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왕릉은 찬란한 문화가 꽃피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고 화표석, 석인상, 석사자, 혼유석, 십이지신상 등 신라왕릉 중에 가장 완성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 종래 문인상으로 불렸던 관복을 입은 석인상의 관모는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 때 신부가 쓰던 족두리와 비슷하기도 하고, 또 자세히 보면 모자에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어느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런 형의 모자는 서역지방의 소수민족들이 즐겨 쓰는 모자라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마침 실크로드 문화답사를 갈 기회가 있어서 직접 가보니 원성왕릉 석인상의 관모를 눈이 시리도록 볼 수가 있었다. 서역 즉 현재의 중국 신강성 지방이다.
우루무치, 투르판, 쿠차, 민풍, 호탄, 카슈카르 등 서역지방(현재 중국 신강성)을 여행하면서 나의 가장 주된 관심은 괘릉 석인상의 관모와 같은 형태가 지금도 남아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중국은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47개 소수민족이 이 신강성 지방에 몰려 살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다수인 위그르(일명 돌궐)족들이 아직도 원성왕릉 석인상의 관모와 같은 형태의 모자를 쓰고 생활하고 있었다.
위그르 족은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여 아직도 중국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만의 언어를 고집하고 있기에 원성왕릉 석인상이 세워질 무렵의 서역인의 생활문화의 대부분이 아직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추정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위그르 족들은 󰡐닷빠󰡑라고 부르는 이런 형의 흰 모자가 가장 일반적이고 여러가지 아름다운 색채의 다양한 모자를 쓰는 게 생활화 되어 있었다. 특히 애기들이 쓰는 모자는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우리나라 전통혼례식 때 신부가 쓰는 족두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원성왕릉 석인상의 관모도 자세히 보면 현재 위그르 족들의 󰡐닷빠󰡑와 같이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또 우루무치 박물관에 전시된 천 수백년 전 중국 관리들이 신던 나무신발(앞이 스키처럼 들려 있는)이 원성왕릉과 흥덕왕릉의 석인상 신발과 똑 같은 형태(앞 부분에 새겨진 문양도 흡사함)에 깜짝 놀랐다.
원성왕릉을 갈 때마다 통일신라시대의 활발한 국제문화교류를 엿볼 수 있지만, 최근에 인천과 우루무치 간 비행기 노선이 열리면서 천년만에 다시 실크로드를 찾는 통일신라인 후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 수백년전 실크로드 서역문화의 일부가 고스란히 간직된 원성왕릉 석인상의 문화 예술적 가치는 더욱 더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