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당비장 사다함의 ‘청조가’ 계림을 돌아 반월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반월성 옆 꽃밭엔 매년 국적모를 꽃들로 가득하니 가히 국제도시라 할 만하다. 받쳐든 우산으로 비가 제법 세차게 부딪히며, 이른 장마가 올해도 예사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토성사이로 난 마사토 환한 길을 걸어가면서 화려했던 천년 신라의 반월성이 함초롬히 피어있는 들꽃의 소박함에 묻혀 저만치 멀어져 감을 느낀다. 일찌기 탈해가 금관가야 김수로와의 변신 대결에 패하여, 배를 타고 양남 하서 해안으로 상륙하여, 토함산 토굴에서 이레를 지내고서 살만한 터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때 탈해의 눈을 사로잡은 곳이 반월성이었다. 탈해는 꾀를 내어, 조상이 대장장이라고 몰래 파묻은 숯으로 인하여 호공의 집을 빼앗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탈해집단의 고향을 페르시아로 보고, 조상을 대장장이라고 한 것이나, 또한 쇠의 바다(金海)에서 김수로와 대결을 한 것을 두고, 탈해를 페르시아 무기상인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탈해가 토함산에서 살터를 정한 곳은 곧 반월성 - 페르시아인의 표식으로 보여지는 (지금도 페르시아 이슬람 사원 꼭대기나 국기에 반월이 그려져 있다) - 문양을 찾아 먼저 정착한 페르시아인들의 집단 주거지를 찾은 것은 아닐까? 공교롭게도 호공이 원래 바다건너에서 살다가 서라벌에 정착하였다니, 설화의 이면에 숨어 있는 원뜻의 퍼즐맞추기는 서라벌 기행의 즐거운 상상이 항상 기행자를 들뜨게 하면서 발걸음이 순풍에 돛단 듯 하게 한다. 반월성을 가로 걸으며 이따끔 만나는 약간은 무뚝뚝해 보이는 서라벌인들의 어깨에 이젠 천년 망국의 한이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이 조금씩 조금씩 피어오르는 것 같다. 조악한 활쏘기 체험장을 나와서 안압지로 향하다 반월성 입구 오른쪽을 보면 깨끗하게 단장한 조그만 연못 같은 물웅덩이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탐방객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물안개 향연으로 나지막한 낮은 목소리로 기행자의 귓전을 간지른다. 때는 반도를 집어삼킬 듯한 기상이 온 서라벌을 감싸 안았던 진흥왕 시절, 열다섯 나이로 대가야 전단문으로 질풍같이 달려가 대가야 도설지왕의 항복을 받고 개선장군으로 위풍당당하게 서라벌 궁궐로 돌아온 귀당비장 사다함이었다. 그러나 개선 후 맹약의 벗 무관랑이 궁궐 담을 넘다가, 구지(해자)에 빠져 죽자, 칠일 동안 슬퍼하다가 친구를 따라 저승세계 갔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대가야를 호령하여 단번에 격파한 화랑정신의 표상 사다함이 친구 무관랑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다가 그를 따라 갔다니 참으로 삼류소설의 한 장면 같아서 입가에 쓴 웃음이 묻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삼국통일 정신의 출발점에 사다함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열전에 기록되어 전하는 ‘사다함전’에는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사다함과 미실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찾아보아야 열전에 누락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신라 최고의 미색 미실이는 남편 세종전군을 맞이하기 전 화랑 사다함과의 핑크빛 연정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화랑 중 최고의 자리인 풍월주에 오른 사다함으로서는 나라의 부름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다함과의 이별에 미실은 서라벌 밖으로까지 배웅하며 헤어지기 싫은 자신의 마음을 향가 에 오롯이 담아 놓고 있다. 바람이 불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된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 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고 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사다함과 미실은 두 손을 맞잡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냇가 버들가지를 꺾어 정표로 삼고자 하였다. 자꾸만 멀어지는 사랑을 보며, 발길을 눈물로 눈물로 밟아 가고 있었다. 몇 달 후 사다함은 대가야의 왕 도설지를 비롯한 오천여명의 포로를 이끌고 서라벌로 개선하면서, 오직 다시 만날 미실이의 생각에 다른 모든 개선행사에는 마음이 떠나 있었다. 왕이 상으로 준 포로는 양민으로 풀어주고, 여러 번의 사양 끝에 알천(북천)의 황무지 조금만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토록 연모했던 미실이는 이미 다른 사람(세종 전군)의 부인이 되어 왕궁에 들어가고 난 뒤였다. 사다함은 땅을 치며, 떠나간 사랑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너 나의 콩밭의 파랑 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 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 여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마음 아프고 여위 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 되리 (전주)에게 날아들어 보호하여 호신(護神) 되어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군 부처 보호하여 만년 천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 사다함은 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죽음을 결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출정식 때 향가 를 불러 주면서 기다리겠다는 미실이가 떠나버린 서라벌은 더 이상 사다함에게는 삶의 희망이 없어진 후였을 것이다. 여기에 뒤이어 맹약친구 무관랑까지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사다함은 아마도 식음을 전폐하고 그 뒤를 따르고자 했을 것이다. 미실이도 사다함을 잊지 못하고 있었는 것 같다. 를 보면, 미실이가 사다함이 죽은 후 천주사에서 사다함의 명복을 빌었는데, 그 날 밤 미실의 꿈에 사다함이 나타나 품에 들어오며 “나와 네가 부부가 되기를 원하였으니, 너의 배를 빌려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고 한다. 미실은 바로 임신이 되어 하종공을 낳았다. 하종공의 모습이 사다함과 심히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혹 사다함과 정을 통할 때에 이미 임신을 하고서 입궁하여 낳은 아들이라 한다. 사다함의 친구 무관랑을 집어 삼킨 구지(해자)에는 그 날의 일을 잊은 듯 빗방울 소리만 가득하고, 간간히 들려오는 사다함의 슬픈 사랑노래 가 반월성 고갯마루 위에서 그 날을 향해 짐짓 성낸 얼굴을 하고서, 구지의 무관랑 혼백을 부르고 있다. 박진환 프리랜스 기자 (pjw3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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