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의『생각하는 인문학』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3시간 이상을 스마트폰 사용에, 또 3시간 이상을 TV 시청에 소비하면서 1년에 단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관광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책을 읽지 않는 이유의 1위는 언제나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구하기 어려워 독서를 할 수 없던 시절도 있었건만 우리나라에서 한해 발간되는 도서가 단행본만 약 2000권에 이르는 지금은 책이 넘쳐나지만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에만 5권이 넘는 책이 매일 쏟아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책을 선택하는지 자못 궁금하다.
다양한 방법 가운데 책 제목에 이끌려 도서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책은 작가가 쓰지만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하는 경우가 흔한데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진다고 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우그룹 창업주 김우중 전 회장의 자서전 제목이다. 1989년에 출간되어 그 이듬해까지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도 ‘김우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글귀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신념과 이상을 심어줬던 책의 제목처럼 사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직접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독서다.
인류는 책을 통하여 세대를 넘나들며 현인들의 지혜를 빌려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며 스스로를 발전시켜온 종족이 아니던가?
독서는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무의식의 영역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지식이 지혜로 숙성되어 그 경험들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툭’ 뛰쳐나와 문제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다독(多讀)은 많은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 더불어 하나의 책을 여러 번 읽는다는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내 서재에는 많은 책이 있진 않지만 이것들은 열 번을 다시 읽어도 서운하지 않을 책들이다. 한번 보고 던져두는 책보다는 보고 또 보고 필요할 때 찾아 볼 수 있는 책을 소유한 것이다.
공자가 주역을 거듭 읽어서 죽간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은 다독에 대한 강조인 동시에 글의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읽는다는 완독(玩讀)의 중요성도 같이 일깨워준다.
올바른 독서의 마지막 단계는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 것이다. 마치 외양간의 소가 여물을 모두 먹고 난 뒤 되새김질로 소화를 돕듯이 눈과 머리로 읽은 내용을 마음에 깊이 담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수성 예민한 학창시절 ‘폭풍의 언덕’을 읽고 나는 히드클리프가 되어 캐서린과 벌판을 누비는 잔영 속에서 며칠을 보내야했다.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감동받고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으며, 저자의 입장에서 질문도 해보는 시간이 오히려 책을 읽은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요구했다. 돌이켜 보니 그것이 책을 놓은 후 사유의 시간을 충분히 거쳐 나의 지혜로 숙성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글쓴이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제 말하고 싶어 했던 행간(行間)을 읽어 내거나 때로는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한계조차 넘어서는 독서의 최고 경지가 바로 숙독(熟讀)의 단계다. 숙독의 결과물은 바로 사유의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냉정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위해 종종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걷기를 권한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매일 2시간의 걷기를 통해 그의 사상을 다듬었으며 실존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니체는 위대한 사상은 모두 걷기를 통해 얻어졌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경주의 봄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사유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하얀 벚꽃이 지고 천마총, 첨성대 일대의 노란 물결에 화들짝 놀란다. 오랜만에 첨성대 앞 유채꽃 밭을 거닐면서 천년의 향기를 맡으며 나는 독서와 사유의 기쁨을 만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