 나오는 영화 제작에 우리 정부가 막대한 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서울 신(scene)을 집어넣어 서울을 최첨단 기술 도시로 촬영해 주면 서울에서 촬영되는 총 경비의 3분의 1을 대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잘 찍을 수 있도록 도로 통제 해주고 경찰 지원 아낌없이 해줬지만, 보안을 이유로 촬영 영상을 국내 개봉 이후로 미루었고 환급을 위한 영화진흥위의 심사도 시사회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다. 어째 모양새가 돈을 받을 사람보다 주는 한국 정부가 더 안달이다.
사정이 이러니 하다못해 오이를 잘라도 이쪽 면과 저쪽 면이 생기듯 여기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제작비만 2700억 원 규모고 전 세계 예상 흥행수입만 2조 1600억 원 정도인데,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그 정도 편의도 못 봐주냐 한다. 한국관광공사도 한국 촬영으로 4000억 원의 직접 홍보효과와 2조 원 정도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리라 내다봤다.
반론도 만만찮다. 우리끼리야 영화 속 장소들을 알아본다지만 외국인 관객들은 얼마나 알아채겠느냐는 것이다. 서울에서만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영국(런던), 남아공(요하네스버그), 이탈리아(아오스타밸리) 등 세계의 유명도시도 다 나오는 판에 말이다. 차라리 그 환급액 39억 원을 우리 배고픈 학생들한테 쓰는 편이 낫겠다고 혈세 낭비 운운한다.
미국 영웅 만들기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된 서울 시민이 치러야 할 비용, 예를 들어 촬영으로 인한 교통 통제의 감수 등은 또 어떻고. 어쨌든 논란 속에 영화는 개봉되었고 이러쿵저러쿵 노이즈마케팅에 힘입어서 나라가 당분간은 들썩거리겠다.
아들의 성화에 떠밀려 이 영화를 보긴 했지만 감동, 재미, 한국 국가이미지 제고 모든 면에서 낙제 점수를 주는 필자는 차라리 다른 영화 한편을 추천한다. 필요 이상으로 과열된 이즈음에서 한 숨 고를 필요도 있겠다 싶어 말이다.
모든 영화가 놀이동산의 기구처럼 정신없이 휘몰아갈 필요는 없으니까. 뭔가 특별하거나 극적인 전개가 없어 자칫 무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웅이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달렸다면 이 영화는 생수통 하나 들고 하릴없이 어슬렁대는 듯한 느낌이랄까.
영화 가 그렇다. 박해일과 신민아 주연의 이 예술영화는 경주의 조용한 찻집을 보여주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려주며 경주만의 정서인 추억을 그저 롱테이크로 담아낸다. 그러다가 어느 그림 속 글귀도 무심하게 비춘다.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영화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다면 이런 심심한 영화도 나름 의미 있지 싶다. 비록 한강이나 63빌딩, 디지털미디어시티 같은 멋진 이미지는 아닐지라도 렌즈 너머 경주 그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