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경주 시민상 문화부문 수상자 - 이수일 선생 ■ 서울무대 마다하고 고향에서 연극활동 ‘경주시립극단’ ‘에밀레극단’ 창단 “경주시민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상이  가장 자랑스러워”  지난 12일 오후 2시부터 서라벌대학 원석체육관 컨벤션홀에서 경주신문 창간 17주년 기념 행사 및 ‘2006 경주시민상’시상식이 성황리에 열렸다.   연극인 이수일 선생과 장애우의 대모랄 수 있는 변숙이 여사 및 모범 경영인 이정호씨 대표 등 세 명이 올해로 여섯번째인 이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가운데에서 이수일 수상자에 대한 인물평을 적어 보라는 신문사측의 청탁이 있어서 주제넘는 노릇인 줄 알면서도 일단 감행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이수일 선생과의 관계가 오랜 세월 동안의 술친구요 필자의 서투른 극본 ‘신의 원죄’를 연출하여 전국연극제(1984년 광주)에 참가한 일이 있고 1990년대에도 졸작(拙作) ‘화랑 사다함’, ‘미실랑’ 등 몇 편을 경주의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연출한 인연 등이 참작된 것 같다.   이수일(李守一) 선생은 1935년 일본서 태어나 광복과 더불어 선대(先代)의 고향인 경주에 와서 여기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1955년에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57년 2월에 졸업했으니 철두철미 공연 무대 예술인의 과정을 거쳐 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당시 연극, 영화의 메카인 충무로 바닥을 누비고 다니면서 연기자로 활동하는 한편으로 영화 촬영장의 조감독으로 메가폰을 잡는 등 소위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소년시절부터 깊이 간직해 온 꿈이 있었다. 그것은 찬란한 신라 천년의 문화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숨쉬고 있는 고향땅 경주에서 연극의 꽃을 한번 피워 보겠다는 소망이었다. 그리하여 장래가 약속되는 화려한 서울 무대를 뒤로 하고 낙향하였으며 동지들을 규합, ‘에밀레극단’을 조직했는데 이는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는 최초로 발족된 연극단체였다. 마침내 몇 달 동안의 연습 끝에 유치진 극본의 ‘마의 태자’로 경주극장에서 창단 기념 공연을 했으니 실로 황무지에서 한 떨기 장미화가 피어난 형국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출발은 화려했지만 전도는 가시밭길이었다. 1957년이라면 53년 7월의 휴전 협정 성립으로 멈추게 된 6·25 동족 상잔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못한 시기로서 국토는 폐허로 변하고 산업은 피폐했으며 1인당 GNP가 겨우 60여 달러 정도여서 국민 대부분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던 무렵이었다. 그러니 극소수의 국민이외에는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분야에는 관심조차 가질 수 없던 때였다.   그런데 이 척박한 땅에 연극을 심겠다고 덤벼들었으니 돈키호테가 들어도 한참이나 웃을 일이었다.   본래 그는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서 유복한 청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것이 연극을 시작하면서 연습기간의 간식비로부터 무대장치와 의상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그 소요 경비를 오직 자신의 사재를 털어 충당하다시피 하다보니 차츰 가세가 기울어져서 급기야는 생계비 마저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1987년 여름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정관계(政官界) 여러분의 도움으로 숙원이던 ‘경주시립극단’이 창단됨으로써 ‘에밀레극단’ 단원 대부분이 지방 연극단체로는 처음으로 시립극단의 유급단원으로 편입될 수 있었고 동시에 작품 제작에 있어서도 시(市) 재정의 보조를 받게 됨으로써 연극 활동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그러나 상임연출가로서 시립극단을 이끈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그가 뿌린 씨앗의 열매는 고스란히 후진들의 몫으로 넘겨진 셈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시립극단의 고문이란 한직에 머무르고 있지만 직책이야 여하튼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하여 이금수 연출가와 이애자 예총 경주지부장을 비롯한 후배 단원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있다.   ‘에밀레극단’과 ‘경주시립극단’에서 활동한 40여 년의 세월 동안 약 일백여 편의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대부분이 그의 연출로 무대에 올랐으며 지방 연극 경연대회와 전국연극제에서 수많은 상을 타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보람있고 자랑스러운 상을 꼽는다면 2000년 4월에 수여받은 ‘동랑 연극상’일 것이다. 극작가 유치진 선생의 업적을 기려 제정된 이 연극상은 김동원, 장민호, 백승희, 여석기, 차범석, 오태석, 김정옥 씨 같은 그 이름만 듣고도 깜짝 놀랄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나 극작가, 연출가 등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상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한 명을 엄선해서 수여하는 이 상을 지방 연극인으로서는 그가 처음으로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한 것이다.   