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박물관 미술관 2층의 황룡사 출토 유물전시실에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등 사신도(四神圖)와 난해한 한문글귀가 새겨진 청동거울은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될 뿐 아직 전체 명문에 대한 완전한 해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보면 볼수록 그 정체가 궁금하던 유물이다.
그런데 지난 추석연휴 밤에 서재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 역사책과 유물에 관한 전공서적을 뒤지던 나는 중국 수나라 때 제작된 동경(銅鏡) 사진 몇 점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놀란 가슴을 쓰다듬어 가면서 밤새도록 중국간자체 사전을 통해 읽고 또 읽기를 수 십번! 새벽나절에서야 황룡사지 출토 사신도동경의 비밀열쇠를 찾았고 어렵게만 보이던 한자명문의 뜻을 풀어보니 정다운 한자성어 싯귀의 운율이 오감을 전율시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경주박물관 미술관의 황룡사지 출토 사신도그림 동경은 중국 수나라 때 만들어진 ꡐ영산잉보사신경(靈山孕寶四神鏡)ꡑ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측 자료에 의하면 중국동경은 그 제작 시기에 따라 제가문화(齊家文化), 상대(商代), 춘추전국(春秋戰國), 진․한(秦.漢), 육조(六朝), 수(隨), 당(唐), 송․요․명․청(宋.遼.明.淸) 시대의 동경으로 구분하고 또 회념(懷念), 축원(祝愿), 길상(吉祥), 광명(光明), 장사(匠師), 기년(紀年), 찬미(讚美), 신화(神話), 애정(愛情), 시사어(詩詞語) 등 명문(銘文)의 내용으로 나누어 감상할 수가 있다.
현재 경주박물관 전시실의 황룡사지 출토 청동거울 앞에는 모사도와 함께 ꡐ(卨)形圓曉月光淸夜珠玉臺希世紅庄應圓 千稿集影百福來扶△靈山孕貞神使觀爐ꡑ라는 한자해독문이 적혀 있다. 중국측 자료를 통해 이러한 명문은 네 글자씩 띄어 읽어야 함을 알았고, 또 몇몇 해독 안 되던 한자의 정체도 알았다.
중국 동경의 명문은 몇 가지 정형화된 한자성어로 되어 있는데, 수 나라 때 만들어진 ꡐ영산잉보경ꡑ 종류 중에 ꡐ靈山孕寶 神使觀爐 飛(形)圓曉月 光淸夜珠 玉臺希世 紅庄應圖 千嬌集影 百福來扶ꡑ라는 명문이 자주 나온다.
사자성어 8개로 총 32글자인 ꡐ영산잉보경ꡑ의 명문의 뜻을 나는 ꡐ신령스런 영산이 잉태한 보배요, 영산에 사는 신이 보낸 화롯불처럼 보이는, 하늘에 떠있는 둥근(형태의) 새벽달은 그 빛이 맑은 밤의 보배요, 옥대를 바라는 세상에 발갛게 분장하여 응해주는 모습이, 천 가지의 요염한 자태(그림자)를 모아서 백 개의 복을 가져다주는 님ꡑ으로 풀어 보았다.
중국 수나라 때 제작된 ꡐ영산잉보조수경(靈山孕寶鳥獸鏡)ꡑ과 ꡐ류금여산신인서수경(金留金靈山神人瑞獸鏡)ꡑ은 황룡사 출토 동경과 명문이 똑같고, 영산에 사는 봉황과 천견 그리고 신선 및 신령스런 동물이 그려져 있으며, ꡐ선산사신십이지생초경(仙山四神十二支生肖鏡)ꡑ은 명문내용은 약간 달라도 황룡사지 동경과 거의 같은 사신도 그림에다 바깥테두리에 십이지신상을 정교하게 그려 넣었다. 황룡사지 동경은 ꡐ영산잉보사신경ꡑ으로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 때 중국 북제와 진나라에 사신을 여러 차례 보냈고, 진평왕 때도 지명스님과 원광스님이 진나라와 수나라에 구법수행을 다녀왔고 수나라와 여러 차례 조공을 했었는데, 그 때 들어온 영산잉보사신경이 훗날 선덕여왕 15년(646년)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울 때 심초석 하부에 지진구로 묻혔지 않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