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들어오는 오늘의 햇살은 어제와 다를 게 없지만 그 햇살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제와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무엇부터 그려야 할까 망설이는 아이들처럼,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잠시 남산 위에 하얗게 쌓인 눈과 동해 바다에 얼굴을 씻고 막 떠오른 해를 바라보며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출발이라고 말하고 아침을 그리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해봅니다.
새벽잠에 취한 아이들, 남편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
여섯 살이 되어 봄이면 유치원에 입학하는 막내 유라, 열 살이 되는 큰 딸 유정이, 갈수록 의젓하고 든든한 큰아이 병석이, 그저 말없이 곁에서 지켜만 있어 줘도 고마운 남편, 아마 2002년 올 한해도 아이들 남편 뒷바라지에 지난해와 별 다를 게 없는 한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투정에 지쳐 짜증이 날 때도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변함 없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엄마가 아니면 채워 질 수 없는 자리, 그 엄마라는 이름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여자, 마음이 고운 여자로 만들 것입니다.
앞치마를 하고 아침밥을 준비할 때나, 아이들을 깨워 등교 준비를 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나간 빈집에 혼자 남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나는 행복할 것이며, 빨간 자전거를 타고 황성공원을 산책할 때, 상수리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과 자전거 바퀴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아 오르는 비둘기 소리에도 행복할 것입니다. 목월의 송아지 노래비 앞에서는 늘 그랬듯이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라고 콧노래를 부를 것이고, 멀리 노부부의 편안한 산책모습에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행복해 할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을 가슴에 달고 우리 앞에 선 2002년,
아름다운 도시 경주에서 평범한 내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그들과 더불어 살며 행복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건강하게 한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경주시 황오동 144-25번지 김 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