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장님이 길을 걷다 가시덤풀이 우거진 낭떨어지로 굴러 떨어지게 됐다. 다행히 나뭇가지를 붙잡은 장님은 죽을 힘을 다해 다시 가시덤풀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님이 붙잡은 나뭇가지 바로 아래는 평탄한 길이 있고 장님은 그냥 손만 놓으면 살 수 있었다.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바로 아래에 길이 있으니 힘들게 위로 오르지 말고 나뭇가지만 놓으면 됩니다"고 권했다. 그러나 장님은 "저 사람이 나를 죽게 하기 위해 손을 놓으라고 하는가 보다"면서 끝까지 나뭇가지를 놓지 않았다. 5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년 5월경이면 지방선거가 시작된다. 단체장을 비롯해 기초의원 등을 뽑는 선거다. 지금쯤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할때다. 놓으면 편해질 수 있는데도 굳이 나뭇가지를 끝까지 붙잡고 위로만 올라가야 하는지 말이다. 살아오면서 이룬 치적을 공적으로 기록할 것인지 아니면 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심판을 자초할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보길 예비 후보들에게 권하고 싶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우월감을 갖고 살아 가고 있다. 하지만 때론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동안 쌓아온 삶의 치적이 심판을 통해 스스로 괴멸당하는 수모는 겪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에서다. 비교하는 마음에서 욕심이 싹트고, 이런 욕심은 화를 낳고 결국 자멸하게 된다고 현인들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자리를 탐내는 자는 그 자리로 인해 스스로 몰락하는 모습을 우리는 역대 정권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지방이라고 해서 다를바 없다. 이래서 자리를 위해 물밑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후보들도 한번쯤 썩은 나뭇가지를 놓을 것인지 여부를 신중히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다. 강요가 절제된 피선택권은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또다른 선택일 뿐, 어느 누구도 앞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선택이 내 이웃과 가족을 편안하게 할 것인지 살펴볼 때다. 제렌 키어 케고르는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이 겨울의 화두요 선문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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