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대 일출 위해 눈썹 휘날려
천황봉-신선대-문장대-밤티재-늘재
천황봉에서 산죽지대를 내려서면 비교적 넓은 길에 띄엄띄엄 있는 바윗길의 천황석문을 거쳐 문장대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은 거대한 암봉과 암벽 및 기암괴석이 톱날같이 솟아 있는 속리산 비경이다.
5시 6분 천황석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비로봉이 나오고 가파른 내리막 돌계단을 지나 큰 바위 사이를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입석대에 도착한다. 조선시대 명장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7년 수도 끝에 신통력을 얻어 세운 돌이다.
다시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신선대 갈림길 안내판이 나오고 좌측 아래로 경업대 가는 길이다.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를 도와 청나라를 치겠다며 심신단련을 연마하던 곳으로, 계단길을 오르면 길은 넓어지고 평탄해지면서 신선대 휴게소에 도착한다.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청법대를 지나 문수봉에 오르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오늘 일출은 6시 14분경이 될 것 같다.
문장대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면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최현찬 산행부대장이 걸어 가자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간을 종주하면서 일출다운 일출은 1구간인 지리산 제석봉에서 맞이한 것밖에 없었기에...
산행한지 5시간 정도 지났지만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숨가쁘게 뛰었다. 문장대 휴게소를 지나 철계단을 타고 문장대에 올라섬과 동시에 어둠을 뚫고 붉은 불덩어리 하나가 치솟아 온 누리 가득 빛을 뿜었다. 찬란한 빛줄기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천지가 개벽하는 광명과 환희와 감격의 이 순간을 짧은 문장실력으로는 무어라 표현해야 될지 몰라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위는 온통 운해로 뒤덮여 바다 가운데 섬이 떠 있는 것 같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설악산에서나 봄직한 그런 멋진 일출이기에, 열심히 뛴 보람으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 하나를 남기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광경과 어울리는 고려말 나옹선사의 시 한수를 읊어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황홀한 조망을 가슴에 품고 문장대를 내려서니 안내판이 보인다.
해발 1,054m의 문장대는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본래 운장대라 하였으나 세조 임금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이곳을 세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몸도 문장대를 세 번 올랐으니 극락표(?)를 예매해 놓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말티재를 지나 법주사로 오다보면 정이품 소나무를 만난다. 세조가 법주사 행차 때 늘어진 가지에 연(가마)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하고 소리치자 늘어진 가지를 들어 연이 무사히 지나가게 되었다. 다시 일행이 한양으로 돌아갈 때 갑자기 비가 내려 이 소나무 아래에서 피할 수 있었다 하여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송이 모양의 정이품송도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듯, 600살의 노구가 힘에 겨운 듯, 지팡이에 의지한 채 순례자에게 힘없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혹시 물이 부족할까봐 문장대 휴게소에 들러 물을 구입하려니 너무 비싸 그냥 밤티재로 향한다. 문장대 안내판 옆 울타리를 넘고 헬기장을 지나 7시에 날씬한 분들만 쉽게 통과할 수 있는 바위 틈새를 지나면 암릉과 바위지대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아마 속리산 등산로 가운데서는 가장 험하고 힘든 코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바위와 암벽을 오르내리다보면 위험한 구간에는 밧줄을 설치해 두었다. 우회로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마루금을 밟기 위해 암릉을 오르내린다.
7시 40분 힘든 암릉 구간은 끝나고 916봉을 지나 완만한 능선의 내리막을 내려서면 500m의 밤티재로 8시 22분 도착하여 민생고를 해결하고 9시에 늘재를 향했다.
밧줄이 설치된 바위를 올라서면 전망 좋은 바위지대가 나오면서 문장대와 속리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692봉에 올라서면 늘재와 청화산과 대야산 등이 조망된다.
정상을 지나 내림길을 내려가다 나이 많은 어르신네와 젊은이 두 사람을 만났는데 15분 정도만 더 가면 늘재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참호를 지나 9시 56분 380m의 늘재에 도착하니 340년 된 보호수인 음나무와 성황당이 있다. 최현찬 산행부대장은 도착하자마자 피곤하여 길가에 바로 누워버리니 보기에도 너무 애처로워 보이고, 손승락 회원은 좌측의 청화산 퇴비공장에 가서 물을 보충해 오는 동안 산행기를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