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지하(시인. 영남대 석좌교수)  영남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여러 벗님들, 아우님들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엇공부’를 시작한다. ‘엇’은 ‘서로 엇간다’는 그’엇’이니 ‘혼돈’이다. ‘대~한민국’과 같다. 왜 하필 ‘엇’인가?   지구현실, 지구를 둘러싼 우주현실의 외마디 규정은 ‘대혼돈(Big chaos)’이라 한다.   인간내면의 도덕적 혼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한 빈·부국간의 격차의 심화, 문명충돌, 테러와 전쟁, 전 지구 생태계의 오염·파괴·멸종, ‘쓰나미’, 온난화, 해수면 상승 등 기상이변 속출, 전염병 등. 여기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탁월하고 통합적인 지구과학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탁월한 과학일수록 도리어 의미심장한 인문학적 담론(discourse)의 촉매가 필요하며 그 담론은 오히려 문학예술의 기준(paradigm)에 의해 촉발되는 그 기준은 또한 신화와 상상력의 원형(archetype)에 따라 발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원형, 그 기준, 그 담론이 유럽·미국 등의 신화, 예술, 인문학의 역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혼돈 그 나름의 질서(chaosmos)’일터인데 바로 그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동아시아에 대한 유럽과 미국인, 세계인들의 ‘이스트 터닝· 東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중국에는 있는가?  있다. 그러나 없다. 있기는 분명 있지만 살아있지 않다. 산채로 죽어있다. 왜 그런가?   수천년에 걸쳐, 수백년에 걸쳐, 수십년에 걸쳐 집요하고 교활한 관료지식인들의 통치철학에 의해 버언히 눈뜨고 앉아서 죽임당한 것이다.   공자사상의 핵심은 제사인데 그 제사방식을 한국의 성균관에 와서 비밀리에 배워가는 현중국의 사상현실은!   중국불교의 불꽃은 선(禪)불교인데 한국불교에 와서 조동(曹洞)임재(臨濟)의 법맥을 찾는 중국적 공(空)의 몰골은!   삼천년이 이미 지나 그 혼허(混虛)의 생명을 상실해가는 주역을 도리어 활성화 할 정역(正易)이 바로 이 땅 한국에서 솟은 이치는?   그리고 제 안에 유불도를 이미 모셔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큰 충격을 흡수하여 그 바탕으로 선도풍류의 초혼돈학적 생명사상을 크게 발현시키고 있는 동학이 싹트고 압살되고 삼은삼현(三隱三現)의 미스테리에 따라 다시금 부활하고 있는 지금 이곳 대구 영남의 한국학의 소식들은?   이것은 분명 한민족의 세계사적 소명과 관련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책략’이라 부름직한 우리 민족의 서바이벌 게임이자 창조적 문명 전략의 기초공사와 직결될 것이다.   나는 ‘시인’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용납된다면 ‘형님’이다. 직업이 ‘형님’이니 ‘이리저리 해보면 어때?’라는 도움말 주는 것이 내 활동의 전부란 말이다.   그러니 개념에서 관념으로 이어지거나 실증에서 논증으로 내닫는 따위는 나와 무관하다. 속절없는 기대도 허망하지만 부질없는 걱정도 우습꽝스럽다. 이 한 몸으로 반도조국의 역사위에   일대 서사시를 쓰겠다는 신념으로 8년을 볼펜구경조차 못하던 때보다는 그래도 문인답다는 이야기다.   ‘엇 공부’는 동학 공부다. 그 과정은 원형인 부적 이야기, 기준인 주문이야기, 담론인 ‘만사지(万事知)’이야기 순으로 확장 반복, 반복 확장 될 것이다.   그리고 흰 그늘의 미학 및 예술과 생명사상 사이에서, 동학과 원효불교 사이에서, 수운과 퇴계 사이에서, 생명론과 평화론 사이에서,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역동과 균형론 사이에서, 생명과 영성 사이에서 그야말로 우왕좌왕 할 것이다.   우왕좌왕이 바로 ‘엇’이니 누가 알겠느냐, 그리 가다가 멋진 ‘잉어걸이’한 매듭이 솟아 날런지?   또한 그 누가 알겠느냐, 그 와중에 영남학이 삼남학이 되고 삼남학이 한국학이 되고 한국학이 동아시아 태평양학의 말꼬리가 돼버리는 ‘괴(怪)’에 부닥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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