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신라왕궁을 복원한다고 한다. 필자는 왕궁복원이 신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경주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도약하는데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원과정에서 갑론을박, 말이 많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왕궁관련 사료(史料)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삼국사기에 왕궁건설 매뉴얼이 기록되어 있었다면 지금의 왕궁복원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천 년 전 조상들은 이런 기록들을 남기지 못했다. 이천 년 후의 후손들을 배려하기에는 역사 기록에 대한 인식이나 기록 수단들이 미흡했을 터다.
시각을 근대(近代)로 돌려보자. 여기서 근대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을 말한다. 질문해 보자. 우리 경주는 이 기간 동안의 사료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고대왕국의 사료가 아니라 최근 100년 동안의 사료다. 만약 충분치 않다면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최근에 근대자원 아카이브(archive)의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근대자원 아카이브는 근대자원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을 위한 정보창고를 말한다. 근대자원은 왜 이런 정보창고가 필요한 것일까? 요컨대 근대자원의 물리적 속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근대자원은 인물, 사건, 시설, 제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대체로 아날로그 형태의 자원이 많다. 따라서 찾아내어 보존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지기 쉽다. 즉, 물리적으로 망실되거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근대자원은 고대왕국의 그것과는 달리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 진정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경주의 수많은 근대자원 중에서 어떤 자원을 정보창고에 넣는 것이 좋을까? 경주는 신라의 천년 도읍으로 이미 과분할 정도의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근대자원을 발굴하여 보존하는 데는 다소 인색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경주의 근대자원도 훌륭한 것이 많다. 적어도 다른 지자체에서 들이는 노력만큼은 경주해야 한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필자는 ‘수학여행’이 근대경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교육여행상품이자 문화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경주는 1970~80년대 고등교육을 받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도시다. 바로 수학여행 덕분이다. 대한민국의 수학여행 1번지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경주는 지금부터라도 수학여행 관련 콘텐츠를 다각적으로 수집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
‘경주예술학교’ 역시 매우 중요한 근대자원이다. 경주예술학교는 해방 직후 경주의 예술적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비록 1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되었지만 경주예술학교가 근대 한국예술에 미친 영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것들을 밝혀내야 한다. 경주예술학교가 배출한 예술인과 그들의 작품들은 앞으로 건립될 경주시립미술관의 주요 콘텐츠이자 소장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근대자원 아카이브 작업은 100년 후의 후손들을 위해 보물창고를 만드는 소중한 작업이다. 중요한 자원부터 선별해서 정보창고에 보관해야 한다. 지금 비용이 다소 든다고 해서 망설일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수백 배, 수천 배로 돌려받을 것이다.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100년을 넘나드는 예술적 소통과 경주인으로서의 문화적 자부심은 덤으로 생기는 무형적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