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찾아서
122
양남면 나아리(羅兒里)
석탈해왕의 탄생지 ‘아진포’
마을 대부분 월성원전에 편입
양남면 나아(羅兒)리는 동해안에 자리한 해변마을로 신라 석탈해왕의 탄생설화가 얽힌 ‘아진포(阿珍浦)’로 삼국유사에 기록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그러나 이 마을은 1975년부터 시작된 월성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으로 인해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대부분 원전부지에 내어주고 집단이주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금은 월성원전 남쪽 수애(수남)마을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석탈해왕의 유허비가 이 마을에 서 있고, 석탈해왕의 탄생설화와 관련한 ‘수아(水兒)’, ‘장아(長兒)’, ‘내아(乃兒)’, ‘나아(羅兒)’, ‘아진포(阿珍浦)’ 등의 지명들이 남아있다. 신라 6부시대 금산가리촌에 속했던 양남일대를 서촌(瑞村)으로 불렀고 이 마을이 속한 아진포는 ‘아서(阿瑞, 兒瑞)’라고 불렀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마을이름도 ‘나아(羅兒)’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아기 석탈해를 거두어들인 곳이라는 ‘수아(水兒)’, 석탈해가 자랐다는 ‘장아(長兒)’, 보리밭이 많은 포구가 있었던 ‘보릿개’, 소나무가 많아 ‘솔밭’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수아만 남고 나머지 3개 마을은 원전부지에 편입되고 마을은 없다.
도시형 마을로 변모
이 마을은 본래 김해김씨 집성촌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업이었으나 원전이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농토와 생활근거지가 원전에 편입되고 지금은 상업지구로 바뀌었다.
이 마을은 남자 523명, 여자 531명으로 총 1천54명의 주민이 453세대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수원 가족이 142세대이다.
이 가운데 농업 6세대, 어업 5세대, 상업 128세대 등이고 나머지는 모두 직장인인 도시형 마을이다.
이 마을에 올해 105살의 할머니가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찾아갔다. 1903년생으로 올해 105살의 남맹이 할머니로 양주에서 아들을 따라 이 마을로 이사 왔다고 했다. 그런데 남 할머니의 본 나이는 올해 92살로 호적이 잘못되어 그렇다고 했다. 마을회관을 무시로 출입할 정도로 아직 건강한 편이었다. 실제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94살의 정증석(양전어른) 할아버지인데 건강이 좋지 않아 출입을 못하신다. 그 외에도 이 마을에는 90살이 넘은 사람이 2명이 더 있다.
석탈해왕 나고 자란 곳
아진포(阿珍浦) 나아리 일대를 ‘아진포’라고 했다. ‘읍천’, ‘나아’, ‘나산’, ‘상라’ 일대를 통칭해서 ‘아진포’라고 일컫기도 했다고 한다.
수애(收愛) 신라 석탈해를 거두어들인 곳이라 하여 ‘수아(水兒)’ 혹은 ‘수애(水愛)’라고 불렀다 하며, 나아천(羅兒川)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수남(水南)’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나아리는 현재 나머지 마을은 모두 월성원자력에 편입되고 이 마을에만 주민들이 살고 있다.
장아(長阿, 長兒) 옛날 석탈해왕이 장성할 때까지 자라던 곳으로 ‘양아(養兒, 養阿)’, ‘양아벌’, ‘장알’이라고도 한다. 모포 서쪽에 있던 마을로 월성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철거되었다.
보릿개 보리밭이 많은 포구(浦口)라 ‘보릿개’, ‘버릿개’, ‘모포(牟浦)’라고 불렀다고 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마을은 헐리었다.
송하(松下) 소나무밭 아래에 마을이 있으므로 ‘솔밭’, ‘송알’, ‘송하’라고 불렀다.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마을은 헐리었다.
동제 이 마을에는 해마다 음력 10월 초순경에 날을 받아서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회관 뒤쪽에 서 있는 500여년 된 해송 4그루가 큰 숲을 이루어 장관이다. 그 가운데 한 그루를 당목으로 모시지만 주민들은 4그루를 모두 당나무로 여기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가지가 많이 뻗어나가는데 작물에 그늘이 진다고 가지를 치면 해를 입어 마른가지에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알에서 7년만에 깨어나
석탈해왕 유허비(昔脫解王 遺墟碑) 신라 석탈해왕의 탄강지로 알려진 곳에 조선 고종 때 석씨(昔氏) 문중에서 세운 기념비이다. 양남면 나아리 542-1번지 월성원자력 후문 남서쪽 소나무숲에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진포(阿珍浦 지금의 양남 하서)에 사는 한 할머니가 앞바다 홈바위에 까치들이 모여 울고 있어 가보니 큰 궤짝을 실은 배가 있었다. 궤짝을 열어보니 한 동자가 나왔는데 이 동자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사람으로 부왕인 함달파(含達婆)가 여국왕(女國王)의 딸을 왕비로 맞아 오랫동안 아들이 없어 간절히 빌어 임신했으나 7년 만에 알을 낳으니, 불길하다 하여 궤짝을 만들어 넣고 띄워 보내면서 ‘인연 있는 곳에 닿아 나라를 세우고 집안을 이루라’ 하자 문득 붉은 용이 나타나서 배를 호위하여 이곳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가 이 동자를 데려와 길렀는데 이때가 박혁거세 39년이다. 까치가 울었으므로 성은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를 떼고 석(昔)이라 짓고, 궤짝을 열고 알을 깨치고 나왔으므로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했다. 탈해는 자라면서 신장이 9척이나 되고 학문과 지리를 익혀 인물이 출중하니, 남해왕(南解王) 5년(서기 8년)에 부마가 되고, 유리왕의 뒤를 이어 신라 제4대 왕위에 오른 뒤 23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영모정(永慕亭) 김해김씨 문중에서 1960년에 장아에 세운 정자로, 원전이 들어서면서 1978년에 이곳 수남으로 옮겼다. 원전으로 실향한 이주민 27가구가 모여 사는 집단이주민촌 새마을에 있다. 4칸 2칸의 원기둥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2칸은 마루, 양쪽에 방을 배치했다.
