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길목. 가을 들녘엔 선정적으로 붉은 꽃무릇이 선뵌다.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기는 상사화와 같지만, 분홍이나 노란 상사화가 여름꽃이라면, 붉은 꽃무릇은 가을꽃이다. 유독 절집에 꽃무릇이 많다. 금욕을 실천하는 수행 스님과 닮아 열매를 못맺어서 그런가, 탱화를 그릴 때 뿌리 즙을 바르면 좀이 쓰지 않아서 그런가. 잎 하나 달지 않은 긴 대궁에, 미인의 속눈썹처럼 길게 뻗은 수술에 화려한 화관같은 꽃무릇 이 애잔해 보인다면, 세월의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