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산책 ‘금장낙안’과 ‘낙안(落雁)’의 유래 “서라벌 옛 자취를 두루 찾아오노라니, 맑은 하늘에 기러기는커녕, 나는 새 한 마리 안보이고, 오직 있나니 금장대 밑 푸른 소에, 봄바람 출렁이는 연기 물결 뿐 이로고” 조선시대 권위라는 시인묵객이 금장대에서 남긴 시다. 최근에 서천 둔치에 조깅코스가 마련되고 정성스레 심은 잔디가 노랗게 물들어서 강변도로에서 바라보이는 금장대는 초겨울 바람에 출렁거리는 애기청소의 물결에다 한가롭게 노니는 청둥오리를 비롯한 철새들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선사시대 유적인 금장대 암각화, 구전으로 전해지는 금장사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군 유적 그리고 삼국유사 김유신 조에 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청연(淸淵)과의 연관성 등 금장대는 찾으면 찾을수록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보다 더 깊은 매력을 준다. 특히 경주를 지나 날아가는 기러기가 넓은 강변과 푸른 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금장대의 절경으로 인하여 반드시 금장대에 앉았다가 간다고 하여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는 말이 생겼고, 서라벌의 세 가지 보물인 삼기(금척, 만파식적, 에밀레종)와 여덟 가지 괴이한 현상인 팔괴(문천도사, 안압부평, 백률송순, 금장낙안, 불국영지, 선도효색, 금오만하, 계림황엽) 중 하나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런데 금장대를 찾을 때마다 난 늘 이런 의문을 가졌다. 기러기야 안압지에도 앉았고 또 다른 곳에도 앉을 수가 있고, 청둥오리를 비롯한 다른 철새로 많이 찾아오는데 왜 하필이면 ‘낙안(落雁)’ 즉 ‘기러기가 땅에 떨어지다’라는 의미의 글귀가 쓰였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은데 왜 우리의 옛 선조들이 ‘낙안’이라는 글귀로 금장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늘 가졌는데,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다 ‘낙안(落雁)’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가장 극찬의 표현임을 알았고 ‘금장낙안’도 그렇게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중국 사람에게 ‘落雁’이라고 하면 금방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다는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왕소군을 떠올린다. 중국 한나라 원제 경녕 원년(BC33년)에 남흉노 선우 호안야가 원제를 알현하러 장안(현재의 서안)에 왔다가 마음에 드는 공주를 선택하여 사위됨을 허락하겠다는 원제의 승낙을 얻고 둘러보다 공주보다 더 아름다운 궁녀인 왕소군을 찍었는데, 원제도 바라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이미 승낙한 약속을 안 지킬 수도 없고 보내자니 아깝고 해서 혼수준비 핑계로 3일의 말미를 얻어 미앙궁에서 원제와 정을 나누고 ‘소군(小君)’의 칭호를 내리고 이별을 하는데, 흉노족 복장을 한 왕소군이 가슴에 비파를 안고 말에 올라 늙은 호안야를 따라 흉노땅으로 팔려가면서,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는 슬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말 위에 앉은 채 비파로 이별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듣고 말 위에 앉은 왕소군의 미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있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낙안(落雁)"이라면 왕소군을 칭하고 중국에선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옛 선비들이 애기청소에 기러기를 비롯한 철새들이 노닐고 또 금장대의 경치가 아름다우니까 중국 왕소군에서 유래된 ‘낙안’이라는 말을 사용해 ‘금장낙안’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진: 초겨울 날씨에도 움추리지 않는 금장대의 아름다운 전경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