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삼불사 바로 동편 언덕에 있는 선방골 석조삼존불 남쪽담장을 끼고 등산로를 따라 50여미터 쯤 더 올라가다 오른쪽 대나무 숲을 헤집고 들어가면 석조여래입상 한 구가 넘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기록에 의하면 이 불상은 얼굴만 결실된 머리 부분이 신체와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 지금은 머리 부분이 결실되어 행방을 알 수가 없고 몸 부분만 남아있다. 윤경렬 선생님의 ‘겨레의 땅 부처님 땅’에는 ‘얼굴도 반쪽이 깨어졌고 가슴에 올린 오른손도 떨어져 나가고 배광 일부도 파괴되어 볼품없이 되었으나 우뚝 솟은 육계며, 가는 허리에서 엉덩이로 흐르는 곡선의 풍성함이며 늘씬한 다리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아름다운 입상이었음을 짐작케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이곳을 답사하던 나는 불상의 가슴부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슴에 올린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고 오른 손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주위에 나무 그늘에 내가 잘못 보았나 싶어 몇 차례나 만져보고 사진을 찍어보고 하여도 분명히 부처님의 손이 가슴 위에 얹혀 있는데 수인이 퍽 특이한 형태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내외 불상을 보았지만 이런 형태(오른손을 가슴부근에 얹었는데 중지와 약지만 구부린 모습)는 처음 보았다. 집에 돌아와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의 불상에 관한 많은 책을 다 뒤져 보아도 선방골 석조여래입상과 같은 수인은 없었다. 불교에서 수인은 불상이나 보살상의 종류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고대 인도에서는 손가락의 형태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불상에도 반영되어 설법인, 선정인, 항마인, 여원인, 시무외인 등 ‘석가의 근본5인’ 수인이 성립되었다. 그 외에도 합장인과 지권인과 아미타구품인 등이 있으나 선방골 석조여래입상의 수인과 같이 오른손을 가슴에 얹되 중지와 약지만 구부리고 다른 손가락은 편 특이한 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밀교에서 머리에 말이 얹어져 있는 변화관음인 ‘마두관음상’을 보면 두 손을 마주대어 합장을 하되 검지와 중지만 구부린 ‘마구인’이라는 수인이 있지만 선방골여래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불상이나 보살상을 보면 간혹 지물이나 옷자락을 잡을 때 다른 손가락은 펼친 채 중지와 약지를 구부린 것은 관찰할 수가 있으나 가슴에 손을 얹은 형태로 중지와 약지만 구부린 수인은 정말 특이하다. 혹시나 가슴에 얹은 오른손의 검지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손가락이 아니고 어떤 지물의 일부분이라면 불상이 아니고 보살상이 되는데 모든 설명 자료에 보면 분명히 불상이라고 했다. 편 손으로 살포시 옷자락을 잡을 수는 있으되 가슴에 얹은 손으로 옷자락을 잡았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 날 이후로 틈만나면 매일 남산 선방골을 찾는다. 또 경주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불상중의 한 곳인 선방골 석조삼존불은 볼 때마다 매력이 넘친다. 그리고 삼불사와 망월사 경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00여 미터 떨어진 동쪽 계곡 속에 누워계신 선방골 석조여래입상의 가슴에 얹힌 오른손의 수인은 보면 볼수록 그 신기함과 정겨움이 더하고 오후 시간 숲 사이로 베어드는 햇볕의 변화무상한 조화로 불상의 모습은 시시각각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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