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령-갈곶산-선달산-박달령
고치령 우측은 낡은 시멘트 포장도로이며 좌측은 비포장도로이다. 이곳은 산령각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화재로 전소되고 빈터만 남아 있다.
그리고 북쪽 30m지점에는 사계절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으며, 누군가가 고사를 지낸 음식물을 남겨 두었는데, 사과는 새들이 쪼아 먹고, 배는 그대로 있어 배낭에 챙긴다.
10여분 후 헬기장이 나오고 갑자기 카메라를 어찌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배낭을 뒤져 보지만 없다. 고치령으로 뛰어 내려와 보지만 여기에도 없다. 허탈하게 되돌아 올라가니 최현찬 산행부대장은 피곤한지 코를 골면서 정신없이 자고 있다. 혹시나 싶어 윗옷 주머니를 살펴보니 카메라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고치령 1km 이정표를 지나 20-30m정도 올라가면 길 가운데 있는 떡갈나무 밑 둥지에 땅벌집이 있다. 낮이 되면서 날씨가 포근해지니 많은 땅벌이 기어 나와 움직이고, 11시 6분 고치령 1.1km를 통과하면서 길은 북동쪽으로 휘어진다.
옛날 고개 흔적이 남아 있는 미내치를 지나 비포장의 마구령에 도착하니 일반 승용차도 다닐 수 있는 곳이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계속 오르면 주위는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15시 14분 마구령 4.9km 지점인 966m봉에 도착하니 갈곶산으로 삼거리이다.
대간길은 정북으로 휘어지며, 부석사는 갈곶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봉황산 남서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주문에는 소백산도 아닌 `태백산 부석사`라고 쓰여 있다.
이는 태백산이 의상의 스승인 지엄선사가 살았던 중국의 종남산과 동격시 되면서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본거지로 숭상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종찰로서 경내에는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있으며,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축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건축 중의 하나이다. 특히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이 가람의 건축미와 공간미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절 옆의 부석(浮石)에는 창건에 얽힌 의상대사와 그를 사모했던 선묘라는 여인 사이의 애틋한 사랑얘기가 깃든 설화가 전해진다.
갈곶산에서 내려서면 늦은목이 사거리가 나오고, 북쪽 선달산을 향해 발길을 옮기면 아름드리 춘양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르막 능선길을 따라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고, 16시 18분 선달산 정상에서의 시원한 파노라마를 만끽할 수 있다.
강원도 영월군과 경북 봉화군, 영주시의 경계로 삼각점과 잔디밭 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가 세운 선달산 1천236m 표지목이 있다.
이제 청풍명월의 고장 충청북도를 지나 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강원도에 들어섰다. 남한구간의 마지막인 강원도에 들어왔으니 남은 구간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북으로 향하던 대간길이 다시 동쪽으로 활처럼 휘어져 나가고 안부에 도착하면 남쪽은 왕바우골에서 오전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위치한 오전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하며, 조선 성종때 전국약수의 우열을 검사케 한 결과 직접 맛을 본 후 가장 좋은 약수로 인정했다고 전한다. 대간길은 그대로 직진하여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벌써 해는 서쪽 하늘에 저녁노을을 물들이고 있다.
완만한 경사지대를 내려서니 헬기장에는 대간꾼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으며, 표지목과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와 산신각이 있는 박달령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여성회원들과 최병윤 회원 부부께서 정답게 맞이해 준다. 벌써 땅거미가 깔리고 17시 39분이다.
어둠을 뚫고 내려오는 오전 약수쪽의 임도는 상당히 험하고, 경기도에서 연수중인 최현찬 산행부대장은 종주를 마치고 다시 올라가야 할 처지라 무척 힘들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