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동한) 때 화상전(그림이 새겨진 벽돌) 유물 중 그 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봉궐상전(鳳闕像塼) 높은 망루건물에 봉황이 앉은 모습의 벽돌)󰡑이 있다. 이미 이천년 전부터 중국에서는 지체 높은 사람의 집은 높은 망루같은 건축물을 세웠는데 이를 󰡐궐(闕)󰡑이라고 한다.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궁궐이라 하지만 󰡐궁(宮)󰡑과 󰡐궁궐(宮闕)󰡑은 엄연히 다르다. 즉 임금이 거처하는 큰 건물과 생활공간인 󰡐궁󰡑과 입구의 큰 망루인 󰡐궐󰡑이 합쳐져야 비로소 󰡐궁궐󰡑이 된다.   서울에는 조선왕조의 5대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 있고 궁 주위에는 담이 쳐져 있고 4대문이 있다. 조선시대 경복궁은 동쪽의 건춘문, 서쪽의 영추문, 남쪽의 광화문과 북쪽의 신무문 등 4대문을 갖추고 또 정문인 광화문 좌(동쪽), 우(서쪽) 담벽 귀퉁이에는 󰡐동십자각(東十字閣)󰡑과 󰡐서십자각(西十字閣)󰡑이라는 궐대를 세웠으니 궁궐(宮闕) 건축의 필수요소를 다 갖추었었다. 거기에 비하면 󰡐궁󰡑만 있고 󰡐궐󰡑은 없는 창덕궁,창경궁,경희궁,덕수궁 등은 엄밀하게 따져 󰡐궁󰡑이지 󰡐궁궐󰡑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데 일제시대 일본은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파괴하면서 근정전 앞에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고 1929년 조선박람회 개최와 전철부설을 핑계로 광화문과 궁장을 다 헐어버렸다. 1930년대 사진을 보면 광화문과 궁담장 그리고 서궐대인 󰡐서십자각󰡑까지도 파괴되었고 동쪽 궐대인 󰡐동십자각만󰡑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지금 있는 󰡐동십자각󰡑은 하부 석단은 1395년 태조임금이 경복궁 창건할 때 만든 것이고, 상부의 누각은 1867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할 때 세운 것이므로, 사실 거의 대부분 근래에 복원된 경복궁의 어느 건축물보다도 오래되었고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가장 소중한 유적인데, 얼마 전 그 곳을 방문해서 안내 간판을 보고는 너무나 실망을 했다. 광복이후 경복궁 복원공사를 하면서 궁담장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바람에 궁궐의 필수요소이자 유일한 󰡐궐대󰡑인 󰡐동십자각󰡑은 경복궁의 사적지(제117호) 구역에서조차 제외되었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13호로 그 격이 낮아져 사거리 길 복판에 고립되어 있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동쪽 궐대인 󰡐동십자각󰡑이 없이는 경복궁도 어디까지나 󰡐궁󰡑이지 결코 󰡐궁궐󰡑이 될 수가 없다는 기본적인 문화재상식을 문화재당국의 높은 어르신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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