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의 묘(앞)와 김인문의 묘(뒤) 전경
개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주인이 아니면 짖기에 도둑을 잘 지켜 예로부터 집집마다 한 두 마리씩 키우곤 했다. 또 개는 주인이 바뀌어 새 주인과 정들면 또 그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동물이다.
며칠 전 저녁 무렵 서악에 있는 태종무열왕릉고분군을 답사했다. 태종무열왕릉 비석 귀부와 이수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 시간쯤 머무르면서 디카의 버튼을 수 십번 눌렀다. 그리고 정문을 나왔더니 확 트인 시야에 남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가까이는 김인문 묘 비각의 지붕기와를 새로 고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습관처럼 김인문 묘 비각 쪽으로 산책하다 그 날 따라 문득 김양의 묘 앞에 섰다.
경주에 백 여기가 넘는 대형 고분이 있었지만 왕이 아닌데도 그 무덤의 이름이 전해지는 것은 몇 기 되지 않는다. 얼른 생각하기에 전 김유신장군 묘, 전 설총 묘, 전 김후직 묘와 전 김양의 묘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양”이라! 그냥 들으면 무슨 다방에 차 배달하는 아가씨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문화재 안내판을 읽어보면 “김양(808-857)은 태종무열왕의 9세손으로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신무왕이 된 김우징을 도와 민애왕의 뒤를 잇게 하였고, 다음 왕인 문성왕도 받들었다. 그 후 헌안왕 때 김양이 세상을 떠나자 대각간을 추증하고 무열왕릉 곁에 장사를 지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을 읽어보면 사실은 신라후대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흥덕왕의 사촌 균정과 당질 제륭사이에 권력다툼이 벌어졌고, 처음에 김양이 받든 균정이 먼저 궁궐을 차지했으나 제륭(희강왕)과 김명(민애왕)이 궁궐을 에워싼 군사대치 상황에서 김양이 제륭의 부하인 배훤백의 화살에 다리를 맞아 부상을 입고 겨우 도망하였고 균정은 살해되었다.
훗날 김양은 청해진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 다시 서라벌로 진격하여 민애왕을 죽이고 쿠테타에 성공하여 균정의 아들 우징이 신무왕이 되는데 일등공신이 된다. 아울러 신무왕의 뒤를 이은 문성왕 때도 여러 벼슬로 국정의 주역이 된다.
그런데 제륭과 김명의 쿠데타로 자신이 받들던 균정이 살해당하고 자신도 화살에 맞아 겨우 목숨만 건져 탈출했고, 훗날 균정의 아들 우징과 함께 다시 쿠데타에 성공하여 권력을 쥐었을 때다. 희강왕 민애왕 편에 섰던 반역자들을 당연히 처단하는 것이 상례이나 자기를 쏘았던 배훤백을 불러놓고 “개는 저마다 제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이다(犬各吠非其主). 네(훤백)가 제 주인(희강왕)을 위해 나를(균정을 받들던 김양) 쏘았으니 의로운 사람이라 내가 탓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라고 하니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감복하여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고 정치보복이 없는 축복의 분위기 속에서 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라고 삼국사기 열전 제4(김양)편에 기록되어 있다.
김양은 이미 천 여년 전에 정치보복이 없는 대 화해와 용서의 정치를 펼친 인물이다. 문화재 산책길에는 수 많은 유적, 유물을 만나서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치면 평범한 무덤에 불과한 김양의 묘 앞에서 삼국사기를 펼쳐 놓으면 정말 이 보다 더 깊은 역사적 교훈과 감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견각폐비기주(犬各吠非其主)! “개는 저마다 자기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이다.” 간결명료하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은 맛과 삶의 지혜가 배어나는 문화재산책길에 만난 최고의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