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의사 추모비의 의미 지금부터 415년 전 조선조 선조 25년부터 31년까지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처절했던 전란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경주에 신라천년의 유물을 비롯한 그 귀중한 문화재가 바로 이때에 모두 소실 또는 탈취 및 파괴되었다. 이렇게 우리 강토가 초토화 되어가는 당시의 상황 속에 우리들의 조상님들이 부모와 처자식을 뒤로하고 오직 구국일념에서 지금의 반월성 주변 문천가에 모여서 말의 피를 머금고 우리지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기를 맹세한 것이 문천회맹이다. 이들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 작은 정성을 담아 매년 6월9일 추모행사를 올리기 위해 황성공원 남편입구에 세운 것이 임란의사 추모비인 것이다.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되짚어 보고 다시 오늘에 머물러 내일을 살펴본다면 우리 모두가 이분들의 재단 앞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우국충정어린 의사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의 조형적 의미를 일부시민들은 물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를 것 같아서 다음과 같이 담겨진 그 의미를 간략히 설명해본다. 탑 하단부의 둥근 바탕은 대지와 한반도를 의미한다. 이와 아울러 상단부의 탑은 하늘을 향한 기상과 웅비의 정신과 의지를 표현한다. 탑기단의 원형은 의병창의를 결의한 경주 문천(지금의 남천)의 형상과 태극의 모양, 신라의 고도 경주의 상징인 곡옥의 생김새를 본딴 것이다. 더 나아가 원형 내에 S자형으로 강의 흐름을 표현함으로써 이러한 의미를 동시화 하고자 했다. 상단부의 원추형으로 솟은 탑은 경주의 독특한 역사적 자존심을 나타낸다. 다른 지역의 기념비와 차별성을 강조한 형상일 뿐만 아니라 민족적 수난을 물리친 자주의지와 기상을 현재와 미래로 잇는다는 염원을 말한다. 원추형 탑의 하단부에는 동서에 각기 다른 내용의 부조가 자리하고 있다. 동쪽의 부조는 왜군의 침입으로 힘없이 함락되는 민족수난을 표현하고 서쪽의 부조는 경주를 중심으로 창의 거병한 의사들이 천회맹을 통해 결의를 다져 경주성를 수복하고 7년 전란을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내용을 형상화 했다. 탑의 열 두단은 문천회맹에 참가한 12고을 의사들의 추의정신과 여혼에 대한 진혼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원추형 상단을 12개로 나누었다. 이러한 조상의 정신을 길이 이어간다는 뜻으로 12개의 상단은 점진적인 크기로 쌓아 상승성과 영원성을 표현했다. 따라서 둥근 하단부의 형태와 원추형의 사단부 형상은 간결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절제된 조화와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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