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미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미술은 단지 화가의 그림이나 조각가의 작품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다만 순수 감사용의 미술품일 뿐, 우리의 생활 속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미술’이 존재하고 있다. 건축물, 가구, 의상, 장신구, 자동차, 가전제품, 신문, 잡지 등등 어느 것 하나 미술적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일차적으로 용도에 따른 적합성이 우선되나 곧이어 그것들은 디자인이라는 시각적 충족을 필요로 소유 욕구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형태나 색채가 아름다우면 그 값어치는 뛰어나게 달라지나 결국 미술의 힘인 것이다.
쾌감의 본질은 미술적 요소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만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일상생활에 기분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미감(美感)을 배우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점에 초점을 맞추어 순수미술의 감상을 위한 지식은 물론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생활속의 미술적 요소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을 쓰고자 한다.
색채와 형태, 디자인의 초형심리학적 견해와 미적 안목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미술작품, 환경조형물, 문화유적 등에 대한 비평과 해설을 곁들여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이재건 화백 은 1944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홍익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는 대학원 시절 미술 창작수업과 함께 고고학과 미술비평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 방면에 권위있는 교수에게 별도로 이론 수업을 받기도 했다.
70년대 중반 이후 경주에 정착하면서 미술연구소를 개설해 후진양성과 지역의 후배들과 청년미술그룹을 결성해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홍대 대학원을 나온 10년 후쯤에 다시 계명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 입학해 현대미술과 중국수묵화사상에 관한 탐구로 동양화의 현대적 발현에 대한 연구를 시도했으며 이때 그의 화법에 마지막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정점식 교수를 만나 ‘미술은 지성이다’라고 하는 결정적인 철학을 그의 창작세계의 신조로 받아들이게 됐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화풍은 주로 서구적인 색채를 띠게 되는데 동·서양화 재료의 혼용과 기법의 경계를 뛰어넘는 탈 장르적 크로스오버 경향의 작품을 시도하면서 동양적 서정성과 서양의 물성을 함께 담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고고역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90년초 ‘신라왕경도’와 ‘경주남산유적도’를 3년간에 걸쳐 완성했다. 고고역사자료와 사계의 권위 있는 분들의 자문을 받아 회화적 가치와 자료의 가치를 함께 지니는 최초의 회화지도를 제작했다.
10년후 2004년 12월에 그는 다시 ‘경주읍성도’를 완성해 경주의 고대도시 환경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미술이론가로서 신라문화선양회,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을 맡으면서 ‘경주시사’, ‘경주문화논총’, ‘맑은소리’ 등에 미술과 문화에 대한 논고를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