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곡면 나원1리 난원사가 있어 ‘난원(蘭原)’이 ‘나원(羅原)’으로 천년의 아름다움 간직한 나원리오층석탑 나원은 신라 제41대 헌덕왕 때 세웠다는 난원사(蘭原寺)가 있었으므로 ‘난원(蘭原)’이라고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1914년) 때부터 ‘나원(羅原)’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주에서 금장을 거쳐 형산강을 따라 안강방면으로 가다보면 연탄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오류리를 지나면 바로 나원이다. ‘지초골’, ‘숲각단’, ‘비알각단’, ‘탑골’이 나원1리이고, ‘못골’, ‘외골’, ‘호중골’이 나원2리, ‘탑각단(개탑)’, ‘선안동’이 나원3리가 된다. 나원1리는 연탄공장지대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철길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둔 다리를 넘어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벌판을 끼고 산 아래에 펼쳐진 마을이다. 이 마을은 지세가 마치 나팔모양처럼 형산강이 흐르는 남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산으로 오막하게 둘러싸여 아담하고 조용한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형산강변을 따라 동해남부선 철도가 만들어지면서 마을 어귀에 흐르는 형산강의 정취가 철로에 가로막히고, 백호의 머리에 해당하는 나발(나팔)산이 철도공사로 잘렸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그래서 마을이 잘 안된다고 믿고 있다. 일제 때 철도공사를 하면서 백호머리에 해당하는 나팔산을 뭉개고 이곳에서 채취한 돌로 제방을 쌓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조차 철로위로 놓인 고가다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게 되면서 마을이 갇히는 형국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 마을을 가로질러 안강-현곡 간 지방도가 새로 건설되면서 마을의 넓은 들판이 또 반으로 잘리고, 마을도 두 동강이로 잘려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 풍광마저 망쳐놓았다. 나원역과 나원리오층석탑이 있는 입구쪽 마을이 나원 1리이고, 그 안쪽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 나원 2리이다. 찰토마토 찰기 좋고 당도 높아 나원1리는 신라 제41대 헌덕왕 때 세웠다는 난원사(蘭原寺)터와 신라 3기8괴의 하나인 ‘나원백탑’으로 유명한 국보 제39호 나원리오층석탑이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절을 세울 때 앞들에 소가 있었고, 소 주위로 난초가 무성하여 절 이름을 ‘난원사’라고 하였다고 전하며 따라서 마을이름도 ‘난원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배씨 성을 가진 어떤 이가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지금은 경주김씨와 파평윤씨 연일정씨 등이 주로 많이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은 벼농사 외에 특산물인 찰토마토를 생산하고 있다. 나원1리에서만 35가구에서 4만여평을 재배하여 연간 12~13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 일대가 예전에는 형산강 물이 들어왔던 곳으로 지금도 땅을 1m만 파 내려가면 흰 강모래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물 빠짐이 좋아 토마토의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실제로 토마토 밭에서 먹어본 토마토는 찰기가 좋고 당도가 아주 높았다. 지금은 토마토를 거의 다 따 내고 모내기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토마토 농사를 위해 설치한 비닐하우스의 골조는 그냥 둔 채 논을 장만하여 모내기를 한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들은 국가보물인 아름다운 오층석탑이 마을에 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마을로 진입하는 길이 나쁘고 또 국보를 알리기 위한 이정표 하나 변변하게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마을에 흐르는 소하천정비사업과 마을안길 확포장을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이에 대한 관계기관의 적절한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국보를 제대로 알리는 길잡이 안내판의 경우는 많은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닌데 관심이 부족한 탓으로 지적된다. 마을 최고령자는 비알각단의 정용이(여 95 명촌댁)할머니로 큰소리로 말해야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귀가 조금 어두웠지만 아직 건강하시었다. 신현수(81 전 황성초등학교 교장), 정수영(72 예비역 육군중령), 신현걸(70 예비역 육군중령), 김명술(69 예비역 육군대령), 김인찬(51 가스공사 이사), 신 00(42 육군 중령), 이상목(00 서울대 00)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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