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무심코 지나치던 사물도 관심을 가지면 그 속내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이 평범한 진실을 몸소 보여주는 곳이 바로 황성공원이다. 황성공원은 경주의 거창한 관광지에 가려져 외지 손님들에게는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원 중 하나일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경주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황성공원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나 역시 황성동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진 속의 멋진 숲이 바로 황성공원의 소나무 숲이었음을 가 보고서야 알았다. 1년만에 황성공원을 걸으면서 나는 왜 수많은 경주시민들이 그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라의 풍요를 위해 신라(동경)의 중심에 숲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동쪽, 서쪽, 남쪽이 산으로 둘러싸인 반월성에서 북쪽의 허한 기운을 채우기 위해 숲을 만들었다는 것이 황성공원의 유래다.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숲을 조성했고, 후손들은 그곳에 있던 성의 이름을 따서 황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조성된 숲은 왕의 사냥터로 이용되었고, 화랑이 무예를 닦는 곳이 되었다. 이정도 알고 보면 실내체육관과 국궁장이 황성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게다가 삼국통일의 꿈을 이루었으니 숲을 만들면서 담았던 신라인의 바람도 이루어 낸 셈이다. 이렇게 관심을 두고 바라보니 어느새 황성공원은 오래된 도심공원이 아니라 신라인들의 꿈이자 성공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세월이 흘러 옛 성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소나무 숲의 숨결은 역사로 남아 다음 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 경주에는 소나무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더러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또한 신라인의 오랜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꿈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또 우리 아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한다. 긴 연필자루가 화가의 손에서, 학자의 손으로 전해지고 신라인들의 숨결을 따라 잘 생기고 미끈한 연필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모습이었을 것 같은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이 손때 묻은 몽당연필이다. 하찮은 몽당연필이라 여긴다면 그냥 지나칠 것이고, 어떤 꿈을 담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꿈을 향한 노력도 같이 보일 것이다.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어린 아이였던 나도 그랬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지금은 방사성폐기물로부터 아픈 환경을 치료하는 안전 닥터가 되어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었다. 나만의 몽당연필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이 몽당연필을 소재로 재능기부 특강을 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는 이야기를 몽당연필(蒙堂緣必)로 소개할 때면 초등학생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에서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몽당연필 덕분에 꿈을 키우고 희망을 품게 되는 아이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일은 단순한 재능기부로 특강이 아니라 더 큰 행복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다. 문화유산을 지키면서 동시에 더 큰 내일을 준비하는 경주시민에게 황성공원이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어 후투티의 개체수와 둥지가 늘었고, 청설모나 다람쥐의 개체수가 그곳을 찾는 사람 수 보다 많은 황성공원은 역사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경주 속의 행복한 경주다. 신라인의 소망을 담은 숲에 세월이 쌓여 다음 세대에게 또 다른 의미가 되어준 그곳에 다시 한 번 새로운 꿈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노력으로 그 꿈이 몽당연필이 되는 그 날, 황성공원은 또 다른 의미가 되어 그 곳을 찾는 이에게 그 속내를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나는 황성공원이 옛 신라인의 몽당연필이자 지금 경주인의 몽당연필이기를 바란다. 신라인의 번영을 기원했던 그 숲이 이제는 경주시민을 품고 보듬어 다시 한 번 경주의 중심이 되어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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