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이무근, 총괄주무=조복수, 개발주무=임은정
동천동은 경주시 동북간에 위치한 3개 자연부락(상리마을, 중리마을, 대안
마을)과 신도시 개발지구로 아파트 및 일반주거가 밀집한 가운데 상업지구로
형성되어 있으며 신흥개발지구다.
총면적 5.1㎢에 41개통 2백38개반으로 구성, 8천1백22세대 2만6천여명의
동민과 함께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하며 각종 사업을 내실있게 추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와 경주 벚꽂마라톤대회, 한국의 술과 떡축제 행사
등 각종 국내외 행사에 대비해 쾌적하고 아름다운 시가지 환경정비를 통한 완벽한 손님맞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서비스업소 친절운동 등 앞서가는 선진행정을 펼치기 위해 노력 있다.
또한 주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고 주민자치센터 운영을 위해 삭막한 담장을 없애고 화단을 조성해 꽃과 나무를 심고 동사무소를 완전히 개방해 언제든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생활 공간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연혁=고려시대 충렬왕 34년(1308년)에 계림부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 고
종32년 (1895년)에 경주군 천북면에 편입되었으며 1955년 9월 1일 경주군 천
북면 동천리를 경주시에 편입하여 법정동인 동천동으로 개칭돼 지금의 구역을 이루고 있다.
▲명칭유래 및 문화유적=동천(東川)은 마을앞 내(川)를 동천이라 불렀는데
그것에 연유해 마을 이름을 동천(東川)이라고 했다. 또 `동치이`라고도 한다.
암곡(暗谷)과 황룡(黃龍)골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 내려오는 강을 신라시대
이전부터 알천(閼川)이라 불렀다. 3월초에 육부촌장(六部村長)이 알천 가에 모여 임금을 세우고 건국(建國)할 것을 의논한 곳이 바로 이곳이며 그로 인해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추대되어 신라 건국을 보게 된 것이다.
문화유적으로는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백률사가 있다. 이곳은 신
라 제23대 법흥왕 15년(528년)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순교한 이차돈의 처형된
머리가 솟았다 떨어진 곳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절을 짓고 자추사(刺楸寺)라 했다는데 그 자추사가 바로 백률사이다. 불당에 나무로 조각한 불상이 있었고 봉서루(鳳棲樓)라는 누각이 있어 서라벌을 한눈에 바라보는 매우 전망이 좋은 곳이 되었는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누각은 1915년경에 헐리고 지금은 없다. 국보 제28호로 지정된 금동약사여래입상는 1930년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지난해 주요사업 추진성과=주민복지 향상을 위하여 하수도설치 등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19건에 3억7천만원을 투자해 동민들의 삶과 질을 높였다.
생활불편 사항에 대한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데 앞장서 2002년에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수시책=담장헐기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도심의 삭막한 담장을 헐고 녹
지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동사무소 담장을 헐고 화단을 조성, 꽃과 나무를 심어 주민과 함께 하는 동사무소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