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토우총을 연상케 하는 미케네의 왕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
고대 이집트 왕국의 파라오에 의해 지어진 피라미드. 그 중에서도 압권은 기자에 있는 3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대 피라미드인 쿠푸왕 피라미드와 두 번째 카푸레 피라미드를 일직선 상에 두고 선을 그으면 세 번째 멘카우레 피라미드는 일직선상에서 약간 비켜져 위치하여 의문을 가지던 중에, 벨기에 건축기사인 로버트 보발이란 사람이 우연히 밤바람 쐬다 오리온 별자리를 보고 문득 기자 피라미드 3기의 항공사진과 유사함을 발견한 결과 기자피라미드 3기의 배치가 오리온 별자리와 비슷하고 피라미드의 규모도 오리온 별자리의 밝기 비율과 똑같음을 발견하였고 이집트의 많은 고대 유적이 별자리와 상당히 관련이 깊어서 고대 이집트 점성술의 정도를 가름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지난 5월 18일 해외연수차 기자피라미드를 답사할 때 너무나 큰 규모에 놀란 나머지 그리고 한정된 시간 때문에 허겁지겁 안내설명과 사진찍기가 바빠서 사실 아쉬움 속에 이동했지만 카이로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던 곳이 있었다. 기자 피라미드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석실고분이 많이 있었는데, 피라미드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답사에만도 시간이 모자라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기약없는 다음기회로 미련이 남았버렸다.
기자 피라미드를 답사한 다음날 룩소로 이동하여 왕가의 계곡에 있는 많은 고대 이집트 왕들의 무덤은 기자 피라미드와는 조금 시대가 다른 시기의 무덤군인데, 석회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을 뚫고 만들어진 고분이었는데 그 유명한 황금마스크를 비롯한 보물이 쏟아진 투타카멘 왕의 무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도굴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미쳤고 그리스 문명이 로마문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리스문명은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인더스문명과 결합하여 간다라문화를 탄생시키고 간다라미술은 중국을 거쳐 통일신라의 찬란한 불교문화유산을 잉태했으니, 통일신라의 찬란한 문화도 알고 보면 고대 이집트 및 그리스 문명과 끈질긴 인연이 있다고도 할 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문명을 세분화하면 크레타문명, 미케네 문명, 트로이 문명을 나눌 수가 있는데, 이집트에 이어서 그리스 아테네와 고린도 유적을 답사하여 여러 가지 자료책을 수집하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미케네 섬의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 고분 입구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횡혈식 석실분의 형태이고 다만 내부는 석굴암처럼 원형돔의 모양이며 그 내부에 사각석실이 다시 있는 형태라고 하지만, 정면 사진을 보니 선도산 자락 장산토우총의 입구와 너무나 흡사하여 정이 들고 기회가 되면 꼭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집트의 고분은 시대별로 변천을 해왔었다. 일반매장형에서 석실분으로 그리고 일정한 시기의 왕대에서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다가 또 일정한 시기가 지난 왕조에서는 석회암 바위산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무덤을 만드는 형태로 다양한 형식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기자피라미드 주변에 있는 수 많은 석실분 고분과 특히 미케네의 ‘아트레우스의 보고’라고 불리는 고분은 만리타향 신라의 석실분과 비록 똑 같지는 않지만 내부의 형태는 유사함이 있어 문화재산책의 흥미를 더 해준다.
그리스 고린도유적 박물관 서점에서 구입한 유적자료사진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미케네의 왕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일명 아가멤논의 무덤)’ 라는 석실고분의 입구사진 전경을 보는 순간 둥그렇게 흙으로 뒤덮인 외형도 그렇고 장산토우총 석실분 입구와 너무나 흡사하여 신라고분 사진이 왜 그리스에 있는가하고 착각마저 들었는데, 작성연대를 자세히 알아보니 기원전 1250년경의 것이어서 신라 장산토우총보다는 약 2천여년 앞서는 것이었다.
문화재 답사를 하다보면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그 형태가 너무나 흡사하여 자칫 사진만 보면 수많은 착각과 또한 어떻게 그러한 유사한 문화유적이 만들어졌는지 끊없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주는 묘미에 문화재 산책의 길은 멈출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