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면서 이 광 희 예비역 육군 소장 앞만 보고 달려온 군 생활, 까마득하게만 여겨졌던 “전역”이라는 두 글자가 현실로 다가와 감회를 새롭게 하면서 그 동안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1967년 1월 25일 그 추운 겨울날 호국의 간성이 되고자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 태릉에 위치한 육군 사관학교에 입교하여 37년간의 푸른 제복에 청춘을 불사르며 나의 인생 전부를 바쳐왔다. 육사 4년 동안 나는 축구 대표부에서 활동하면서 앞으로 군에서 필요한 知와 體를 겸비한 간부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전방 DMZ 소장으로 군에 첫발을 내디디며, 험난하기만 했던 야전 생활과 공수특전 및 특공부대, 육군본부 등 전후방 각급 부대의 참모 및 지휘관을 역임하고 논산육군훈련소장을 거쳐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직을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군문을 떠나게 되었다. 군 생활 동안, 긴급한 상황이 오면 적진을 돌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세를 견지하면서 군인으로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독려하는 등 솔선수범하고 성실하며 실천하는 마음으로 오직 군인의 이 한 길을 걸어 왔다. 그리고 부대에는 적에게 가장 두려운 군인, 국민에게는 가장 신뢰받는 군인이 되어야 하고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강인한 체력과 숙달된 전술전기 등을 연마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부대를 지휘해 왔다. 그 결과 군인이면 모두가 원하고, 해보고 싶고, 달성하고 싶은 장군으로 승진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는 훌륭하신 선후배의 정성어린 지도와 부하들이 충성을 다해 준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특히 고향의 동기생 여러분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원과 뒷받침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군인의 길에만 전념하다 보니 어린 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 동기생들을 보고 싶을 때 만나보지 못하였고, 먼저 세상을 저버린 친구들에 대해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울 뿐이다. 돌이켜보면 군 생활은 하루하루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고, 특히 지휘관 시절에는 많은 부하장병들의 관리를 위해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리고 혹시 나로 하여금 군의 위상이 손상되는 일이 있을까봐 일거수 일투족 살얼음판을 걷듯이 한 치의 곁눈짓할 여유 없이 살아왔다. 우리들이 흘린 땀과 희생의 결과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고 군의 외형이나 내면적 모습들이 과거보다는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데 우리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37년간의 세월이 언제 지나갔는지 한 순간으로 느껴지는 요즈음 흔히들 이야기하는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들 삶은 평균수명이 연장되어 정년 이후의 20년을 더 생각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 내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성공적인 군 생활을 위해 나의 인생 전부를 불살랐지만 ‘인생의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라는 말처럼 나머지 인생을 잘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사회는 너무 많은 변혁기를 거쳐 변화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회 초년생으로 어떻게 적응을 해가며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흔히들 “정년 이후에는 직함이나 지위 따위를 내던져 버리고 생활해야 한다”고 수없이 충고한다. 이러한 충고와 군 생활 동안 바르게 익혀진 인생관과 국가관을 토대로 이웃과 사회와 인류를 위하고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역할을 변함없이 하고자 내 인생의 제2막을 서서히 준비해 나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신 동기생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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