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민족문화융성정책에 따라, 해방이후 처음으로 신라왕궁터로 추정되는 월성에 대한 대규모 발굴 작업이 시작되어, 현재 시굴을 끝내고 곧 본격적인 심층발굴과 함께 신라왕궁복원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왕궁의 형태와 존재를 알 수 있는 물리적인 증거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충분한 고증도 없이 복원사업을 지속하는 것은 굳이 “인류문화유산의 진정성을 보호해야 한다” 라는 베니스헌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네스코의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당장 국내의 사학계나 정치인들 중에서도 막대한 예산을 소요하면서 역사를 날조할 수 있느냐는 극단적인 반대의견도 있다.
일견 타당한 의견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우리는 현재의 노력으로 미래를 바꾸어 볼 수는 있겠지만, 인류과학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기술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경주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신라왕경복원사업을 과거를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경주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 말하고 싶다. 즉, 경주는 지금 신라왕궁의 정체만큼이나 확실히 입증하기 어려운 과거 속에 모두가 매몰되어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재라도 문화재 복원에는 항상 진정성에 대한 시비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세계의 모든 역사는 물리적 흔적에 의한 추정된 역사와 사기(史記)에 의한 기록된 역사로 나누어 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어느 쪽도 따지고 보면 진정성 시비에서 절대 자유롭지는 않다. 왜냐하면 추정은 추정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엄연한 기록도 역사는 항상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기 마련이며, 또 기록자의 주관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절대로 규명되기 어려울 것 같은 과거에 대한 진정성 시비에만 휘말려 있을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곧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 아닐까 한다.
현재 경주의 주요 문화재인 불국사도 그 가람 터는 옛 신라의 것일지 몰라도, 조선시대에 다시 중건된 사찰임이 분명한데, 오늘에 와서 오랜 신라의 역사와 함께 귀중한 인류문화유산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서, 먼 미래의 후손들만을 위해 미래에 문화유산이 될 건축물을 지금 힘들여 만들자는 것은 아니며, 고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대단히 심미안적인 완성도 높은 건축물은, 신라 천년의 역사와 어우러져, 현재 잔디만 자라고 있는 넓디넓은 허허벌판과 무덤으로만 둘러싸인 정체된 고도의 모습을 탈피하고, 지금 당장 활기찬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재의 공간에 까마득한 과거를 추정하고 재현하려는 신라왕경복원 사업은 바야흐로 시작되려하고 있지만, 막대한 예산확보도 그리 쉽지 않고 또 고고학계의 찬반 논란도 뜨거워 질 수밖에 없다. 유적 복원이나 재현 그 자체도 난항이 예상되지만, 거액의 예산과 장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복원이후에도 대상물의 관리와 활용이라는 문제를 지금 심각하게 생각해 두지 않으면 후세의 질책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속적인 유적 발굴 등 좀 더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물증찾기와 고증노력도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는 관광컨텐츠로서의 왕경복원사업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즉 월성과 황룡사 등의 복원작업은 발굴과 건축에 앞으로 수 십년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는 대 역사(力士)가 될 것인데, 그 기간동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왕경복원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이다. 미래의 성공을 반드시 보장할 수 없는 유적복원사업을 위해 현재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를 윤택하게 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복원사업을 할 것인가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유네스코의 베니스 헌장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후 월성에 복원될 신라왕궁은 절대로 문화재로 인정 될 수는 없을 것이며, 현실공간에 축조된 과거가상의 구조물이 될 것이다. 때문에 나는 본 사업을 입안하는 모든 분들과, 경주시민들에게 제안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