돔발골 돌이 많은 골짜기로 송하 뒤쪽의 현 원전 뒷산이다.
딱밭골 딱나무(닥나무) 밭이 있던 골짜기로 송하 남쪽에 있다.
무지갯골 무지개가 자주 서는 골짜기로 송하 서북쪽에 있다.
지널골 땅이 매우 진 골짜기로 송하 남쪽에 있다. 진흙골이 변한 것으로 ‘지넛골’이라고도 한다.
퐁당골 송하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개아래에 폭 꺼진 골짜기라 ‘퐁당골’이라고 한다.
무지개 피는 ‘무지갯골’
돔발골 장재 돔발골 위에 있는 긴 고개이다.
수문솔배기 마을 주민이 심은 소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장아 서쪽에 있다. 원전부지에 들어가고 지금은 없다.
나아천(羅兒川) 상라리 서북쪽 우산(牛山:334m)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나산리를 지나, 원전후문을 거쳐 나아리 동쪽에서 동해로 들어가는 내이다.
무지갯거랑 무지갯골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송하 앞에서 동해로 들어가는 내로 양남과 양북의 경계에 있다.
버릿개 수아와 장아 사이에 있는 해안으로 ‘모포(牟浦)’, ‘아진포(阿珍浦)’, ‘나아포(羅兒浦)’라고도 한다.
상봇들 장아 서쪽에 있는 들로 상보의 물을 대는 들이다. 원전에 거의 다 들어가고 일부만 남아있다.
새들 숫봇들 동쪽 즉 석탈해왕 유허비 앞에 새로 일군 들이었다. 지금은 원전에 편입되어 공원이 되었다.
숫봇들 숫보가 있는 들로 수아 북쪽 즉 석탈해왕 유허비 남쪽에 있다. 지금의 원전공원 서편이다.
알들 장아 서쪽 아래에 있는 들로 ‘아릿들’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이 일대에서 최고 상답이었다고 한다. 석탈해왕 유허비 서쪽으로 지금은 원전에 편입되고 없다.
예찻골 송하 서남쪽에 있는 들이다.
자알들 장아 앞에 있는 들이다. 유허비 북쪽에 있었다.
지논 지논들에 있는 길다란 논이다. 긴(진) 논에서 유래한 말로 보인다.
지논들 지논이 있는 들로 나아리와 나산리에 걸쳐 있다. 서편골짜기
상보(上洑) 상봇들에 물을 대는 보로 나산과의 경계지점에 있다.
새들보 새들에 있었던 보로 지금은 원전에 편입되고 없다.
숫보 숫봇들에 있눈 보로 근처에 숲이 있다.
장알앞보 장알앞 아래쪽에 있는 보로 ‘하보(下洑)’라고도 한다.
중보(中洑) 상보와 장알앞보 중간에 있는 보.
석탈해왕의 ‘홈바위’ 매몰되어
큰돌 지무끝 남쪽에 있는 큰 바위 지금은 매몰되고 바위일부만 물위에 올라와 있다. 그 앞에는 월성원전에 생활 근거지를 내주고 이주한 송하마을과 모포마을 이주민들을 위한 망향비가 서 있다. 원전 제1발전소 동쪽 바닷가에 있다.
홈바우 석탈해왕의 탄생설화가 얽힌 유서 깊은 바위로 홈이 파여 있어 ‘홈돌’, ‘홈바우’라고 한다. 나아천이 동해와 만나는 장아 앞 바닷가 즉 지무끝 남쪽에 있다. 지금은 원전부지에 편입되어 매몰되고 없다. 주민들은 이 바위가 매몰된데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미역개안 미역이 많이 난다는 바위로 지무끝 남쪽에 있다.
지무끝 장아 동북쪽에 있는 바위로 송아마을이 바다로 뻗어 있는 끝자락에 있다.
월성원자력발전소 양남 나아리에서 양북 봉길리에 걸친 93만평의 부지에 자리한 월성원자력발전소(본부장 태성은)는 1975년부터 건설에 들어가 1983년 월성 제1호기를 완공하여 상업운전에 들어간 이래 현재까지 70만 KW급 4기의 중수형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고, 100만 KW급 경수로형 신월성 1,2호기가 추가 건설에 들어간 상태다. 향후 총 6기의 원전에서 약 480만 KW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광역상수도 설치
석탈해왕의 탄생지이며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있는 해안마을이었던 나아는 이제 원전단지로 바뀌었고, 남아있는 마을조차 상업지역으로 변모하고 전국 8도에서 많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전통 마을의 정취는 사라진지 노래다. 그러나 아직도 주민화합이 잘 되고, 부녀회도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부녀회를 중심으로 폐지를 수집해서 불우이웃돕기와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또 이 마을은 해마다 대보름날 달맞이행사를 열고 마을주민들의 화합잔치를 하면서 화합을 다진다고 한다.
이 마을은 광역상수도 설치로 식수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주민 바람이 있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준(82, 전 양남면장), 최상철(54, 예비역 육군소령), 변종현(53, 동국대교수), 김성환(49, 경주시의원), 김태수(40, 변리사), 김태권(33, 사법연수 중) 등이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이종대 이장과 최관두 새마을지도자, 김 준 노인회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환대에 감사드린다.
김거름삶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