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30대 문무대왕’ 작은 고추가 맵다 “내가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노라”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여러 나라를 둘러보아도 나라를 위해 용이 되겠으니 바다 속에 묻어달라는 임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우리나라 신라임금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이고 의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작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나라다. 그 첫 출발이 신라의 문무대왕인지도 모르겠다. 삼국 중에서도 가장 늦게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통일을 이룩했고 작은 나라임에도 큰 당나라를 지혜롭게 이용할 줄 알았고 뒤통수 맞은 당나라의 침략도 매소성 싸움에서 승리로 이끌어냈다. 매소성은 매섭게 이긴다고 붙여진 이름은 아닐는지 생각해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각기 문화가 다른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한나라로 묶는 과정에서 정말 힘든 일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회과 부도에 보면 세 나라로 갈라 진 곳이 거의 큰 산맥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아마도 산을 하나 넘어 간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저절로 지금의 도를 나누는 경계처럼 되어 나라가 분리되었지 않나싶다. 한 가정에서만 보더라도 특히 우리 집에서도 점심밥 하나를 시켜먹어도 종류가 다 다르다. 자장면을 좋아하는 동생과 돈까스를 좋아하는 나, 국물은 절대 싫다는 엄마, 뭐든 잘 드시는 아빠, 이러하다보니 우린 점심 한번 먹는데도 대단한 조율이 필요하다. 하물며 산맥으로 막힌 세 나라를 합쳐놨으니 이끌어가는 임금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고 선견지명이나 지혜가 없다면 감히 앉을 수 없는 자리 또한 임금의 자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 반의 반장만 보더라도 아이들의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끌어 가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 할 때가 많다. 한 친구의 말을 들어주자니 다른 친구가 마음에 걸리고 또 다른 친구의 불만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했다. 아마 문무왕도 여러 신하들의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참으로 곤란할 때도 많았을 것이고 머리도 꽤나 아팠을 것 같다. 재위 20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통일을 위한 노력, 통일 후 한나라로 뭉치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이번 기회에 문무대왕에 대한 많은 자료와 이야기를 읽고 과연 한나라의 튼튼한 맥을 이어주는 성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삼국을 하나로 통일한 후 나라발전에 힘쓰기에도 바쁜 임금께 당과 왜는 우리나라를 가만 놔두지를 않았다. 어느 나라라고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남의 나라를 거저먹으려고 지금까지도 눈에 핏발을 세우는 나라가 있다.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를 거저 먹으려하지는 않는다.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빼앗으려는 몇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흩어졌던 세 나라를 합쳐 하나의 완전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문무왕께서는 안팎으로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죽어서까지도 용이 되겠다고 했을까?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차가운 바닷물에 임금님의 영혼이 발을 담그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다. 그러나 임금께서 원했던 일이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도 행복한 물장구를 치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가면서 힘들 때 힘이 되어주는 분은 여러분이 계시지만 나는 부모님이 제일 큰 힘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투거나 공부 때문에 힘들 때 어머니 아버지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고 나에게 힘을 주시며 지혜를 주신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문무왕께도 힘이 되어주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불교였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랬고 힘을 모을 때도 꼭 불교와 관계가 있었다. 여러 스님들의 지혜와 신통함에다 문무왕의 추진력을 합쳐서 나라를 지키고 힘든 일들을 이겨냈다. 그래서 죽어서도 화장을 하여 바다에 묻어달라는 것이며 용이 되겠다는 것도 모두 불교문화에서 온 것이 아닐까싶다. 불교에서는 예부터 화장을 장려했고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도 불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잠시 해본다. 지난여름에 감포 앞바다 문무왕 수중릉 앞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중릉까지는 배를 타고 가야했기 때문에 먼발치에서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만 보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려는데 수중릉과 쭉 이어져 연결된 강이 있었다. 그 강은 감은사지라는 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지은 절이었는데 지금은 불타 없어지고 동탑과 서탑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용이 되어 놀러 오시라고 바다에서 감은사 큰 법당아래까지 물길을 만들어 놨다는 것이었다. 정말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나도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먼저 앞섰다. 문무왕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나라면 나라, 자식이면 자식, 신하면 신하, 백성이면 백성,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잘 다스린 분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신라의 옆구리 동네 울산에 살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신라인 경주에 사셨다. 신라가 문무대왕의 업적을 이어받고 나라를 잘 지켜 왔더라면 아마 지금 서울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신라의 마마님이 되어있었을 것이고 나도 예쁜 낭자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지금 비록 예쁜 낭자가 되지 못해 삼월이를 부릴 수 없어도 문무왕께서 우리의 훌륭한 임금이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땅도 작고 많지 않은 인구였지만, 그 정신과 힘, 지혜만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나라가 없는 우리나라가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고 그 옛날 문무왕의 씨앗들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나도 아직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작은 씨앗이 촉촉한 땅에서 자라 한포기의 고추가 되었을 때의 많은 사람들의 입과 가슴을 찌릿하게 울릴 자신이 있다. 나는 다름 아닌 문무대왕의 열매 중의 하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