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찾아서...22 건천읍 금척리(金尺里) 신라 3기중 하나인 금자(金尺) 묻힌 곳 평절공 문절공 부자 신도비(神道碑) 나란히 당도 높은 ‘포도’ 찹쌀보리단지 금척은 경주에서 국도 제4호선을 따라 건천방면으로 약 12km 정도 가다가 모량을 지나 금척리고분군이 있는 마을이다.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신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신비의 금자(金尺)가 묻혀있는 곳이라고 하여 ‘금척(金尺)’으로 불린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이 마을의 동쪽에는 국도 4호선이 지나가고,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나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는 중앙선 철도가 관통하고 있다. 마을을 지나가는 철도를 중심으로 서편에 위치한 마을이 곡산 한씨들의 집성촌인 웃마을, 동편은 영천 이씨들의 집성촌인 아랫마을, 아랫마을 북쪽에는 순흥안씨들의 집성촌인 새각단, 금척고분군 남쪽에 하천을 끼고 있는 오방골 등 네 개의 자연부락이 금척리를 이루고 있다. 총 244세대에 남자 307명, 여자 328명으로 635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금척은 논농사 외에 포도 포도농사를 많이 짓는다. 포도밭을 집집마다 거의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당도가 14~16% 정도로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벼농사도 우렁이를 이용한 무 농약 친환경농법으로 짓는 농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찹쌀보리를 많이 재배하여 찹쌀보리단지로도 유명한 이 마을은 버섯을 생산하는 농가들도 다소 있다. 죽은 사람도 되 살아나 * 금척(金尺)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자(金尺)를 주면서 “너는 문무(文武)의 성신(聖神)으로 백성의 바램이 오래이다. 이 자(金尺)를 가지고 국토를 견고하고 바르게 다스리라” 하므로 꿈을 깨 보니 손에 금자가 쥐어져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꿈에 가르쳐준 신인의 말대로 죽은 사람을 금자로 재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병든 사람을 재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후 금자를 나라의 보물로 삼고 자자손손 물려오던 중, 당 황제가 이 소문을 듣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 이 신기한 금자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무례한 중국 사신의 청을 거절하고 흙무덤을 만들고 금자를 묻어버리고 주위에 수십 기의 무덤을 만들어 금자를 찾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이 무덤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금자가 묻혔다고 하여 이들 고분을 금척고분(金尺古墳)이라 불렀다 한다. 이에 연유해 마을 이름을 ‘금척’이라 하였다 한다. 자연부락단위로 집성촌형성 * 웃마을은 곡산 한씨(谷山韓氏)가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위쪽에 있으므로 ‘상리(上里)’ 혹은 ‘웃말’이라 한다. 94가구 중 80가구가 한씨다. * 아랫마을은 영천 이씨(永川李氏) 집성촌으로 아래쪽에 있어 ‘하리(下里)’ 혹은 ‘아랫말’이라고 한다. 100가구 중 85가구가 이씨다. * 새각단은 순흥 안씨(順興安氏)가 모여 사는 마을로 아랫말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리(新里)’ 혹은 ‘새각단’이라고 한다. 47가구 중 20가구가 안씨다. * 오방골은 약 80년 전 이곳에 사과밭이 일구어지면서 생긴 마을로 다섯 갈래의 길이 통하므로 ‘오방곡(五方谷)’ 혹은 ‘오통골’, ‘오통곡(五通谷)’이라고 부른다. 15가구. 논 갈다 경운기 빠진 자리에 큰 옹기 발굴 * 금척리 고분군(金尺里古墳群)은 신라 3기 하나인 금자가 고분 중 어느 하나에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신라시대의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1952년 국도 4호선 확장공사를 하던 중 파괴된 2기의 고분을 발굴한 결과, 통일신라 이전의 귀족묘로 밝혀졌다. 적석목곽분으로 세환식(細環式) 금귀걸이, 호박옥(琥珀玉), 곡옥(曲玉), 쇠칼 등이 출토되었다. 조산(造山)새, 조산서리, 금릉(金陵), 금척릉(金尺陵)이라고도 불려진다. * 금장원(金藏院)은 옛날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으로 금척(金尺) 동쪽에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지만 지금은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주민들에 따르면 금장원터로 알려진 논에서 작업을 하던 경운기가 갑자기 땅 밑으로 내려앉아 그 자리를 파보니 옛날 화장실로 추정되는 큰 옹기가 묻혀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이 알려진 데로 금장원 터가 아닐까 싶다. 금장원은 금척원(金尺院)이라고도 한다. * 금척리 열녀각(金尺里烈女閣)은 조선시대 열부(烈婦) 안동권씨를 기리기 위해 1936년에 세웠다. 