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신문화 함께하는 그때 그 시절(1991년 주요뉴스)■ 지방자치제 30년 만에 부활 기초의회 등장 태풍 글래디스로 주민들 실의에 빠졌던 한해 ①30년 만에 부활 지방자치제(1991년 3월 26일)=30년 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제의 틀을 마련하는 시군 기초의원 선거가 3월 26일 실시되는 감격을 맞게 된다. 당시 17명을 뽑는 경주시선거구에서는 37명이 출사표를 던졌으며 13명을 선출하는 경주군선거구에서는 39명이 출마해 각축을 벌렸다. 당시 투표율은 경주시지역이 66.5%를 기록한 가운데 이식(58)씨가 최고령, 박헌오(40)씨가 최연소 당선됐다. 그리고 군지역이 72.5%의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이두환(56)씨가 최고령, 최학철(38)씨가 최연소 당선자로 기록됐다. ②추령재 터널공사 착공(1991년 4월 4일)=경주와 감포간의 획기적인 도로개선을 위해 계획했던 추령재 터널공사가 1990년 시행 후 1년만인 1991년 4월 4일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처음 계획으로 1993년말에 공사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공사를 맡은 벽산개발이 회사의 사정으로 미뤄져 공사 착공 7년 뒤인 1998년 1월 12일 개통된다. ③광역의원 민자당 싹쓸이(1991년 6월 20일)=경주시와 경주군을 대표하는 광역의원(도의원)선거가 6월 20일 실시된 가운데 민자당 후보들이 모두 당선되는 지역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경주시 광역의원선거는 임창구, 김경오, 손경호씨가, 경주군은 이해길, 최원병, 우영길씨가 각각 당선됐다. 그리고 경북도의회에 진출한 경주지역 의원들 중 손경호 의원이 도의회 의장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렸다. ④기억하고 싶지 않은 태풍 글래디스(1991년 8월 23일)=폭우를 동반한 태풍 글래디스가 경주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그해 8월 23일 내린 비로 덕동댐이 터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경주시민이 대비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안강읍은 거대한 호수로 변해 완전 침수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⑤불신만 심어준 경마장(1991년 8월 28일)=지금은 백지화 된 경주경마장 건설이 그해 8월 28일 공식적으로 거론된 때였다. 당시 이동천 경주시의회 의장은 1990년부터 부산과 대구, 경주가 경마장 부지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한 결과 경주가 최종 후보지로 결정됐다는 발표를 해 경주의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본지를 통해 이 내용이 보도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지역경제활성화와 사행성 조장론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경주경마장 건설은 문화재발굴문제로 수 년 동안 세월을 보내면서 경주는 무산되고 부산으로 결정됐다. ⑥덕동댐 안정성 논란(1991년 9월 7일)=태풍 글래디스로 덕동댐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다. 1991년 9월 7일 경주상의에서는 지역 기업인들이 모여 덕동댐 안전에 대한 긴급 시민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 요로에 대책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보냈다. 덕동댐의 안전성 문제로 여수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으며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단골메뉴가 됐으며 지난 2004년도에 여수토 공사는 완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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