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보훈지청, 10월의 현충시설물 선정 홍보   경주보훈지청(지청장 이희범)에서는 매월 경주보훈지청 관내 6개시군(경주,포항,영천,영덕,울진,울릉)에 산재해 있는 현충시설물을 시민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함양하자는 취지에서 "이달의 현충시설물"을 선정하여 홍보하고 있다. 특히 올해 9월부터는 포스터를 신설 자체 제작하게 되었으며, 학교 등 유관기관에 포스터를 부착토록 협조하여 홍보를 하고 있다. 포스터 제작 2회째인 10월에는, 올해로 산남의진 창의 100주년을 맞이하여 특히 의미가 깊은 영천소재 "충효재\`를 이달의 현충시설물로 선정하였다. 충효재는 조선 후기 의병대장인 정환직(1843∼1907)과 그의 큰아들인 정용기(1862∼1907)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묘 근처에 세운 재실 이다. 정환직은 고종 25년(1888) 의금부 의금도사를 지냈으며 광무 3년(1899) 시찰사, 도찰사겸 도포사를 역임하고 그 뒤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그의 아들 용기는 혜민원 총무를 거쳐 민영환 등과 함께 독립회와 만민회에 참여하고 보안회 국채보상운동에 회장으로서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나 광무 9년(1905)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정환직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관직을 사직한 뒤, 그의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영해, 의흥, 청송, 영양 등지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뒤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는데 회유에도 끝까지 반일의 뜻을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당했다. 정용기는 영천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아버지와 같은 해 전사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되었다. 이들 두 부자의 애국정신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충효동으로 바꾸고 1923년 이 재실을 세웠고, 1987년 새로 보수·정화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 으로 꾸몄으며 정원에는 유허비가 있다. 충효재는 광복시까지 외관상 시골서당처럼 보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수많은 생존의사들이 국내외와의 연락을 주고받은 비밀기지이기도 하였던 뜻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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