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피어나는 많은 꽃들이 대체로 화사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물봉선화, 며느리밥풀꽃 등은 다소 청초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안심리 지통골 화산 기슭에 피어난 물봉선화가 마치 갓 시집온 새댁처럼 수줍은 듯 발그레한 미소로 반겼다. 안심은 경주시 내남면 지역으로 내남면소재지인 이조에서 서쪽으로 박달로 가다가 덕천을 지나 덕천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가면 골짜기 안에 제법 넓은 들판을 끼고 산기슭에 옹기종기 펼쳐진 마을이다. 안심은 깊은 골짜기의 안에 있어 ‘안실’이라고 불러오던 게 ‘안심(安心)’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또 골짜기의 안이라 난(亂)이 있어도 피난하지 않고 편히 살았으므로 ‘안심’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심·수통골·청두마을·지통골이 안심1리, 구일이 안심2리로 구획되어 있다. 안심1리는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고추와 한우를 기르고 있다. 한우는 70두, 고추는 1만여평을 경작하고 있다. 이 마을은 총 70가구에서 23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푸른마을이 50~60명을 차지해 순수 주민은 180명 정도이다. 임진왜란 때 이 마을에 들어온 강릉박씨 집성촌으로 현재도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안심마을회관 건너편에 사는 올해 92살의 박차순(안호댁) 할머니로 아직 건강하다. 뭐든지 다 잘 먹는다는 박 할머니는 출입이 자유롭고 꾸준하게 운동도 한다고 한다. 이 마을은 5년전에 경북관광개발공사와 자매결연을 했다. 그 이후 경북관광개발공사에서 해마다 마을어른들을 효도관광 시켜주고, 또 마을회관에 화장실도 새로 지어주어 고맙다고 했다. 강릉박씨 집성촌 안심(安心) 골짜기의 안에 마을이 있으므로 ‘안실’이라고도 하며, 난(亂)이 있을 때 마다 다른 마을사람들은 피난을 가야했지만, 이 마을사람들은 난을 면해 편히 살았으므로 ‘안심’이라고 했다고 한다. 구일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30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입구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를 당나무로 섬긴다. 수통골 안심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네 군데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는데, 마치 수통(水筒)과 같다고 하여 ‘수통골’, ‘수통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실제로 수통이 있어 이렇게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10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냈으나 40여년전부터는 동제를 지내지 않는다. 당목 마을 가운데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었으나 50여년전에 죽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속에 장정 10여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지통골 옛날에 한지를 만드는 지통을 놓았던 곳에 있는 마을이다. 안심 서쪽의 화산 어귀에 있다. 중증장애인시설인 푸른마을이 이곳에 있다. (푸른마을 빼고 17가구) 청두마을 산 중턱의 푸른 숲 속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청두(靑頭)마을’, ‘청두곡(靑頭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혹은 청도사(靑道寺)라는 절이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청도마을’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통골 서쪽에 있다. (13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냈으나 7년전부터 안 지낸다. 당목 당나무는 마을 입구에 있는 오래된 서어나무 2그루이다. 을사사화 때 벼슬 버리고 우암정(寓庵亭) 강릉인 우암(寓庵) 박태준(朴台俊)을 추모하여 그 후손들이 1973년에 안심에 세운 정자이다. 공은 중종 36년(1541)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냈다. 을사사화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 강릉으로 갔다가 이곳으로 이주했다. 안심리 암각화 안심리 14번지 광석리와의 경계 부근에 있는 현무암에 새겨진 암각화이다. 바위 동쪽면에 새겨진 암각화는 마모가 심해 육간으로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정상부의 성혈(性穴)과 나머지 검파형(劍把形) 그림도 확인이 어려웠다.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금이 도장 찍는 형국 화산 수통골과 청두마을 경계지점에 있는 둥근 산이다. ‘화무산’이라고도 한다. 선도산 청두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이 마을에서 가장 높다. 체암산 청두마을 남쪽에 있는 산으로 역산이라고도 한다. 맏신고개 수통골의 북쪽에서 상신리의 맏신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능등 신라시대의 장군무덤이라고 하는 큰 무덤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굴되고 없다. 수통골 북쪽에 있었다. 큰갓등 지통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다. 무지방골 선도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수통골 뒤에 해당한다. 장동골 지통골 북쪽 큰갓등으로 들어가는 골짜기이다. 황지골 큰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마치 임금이 도장을 찍는 형국이라고 한다. 큰들 가운데 있는 가매바우가 도장에 해당한다. 돌 던져 얹히면 아들 가매바우 큰마을 앞의 큰들에 있는 가매처럼 생긴 바위이다. 직경 1m 남짓한 사각형의 이 바위는 현재 당나무 남쪽지점의 논둑에 있다. 문바우 청두마을과 수통골 사이의 뒷산 도진방고개로 들어가는 곳에 있다. 나무신바우 나무로 만든 신처럼 생긴 바위로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탕건바우 탕건처럼 생긴 바위로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납닥바우 납닥하게 생긴 바위로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진바우 길쭉하게 생긴 바위로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애수바우 애수(여우)굴이 있는 바위로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선바우 생긴 바위로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삼신바우 아이를 점지해 주는 바위라고 한다. 돌을 던져 얹히면 아들 낳는다. 선도산 무지방골 안에 있다. 큰들 큰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안심못 지통골에 있는 못으로 일제 때 막았는데 사라호 때에 터지고 1960년에 다시 막았다. 귀샘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아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물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물이 나오는데 이 물이 수통골과 지통골로 흘러내려 큰마을로 내려온다. 구절터 천도사 터로 추정되는 절터로 지금은 이곳에 성불사라는 절이 들어섰다. 성불사는 5년전에 지었다. 경주시가 약속한 푸른마을진입로 확포장공사해야 이 마을 주민들은 중증장애인시설인 푸른마을이 이곳에 들어설 때 경주시가 푸른마을 진입로 확포장 공사를 해주기로 하여 동의해주었는데 이 약속을 경주시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원성이 높았다. 주민들은 당시 경주시 사회복지과장이 경주시장 공약사업이니 양해해 달라며 푸른마을 진입로를 3년 안에 확포장하겠다고 약속했는데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20% 정도만 공사를 하고 나머지는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을 대신해 담당과장이 마을주민들에게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데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민들은 마을에 장애인시설이 들어오면서 교통량은 엄청나게 늘어나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데 도로는 좁아 차량이 교행이 안 되어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이 도로에 대한 조속한 공사를 바라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박봉한(79 전 숭덕전참봉), 박증환(56 경남은행 감사), 서동구(53 산자부 서기관), 박관빈(53 울산시 사무관), 박태환(37 변호사) 등이 있다. 마을 취재에 협조해 주신 박한빈 이장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께 감사드린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