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박씨들이 많아 ‘우박’ 문산공단의 공장들에 둘러싸인 마을 문산2리(汶山二里) 문산은 외동읍에 소재한 마을로 울산-포항 간 산업도로인 7번 국도에 인접해 있으며, 울산과 가까운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10여 년 전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자동차부품공장 100여개가 들어서 있는 신흥 산업단지로 주목받는 마을이다. 최근에도 20만평에 이르는 새로운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마을 곳곳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울이며 일터였던 산과 들을 죄다 공장에 내어준 채 공장들에 둘러싸인 마을은 정감어린 옛 정취나 선조들의 숨결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모화역에서 석계, 녹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고즈넉한 촌락으로써의 문산은 이제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문산은 마을 뒤에 있는 돌산을 울산사람들이 뺐어갈려고 하여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고 하여 ‘문산(汶山)’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묵산(墨山)’, ‘멍미’라고도 했다고 한다. 녹동, 석계에서 흘러내리는 돌기거랑을 중심으로 그 동북쪽에 위치한 ‘밖문산’·‘안문산’·‘나만골’이 문산1리, 그 서남쪽에 있는 ‘우박’·‘울밑들’·‘성만리’가 문산2리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공장부지 20%만 농토 문산1리는 ‘우박’을 중심으로 북쪽에 ‘울밑들’이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 공단을 지나 산 위에 ‘성만리’가 자리하고 있다. 문산은 원래 우박이 가장 중심마을이며, 큰 마을이기 때문에 마을이름도 ‘우박’이 되었어야 했으나 옛날 행정구역 통폐합 때 마침 구장(지금의 이장)이 작은 마을인 문산 사람이라 행정명이 ‘문산’으로 되었다고 한다. 문산1리는 특별한 작물은 없고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다. 예전에는 소를 많이 먹였는데 지금은 소도 별로 없다고 한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농토가 공장부지로 변하고 20%정도의 농토만 남았다. 밖에서 볼 때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 잘 살 것 같지만, 실제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 도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량통행이 빈번하다 보니 먼지도 많이 나고, 교통사고의 위험성도 그만큼 높다. 그러니 농기계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다니기에도 불편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공장을 빼고 총 83가구, 135세대에 주민 450명이 살고 있다. 공장지대가 되면서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장복식(96 성지어른)할아버지와 김준이(92 성지댁)할머니로 두 분이 부부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두 분이 생활하다가 최근에 울산 아들네 집에 가 있다고 한다. 우박, 본동이며 가장 큰 마을 우박(愚朴)은 본래 인동장씨(仁同張氏), 단양우씨(丹陽禹氏), 밀양박씨(密陽朴氏)의 3성씨(三姓氏)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3성을 따서 ‘장우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후일 인동장씨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우씨와 박씨만 남았으므로 ‘우박(禹朴)’이라고 하다가, 뒤에 변하여 ‘우박(愚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8가구) 동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당목 본래 수령 수백 년 된 조각자나무가 있었으나 최근 공단을 출입하는 큰 트럭이 받아 부러트렸다. 현재는 그 후계목으로 70년생 포구나무를 모신다. 마을 앞, 지방산업단지 진입로 길가에 서 있다. 성만리(城萬里)는 관문성(만리성) 위에 마을이 있었으므로 ‘성만리’라 불렀다고 한다. (8가구) 울밑들은 우박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 지대가 낮아서 토사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제방을 만들었던 곳이라 마치 울타리에 둘러싸인 듯하다고 하여, ‘울밑들’이라 불렀는데 이곳에 70여 년 전부터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마을이름이 되었다. (17가구) 웅장한 규모의 우박재 난두절 난두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순금사가 들어서 있다. 마냇골 서쪽에 있다. 성불사 관바우산 밑에 있는 절로 10여 년 전에 들어섰다. 경로잔치를 베풀고 마을 일에 협조를 많이 한다고 한다. 박덕순(69)스님이 주지이다. 순금사 난두절의 절터에 100여년 전에 새로 지은 절이다. 배너리 난두절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배를 대던 곳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데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조개 등이 있다고 한다. 우박재 조선시대 충주병사(忠州兵使) 증 병조정랑(贈 兵曹正郞)을 지낸 단양인 우인탁(禹仁鐸)을 추모하기 위해 그 후손들이 1999년도에 지은 재실이다. 