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찾아서... 양남면 효동2리... 효부가 났다고 ‘효동(孝洞)’ 예부터 알려져 온 장수마을 “작아서 허리가 없어서 그렇다” 던진 돌이 얹히면 아들 낳는 ‘아들바위’ 월천은 마을 진입로, 늘밭은 식수가 애로 그네 뛰던 아이 떨어져 ‘애기수’ ‘효동(孝洞)’은 입실에서 동대산을 넘어 양남으로 가는 고갯마루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다. 마을 형세가 마치 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소재’, ‘우령리(牛嶺釐)’, ‘우잠리(牛岑里)’라 불렀으나 마을에서 효부(孝婦)가 났다고 하여 ‘효재’, ‘효령(孝嶺)’, ‘효잠(孝岑)’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효동, 남전, 한량골, 중산이 효동1리에 해당하고, 동대산 정상부분에 있는 머든과 그 남쪽 아래 계곡에 있는 월천, 다시 양남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북쪽에 보이는 늘밭 등이 효동2리를 이루고 있다. 예부터 장수마을로 널리 알려진 효동2리는 현재도 최고령자 박삼순(95) 할머니를 비롯해 차말출(94), 최주이(93) 할머니 등 아흔이 넘는 분들만 세 분이고 여든이 넘는 어르신들은 흔하다. 자그마한 체구의 박삼순 할머니는 아직도 농사일을 할 정도로 건강했다. 17살에 이곳으로 시집와서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는 박 할머니, “아직 허리도 굽지 않았고 참 정정하시네요”라는 말에 “작아서 허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어렵고 힘든 100년의 긴 인생여정을 거쳐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한 아름다움이 베어났다. 남자 최고령의 박상환(86 두산어른) 할아버지는 아흔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병원은 물론 약도 한번 먹은 적이 없고, 요즘도 나무를 한 짐씩 지게에 지고 다닐 정도로 힘이 장사라고 한다. 젊은 층의 부재는 어느 시골마을에나 다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이지만 이 마을의 경우는 마을주민들의 평균연령이 72세라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예부터 장수마을이라는 명성이 있듯이 마을 주민들이 장수하는 탓도 있겠지만.... 머든은 옛날부터 입실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길목으로써 인적이 드믄 곳이었으므로 이곳에 원(院)을 지어 행인들을 머물게 했는데 이에 연유하여 머무르다는 뜻으로 ‘머든’이라 불렀다 한다. 혹은 ‘내원(奈院)’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원은 알지 못하고, 옛날에 주막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곳에 토함산가든을 비롯한 12가구가 들어서 있다. 월천은 본래 다래골이다. 약 400여년전 이 마을 전화길(65) 이장의 14대조인 용궁 전씨의 부인이 남편을 여의고 아들 둘만 데리고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다래덤불이 우거져 있어 다래를 따먹고 살았다고 하여 ‘다래골’이라 불렀다한다. 마을을 흐르는 냇물이 하도 맑고 깨끗하여 달이 훤히 비친다고 하여 ‘달내골’ 혹은 ‘월천(月川)’이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이 마을은 동대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아름다운 산과 계곡으로 마치 무릉도원 같다. 단지 마을 진입로가 가파르고 좁아 통행에 어려움이 있어 이를 해결하는 게 주민들의 숙원이다. 이 마을은 총 23가구 중 전씨가 18가구를 차지하고 있는 용궁 전씨 집성촌이다. 늘밭은 옛날 이 마을에 스님들의 바랑갓을 만드는 재료로 쓰던 다년생 식물인 늘밭이 있었다고 하여 ‘늘밭’ 혹은 ‘어전(於田)’이라 불렀다는데, 지금은 늘밭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밀양 박씨가 주를 이루며 30가구가 생활하고 있는 이 마을은 식수를 비롯한 물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지하수를 개발했지만 백토 때문에 물이 안 나고, 철분이 많고 수질이 나빠서 먹는 건 고사하고, 생활용수로도 못쓸 형편이라고 한다. 이 지하수는 주민들의 피부손상이 심해 결국 폐쇄하고 지금은 간이 상수도 물을 먹고 있지만 거의 제한급수를 해야 하고 그나마 가물면 먹을 물조차 없어 금년 여름에도 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땅이 진흙이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비)은 거의 손실 없이 가두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동대산 정상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효동2리에는 바위와 폭포에 얽힌 몇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말맨바위는 바위에 말을 맬 수 있는 손잡이와 같은 구멍이 난데서 유래된 이야기로 옛날에 어떤 장군이 한 손으로 바위를 잡아 그 손 자욱으로 바위에 구멍이 생겨 그곳에 말을 맸다고 말맨바위라 하는데, 그 손 자욱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아들바위(들락바위)는 여자가 왼손으로 돌을 던져서 바위 위에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아들바위’라고하고, 머든의 길목에 있어 사람들이 들락거렸다고 해서 ‘들락바위’라고도 불린다. 동대산 정상부 도로아래 남쪽 계곡에 있다. *애기수(애기폭포, 애기청소)는 암벽을 타고 내리는 폭포수로 인해 깊은 웅덩이가 만들어진 곳으로 옛날에 그네를 뛰던 아이가 이곳에 떨어져 죽었다고 하여 ‘애기수’, ‘애기청소’, ‘애기폭포’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이곳에 애기의 돌무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다. 월천마을 어귀에 있는 이 폭포는 기암절벽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계곡으로 지금은 용담사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고 애기수로 가는 곳에는 철제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20년간 농사지어도 농약 친적 없어” 효동2리는 총 77세대 162명에 남자 77명, 여자 85명이 각각 생활하고 있는 해발 5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대부분 소득은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별다른 특산물은 없는 형편이다. 고립된 마을이라 아직까지 병충해가 거의 없고, 그래서 처음부터 농약을 치지 않고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왔다고 한다. 지금이야 도로가 개설되어 형편이 좋아 졌지만 그 전에는 걸어서 큰 재를 넘어 다녔다. 주로 나무를 해서 입실장, 감포장에 팔아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온종일 걸어야하는 멀고 험한 길을 지게 짐을 지고 장에 갈 때는 밥을 싸서 다녀야 했다고 하니 그 어려움이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지경이었을 것이다. 장수의 비결이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은 헬스클럽이나 등산을 통해 건강을 지키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삶 자체가 웰빙이었으니... 그리고 힘겹고 어려울수록 인정은 살아나는 것일까? 마을주민들은 한 가족처럼 화목하고 비록 햇살에 그을렸지만 주민들의 얼굴이 밝고 맑은 것도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전영준 검사(34 창원지검), 전홍렬(69) 전 경주시 국장, 전승렬(67) 전 안강읍장 등이 있다. ‣ 마을 주요인물 이장 전화길(65) 노인회장 박인환(75) 늘밭반장 박필영(62)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 최고령자 박삼순(95 수동댁) 할머니 남자 최고령의 박상환(86 두산어른)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