드라마센터에서 거행된 시상식에서 그의 생애와 활동상을 소개하는 십여분 가량의 영상물이 대형 스크린에 방영된 다음 지병인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는 그가 약간 불편한 거동으로 시상대에 올라 갔을 때 하객으로 참석한 장민호, 백승희, 유민영, 임영웅, 김정옥, 전무송 씨 등 원로 연극인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열열한 박수를 보내는 광경을 지켜 보면서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을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이번 ‘경주시민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다른 상도 더러 받은 경험이 있지만 경주 시민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이 상을 받게 되어 가장 자랑스럽다”는 요지의 소감을 밝혔다. 은관문화훈장, 외솔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바 있는 고 윤경렬 선생께서 ‘경주시 문화상’을 수상하면서 이와 비슷한 수상 소감을 피력하던 장면이 상기되어 필자에게는 남다른 인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경주시민상’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필자에게 각인된 두 가지 훌륭한 점을 밝혀 두고 싶다.   첫째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경력이나 업적이 시민적 모범이 되는 분들이 수상자로 선발됐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에만 한정된 일은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요즘은 시상자(施賞者)와 수상자(受賞者) 간의 주객이 전도된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서푼어치도 안되는 일을 하고는 3천냥짜리 상금을 받아야겠다며 당국이나 기관을 찾아다니며 시비를 거는 작태가 비일비재한 요즘 세태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과거에 근무하던 직장에 가서 ○○상을 받아야겠으니 추천서를 써달라며 조르고 협박하다 끝내 거절당하자 기관장을 사직당국에 고발한 열간이를 목격한 적도 있다...   둘째 부상으로 수표나 현찰 대신 메달이 수여되었다는 사실이다. 양남의 원자력발전소에서 협찬했다는 시가 약 2백만원 상당의 순금 메달이었는데 우아하고 기품 있는 디자인이 곁들여져 있었다.   부상이 돈일 경우는 대개 많은 하객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밥먹고 술마시다 보면 나중에는 상금을 다 날리고도 모자라 수상자가 곤욕을 치르기도 하는데 이보다 더 허무하고 비생산적인 행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친구와 친지 몇 사람이 공동으로 얼마씩 염출하여 대폿집에서 1차 파티를 열고 다른 주막으로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수상자가 별 부담없는 답례를 베풀고 헤어졌다는 이번 이수일 선생의 축하연의 후문을 접하고 매우 흐뭇하다.   사족(蛇足)으로 고언 한 마디를 드리고 싶다. 거의 모든 행사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일인데 대개 국민의례를 마치고는 내빈인사랑 순서가 있다. 사회자나 호스트가 내빈들 중에서 힘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호명하여 다른 손님들에게 피호명자의 직업이나 기타 힘을 쓰는 배경 등을 소개하면 당사자가 일어서서 절을 하거나 고개를 꾸뻑하면 손님들이 박수하는 형식인데 어떤 때는 호명 당하는 내빈이 수십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니 같은 초청장을 받고 참석해도 호명당하지 못하는 축은 비내빈이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성질 급한 비내빈이 “나는 손님이 아니고 각서리패란 말이냐?”며 불평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글로벌시대가 진행중이다. 보다 세련된 회의 진행 방식이 요망된다. 내빈과 비내빈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아까운 시간 20분, 40분, 1시간을 낭비하는 이런 촌스럽고 소모적인 저질쇼는 제발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시상식 때 벌어진 웃지 못 할 헤프닝에 대해서도 가벼운 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신문사 사장이 상장을 수여하고 메달을 목에 걸어주는데 참석한 시장과 시의회 의장에게 나와서 꽃다발을 전달해달라는 사회자의 명령이 내려진다. 시장은 못들은 척 했고 의장은 시키는 대로 했다. 꽃다발전달은 보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나 여직원들이 하는 걸 여러번 보아왔다. 그리고 명칭이 경주시민상인데 당연히 시장이 직접 수상자에게 수여하는 게 옮은 처사가 아닐까?   암튼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시장의 냉담한 태도가 마을에 들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대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꽃다발을 건네주는 의장의 관대함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잠시 조선조의 황희 정승을 연상해 보았다. 글·권윤식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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