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공작무늬돌(경주박물관 야외정원)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유물 전시관 현관문 오른편 정원에 길이 3미터 높이 68.5센티미터의 길다란 화강석이 놓여 있다. 한쪽 면을 다듬은 뒤 오른쪽으로 치우쳐 크고 작은 3개의 원들이 서로 붙어 새겨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맨 오른쪽 원의 내부에는 4~5개의 잎이 달린 나무를 한 마리의 사자가 감싸고 있는 듯 하고, 가운데 원 가장자리에 구슬무늬띠(連珠文帶)를 돌리고 그 안에 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새(공작새 추정)들이 마치 모이를 쪼아 먹는 듯 좌우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왼쪽의 원은 미완성으로 안에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고 다만 가장자리에 구슬무늬띠를 일부 새긴 듯 하다.
박물관 유물도록에는 󰡒이것은 무엇에 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좌우대칭의 새를 무늬로 삼은 점이 서역문화의 영향이고 제작연대는 8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학계의 주장에 의하면 사자와 좌우대칭의 새 무늬 그리고 구슬무늬띠 등이 사산조 페르시아(A.D.226-A.D.651)에서 유행했던 문양이기에 이 화강석을 󰡐페르시아 문양석󰡑이라고도 부른다.
경주박물관 대학에 입문한 지가 벌써 3년 째라 다른 유물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기본 상식을 얻었으나, 아쉽게도 이 페르시아 문양석 앞을 지날 땐 뭔가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늘 아쉬움을 간직한 채 박물관 정문을 나서곤 했다. 그런데 근래에 실크로드를 답사하였고 또 일본에 전래되었다는 사산조 페르시아 문양의 유물에 대한 사진 몇 점을 보고는 어렴풋이 페르시아 문양석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를 잡은 듯하여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다.
중국 신강성 쿠차의 키질석굴 60번 굴의 벽화 중에는 구슬무늬띠 속에 역시 구슬띠를 입에 문 오리문양이 좌우대칭으로 연속적으로 그려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슬띠 사이에는 좌우대칭인 나무가 그려져 있다. 중국측 설명자료에 의하면 사샨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란다.
그리고 일본 나라시의 법륭사(法隆寺)의 󰡐사자수문금(獅子狩文錦)󰡑 그림을 보면, 가운데 있는 나무 아래 양쪽에서 말을 탄 기사가 활로 사자를 공격하는 모습이며 둘레는 구슬무늬띠가 있는데 이 또한 사산조 페르시아 문양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박물관의 페르시아 문양석(일명 사자․공작무늬돌)과 키질석굴 벽화 그리고 일본 법륭사의 비단그림 셋을 놓고 공통점을 찾아보면, 󰡐구슬무늬띠, 좌우대칭 새 혹은 맹수(사자)󰡑의 문양이 있으면 대체로 사산조 페르시아풍으로 보아도 무난하다.
특히 고구려 벽화에서도 간혹 보이는 󰡐달리는 말 위에서 뒤를 보면서 활을 쏘아 맹수(특히 사자)를 사냥하는 모습󰡑을 󰡐페르시안 샷󰡑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부터 비롯한 사냥법으로 현재 이란지역(옛날 사산조 페르시아)에선 이런 유형 그림의 유물이 많이 나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 󰡐샤프르2세의 사자사냥그림 은제그릇󰡑이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테네 학림을 폐쇄시킨 후 그리스의 학자와 기술자들이 대거 사산조 페르시아로 망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산조 페르시아는 공예나 그림 무늬의 도안에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고대 비단길을 통해 벽걸이 장식, 보석, 각종 옷감, 청동기, 화장품 등 명품들을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 전파하였다. 그 문화전파의 일부 발자국이 우리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앞 정원에 있는 사자․공작무늬돌에도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