마을 뒷산 연화봉에 자리한 우박재는 삼문과 담장, 종회당(회의 및 재사 준비실)을 갖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둥근기둥의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마루를 양쪽은 방을 배치했다. 구어리 대부기공 일대의 산을 팔아서 마련한 자금과 종인들이 낸 성금으로 총공사비 4억여원으로 지었다고 한다. 괸디뻔디기 고인돌(괸돌)이 있는 버덩(뻔디기)으로, 관바우 북쪽 아래에 있다. 두리봉 관바위 위쪽 봉우리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둥그렇게 생겼다. 분팃삐알 위쪽에 있다. 분팃삐알 북바위 남쪽에 있는 산으로 분토(규조토)가 났던 골짜기라고도 전한다. 지금은 분토가 없다고 한다. 붉은돌배기 형제바우 남쪽에 있는 산으로 붉은 점토질의 산이다. 새총밑 너반둘 밑에 있는 작은 산으로 들 가운데 있다. 옛날에 동네 소를 매던 곳이다. 순금산 순금사가 있는 산으로 오방만디 남쪽에 있다. 오봉산 봉우리가 다섯 개 인 산으로 문산 동남쪽에 있다. 죽밋산 황새골 동쪽에 있는 산이다. 떡 갈라주던 떡대말랭이 오방만디 우박뒷산으로 오목하게 몰아 올라가서 ‘오방만디’라고 한다. 용마(龍馬)등 호샛골 서남쪽에 있는 용과 말의 형상으로 생긴 등성이를 말한다. 성만릿고개 성만리에서 울산시 울주군 농소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댄배기 배너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가팔라 오르기가 힘든(댄) 곳이다. 들독거리 우박 서쪽에 있는 버덩으로 나무하러다닐 때 쉬던 자리이다. 지금은 공단조성부지에 들어갔다. 떡대말랭이 우박 서쪽에 있는 산으로 우씨들의 묘지가 많아 옛날에 묘사 떡을 많이 갈라주었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다. 골작말(고짓골) 우박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고딧골’이라고도 한다. 절터가 있고, 오래된 우물이 남아 있다. 구아태 우박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담방골 댄배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 공단이 들어서 있다. 마늑골 우박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민마늘(산부추로 보인다)이 많았던 곳이다. 지금은 공단에 들어갔다. 맹건쟁이 괜디뻔대기 동쪽, 즉 신경더미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범중골 맹건쟁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소매골 입구가 좁고 안은 넓은 골짜기로 안에서는 3골짜기로 갈라진다. 잔다골 붉은돌배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길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재자골 우박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처음에 마을이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일대에서 기와조각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공단에 들어갔다. 황새골 우박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황사골(黃砂谷)’이라고도 한다. 신겅더미 바위더미가 있는 버덩으로, 들독거리 서쪽에 있다. 이곳에 범굴이 있다고 하며 여기서 불을 때면 형제바위에서 연기가 났다고 한다. 큰신경더미 신경더미의 큰 버덩을 말한다. 적은신겅더미 좁은 신겅더미로 범굴 옆에 있다. 낚시하던 처자 빠져 죽어 관바우 황새골 위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마치 관(탕건)처럼 생겼다. 황새골 어귀에서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철탑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관바우를 볼 수 있다. 북바우 황새골 물탕 위에 있는 바위로 두드리면 북소리가 난다고 한다. 처자바우 총각하고 낚시하던 처자가 빠져 죽어 ‘처자바우’라고 한다. 우박마을 남쪽으로 공단 조성에 들어간다. 본래 이곳은 거랑 둑이었는데 물길이 바뀌고 길이 나면서 메워져 낚시했다고 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탕관바우에서 서쪽으로 50m 지점에 있다. 탕관바우 탕관을 쓴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로 우박마을 남쪽에 있다. 공단 조성을 위해 담장을 치고 있어 접근이 어려웠다. 용바우 용바웃들에 있던 바위로 지금은 없다. 형제바우 바위 2개가 나란히 서 있다고 하여 ‘형제바우’라고 한다. 오방만디 서쪽에 있다. 마을 뒷산이다. 너반들 문산 동쪽에 있는 들이다. 용바웃들 용바우가 있는 들로 우박 동남쪽에 있다. 돌기거랑 녹동에서부터 석계리를 지나, 문산리에서 동천으로 합류하는 거랑으로 돌이 많다고 붙인 이름이다. 공장지역 우회 농로 있어야 마을 어귀에 흐르는 동천거랑을 건너는 다리 2개가 있다. 옛날 다리는 농로로 사용하고, 새로 놓은 동천교는 차들이 다닌다. 농로로 사용하는 다리를 건너 농기계가 많이 다니는데 다리 동쪽에서 왼쪽 들로 가려면 도로를 횡단해야하는데 차량통행이 많아 매우 위험하다. 따라서 그 동쪽에서 다리 밑으로 우회하는 농로를 만들어야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잔다골에 농토가 2만여 평이 있는데, 공단으로 인해 고립되어 공단을 거치지 않으면 들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통행이 매우 불편하다. 우회도로나 농로를 내 주기를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우병택(78·전 부산시의회 의장), 우한곤(66·일흥상사 태창메리야스 대표이사), 우외진(58·경주시 주민생활지원국장), 우종함(48·KMCT 대표이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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