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옛날의 지방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의 엘리트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배우고 살기좋은 고장을 위해 덕망을 가진 어른들이 서로 의논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정문에서 신도를 지나 ‘대성전’이라는 현판을 보면서, 그 옛날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과, 송나라의 정자, 주자 와 신라2현이신 최치원, 설총, 고려2현이신 안향, 정몽주 그리고 조선14현 등 경주향교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성현들의 이름과 가르침을 회상하며,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온고이지신’ 즉 옛것을 익힘으로써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과 도리를 발견하는 것이 오늘날 경주향교의 존립가치이고 향교를 찾는 역사문화답사의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10월 21일 경주향교 명륜당에서 전국 최초의 명륜대학 제2기 입학식이 있었다.   공자님의 가르침은 유학(유가,유교), 훈고학, 성리학, 양명학, 경세학, 기철학, 고증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변화 발전되어 왔다. 제2기 명륜대학 개강식날 경주향교 뜰을 거닐다 ,문득 경주향교 대성전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지 않지만, 중국 명나라말 청나라 초기의 사상가인 황종희의 이름과 그가 쓴 ‘명이대방록’이라는 책이름이 떠올랐다. ‘명이’는 주역에 나오는 ‘괘’이고 ‘대방’은 먼 훗날 올 사람이란 뜻으로 훗날 자신의 뜻을 알아줄 사람을 기대하면서 책을 썼다.   황종희는 이 책에서 “옛날(하,은,주)의 임금은 온 세상 사람들을 주인으로 삼고 임금자신은 손님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의 임금들은 자신이 주인이고 세상 사람들이 손님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이익을 움켜지고 세상 사람들을 잘 돌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이 어지러워졌다”고 현실 비판을 했다. 그리고 “신하도 임금을 위하여 일할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일해야 한다. 즉 임금과 신하는 함께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동반자이다”라고 하면서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인하며 나라의 주권은 백성에게 돌려주어야 하므로 토지도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당시로써는 정말 혁신적인 사상을 제시하였다.   요즈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 낙엽지는 가을에 독서를 권한다면 이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을 들고 싶다.   북한핵문제는 너무 거창하니 우선 제쳐두고, 천년역사도시 경주에도 방폐장, 원전추가건설, 양성자가속기, 한수원본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실을 냉정히 살펴보면 정말 이 시대 지도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지배자 권력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굳이 황종희의 사상을 빌지 않더라도, 지금은 왕권신수설의 절대군주제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인데도, 간접민주주의로 인한 선거직 권력자들과 그를 둘러싼 신흥 귀족층들이 수 백년 전 절대왕권제를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지방자치제의 선거직과 그 주위 사람들이 한 달에 단 한번이라도 ‘명이대방록’을 강독하면서 30만 경주시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들은 임기동안 봉사하는 손님이라는 마음을 가다듬을 때 비로써 경주의 앞날은 밝아 오리라 본다.   어려운 한자풀이를 하면서 고급 지식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옛 성현들의 가르침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지식도 현실에 적용하고 실천해야 더욱 더 빛날 것이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소인은 자신의 이익과 손해에 밝고 군자는 옳고 그름을 우선시 한다’고 했다. 최근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모두들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냉정히 큰 현안들 이면을 파고들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제쳐두고, 이런 결정을 하면 누구에게 이롭고, 저런 결정을 하면 누구에게 해롭게, 또 이곳이 개발되면 누가 돈을 벌고, 저 곳이 개발되면 나하고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즉 소인배들의 이야기가 시중에 너무 돌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역의 권력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여! 계림 숲의 여름날 그렇게 파랗던 잎들도 가을 낙엽되어 떨어지는 자연법칙을 보면서, 권불십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의 글귀처럼 ‘공직자는 전세방 얻은 손님이고 시민이 주인이다’라는 경세사상의 본질을 배우고 익히면 얼마나 좋을까?   유물이나 만지고 역사를 외우는 것만이 문화재산책이 아니다. 공자왈맹자왈 하면서 지식을 뽐내기보다는 현실의 어려움을 타파하는 지혜를 제시한 현실참여 실천적 성현들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도 문화재산책의 숨은 묘미이다.   가을낙엽 휘날리는 계림숲을 지나 ‘온고이지신’의 마음으로 명이대방록과 함께하는 조선시대 건축의 멋이 살아쉼쉬는 경주향교의 문화재산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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