권씨는 최남일(崔南逸)의 아내로, 분가한 형제들이 흉년으로 생활이 곤란하자 모두 불러들여 3형제가 의좋게 살았다. 또 자신도 병이 들어 사산한 몸이면서도, 죽어가는 남편에게 2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단지수혈을 하였다. 그러나 끝내 남편이 죽자 4일간 단식을 하며 따라 죽으려 했다. 자식들의 호소로 마음을 돌려 다시 가세를 일으키고 자녀들을 잘 가르쳤다. 그녀는 3년 동안 20리나 떨어진 남편의 묘를 하루도 빠짐없이 성묘를 다녔다고 한다. 금척리고분군 북쪽 새각단 입구에 있다. 처음엔 한옥으로 세웠으나 1972년 도로확장 때 지금의 위치에 옮겨 세우면서 조잡한 콘크리트건축물로 보기흉한 모습이 되었다. * 금척리 지석묘군(金尺里支石墓群)은 국도변 금척 마을에 3기(基)가 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2기는 없어지고 고분군 북쪽 포도밭 중간에 1기가 남아 있다. * 제극정(制克亭)은 조선시대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거쳐 세종 때 좌찬성(左贊成)겸 개성류수(開城留守)를 지낸 곡산인(谷山人) 정포(靜浦) 한옹(韓雍)을 추모하여 그의 후손이 금척리에 세운 정자로 1948년에 건립한 정자다. 웃마을에 있다. * 부자신도비(父子神道碑)는 종이품 이상의 시호를 받은 자만이 세울 수 있다. 조선시대 좌찬성을 지낸 평절공(平節公) 한옹의 신도비와 그의 아들 문절공 유선(儒仙) 한권(韓卷)의 신도비가 나란히 서 있다. 부자의 신도비가 나란히 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로 당시 이 가문의 위세를 가늠케 한다. * 만취정(晩翠亭)은 400여 년 전 영천인(永川人) 만취(晩翠) 이시강(李是橿)이 강학하기 위해 금척리 385번지에 세운 정자로 허물어진 것을 1936년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이시강은 21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그 후 의금부도사 등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곳에 옮겨 살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아랫마을에 있다. * 옥화정(玉華亭)은 순흥인(順興人) 문토 안상진(安尙眞)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37년에 세운 정자. 새각단에 있다. * 금옥제는 웃마을에 있는 서당으로 60년 말까지도 이곳에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마루에 먼지가 쌓인지 오래다. 금척과 옥잠산을 따서 금옥제라 부른 게 아닌가 한다. * 옥산(玉山)은 금척의 북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산의 형세가 마치 구슬옥(玉)자와 흡사해 ‘옥산’ 또는 ‘옥잠산(玉岑山)’이라고 한다. 언젠가 이산의 가운데의 흙을 파서 인재가 없다고 한다. 지금도 산과 산 사이 둑을 쌓아 북돋우곤 하는데, 이곳이 허하면 마을이 안 좋다고 해서 나무를 심던지 땅을 북돋운다고 한다. * 장구조산은 모양이 장구처럼 생긴 쌍분이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무덤을 파려하자,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사방이 어두워지는지라 겁이나 더 파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고 한다. 금척리 고분군 남서쪽 끝부분에 있다. * 당나무는 윗마을에 수령 400여년의 느티나무(건천읍 금척리 343번지)로 경주시가 보호수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주민들은 시가 세운 기념비에 수령이 300년으로 잘못 적혀 있다며 그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나무는 400년 세월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그 위용 또한 대단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나무가 오래되어 쇠락해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다가 근년에 와서는 해마다 막걸리를 붓고 영양제와 약을 살포하는 등 각별히 관리해 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매년 정월 초엿새에 동제를 지낸다. 지금도 제 지낸 후 막걸리를 몇 상자씩 나무에 붓는다고 한다. 마을 관통하는 중앙선 이설했음 마을주민들은 금척리고분군을 그냥 방치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개발해서 관광객이 유치되었으면 한다. 또 중앙선이 이설되어 갈라진 마을이 제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 마을 간도가 확장공사를 하다가 중단되어 있는데 이의 조속한 마무리와 조전천, 방내천의 하천정비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이 마을은 출신으로는 한영석(70) 전 법무부차관, 이근식(77) 시인, 한병환(59) 영덕기와 대표, 이옥택(50) 삼성전자 기술상무, 한성근(52) 치과원장, 안창현(45) 동산치과, 최상무(27) 카이스트 공학박사 등이 있다. ∎마을주요인물 이장 안병문(59) 새마을지도자 한영쇠(47) 노인회장 한진춘(72) 부녀회장 정제옥(46) 최고령자 안수천(92, 반외어른) 개발위원 한방식(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