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산책65
구정동 방형분에서 만난 안상(眼象)
며칠 전 불국사 기차역 앞 구정동 방형분 속에 들어가 디카를 몇 컷 찍고 저녘에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로 사진을 체크하면서 시상대 받침돌에 안상이 새겨져 있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무덤 안이 어두워서 육안으론 잘 보이지 않았지만 카메라 후레쉬엔 그 형상이 뚜렷하게 잡혔다.
불상의 대좌나 탑의 기단부 그리고 석등 등의 받침돌에 안상이 새겨진 것은 많이 보아도 무덤 속에 그것도 시신을 놓은 시신대 돌에 안상이 새겨져 있다니 참 신기했다.
간혹 방형분을 고구려 귀족의 무덤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구려 멸망(668년)시에 30살의 나이로 경주에 온 고구려 귀족이나 장군이 70세에 사망했다고 가정하면 방형분의 조성 시기는 708년경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고고학적 상식으로 신라 왕릉급 무덤의 외부호석에 십이지신상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전)성덕왕릉을 만든 효성왕이나 경덕왕 때인 740년대 혹은 750년대 이후이므로 고구려계 귀족이 100세 이상 장수하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다만 간접적으로 고구려 방형분의 영향을 일부 받았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1965년 복원된 방형분에서는 무인상과 사자상이 함께 조각된 특이한 모서리기둥돌이 발견되어 현재 경주박물관 정원에 있는데, 무인의 모습이 서역계통이고, 또 방형분의 십이지신상 조각수법 등을 볼 때 아마 원성왕(785~798년)릉이나 흥덕왕(826~836)릉과 비슷한 시기 혹은 그 이후인 9세기~10세기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답사를 통해 신라왕릉에 안상이 새겨진 혼유석이 남아있는 (전)성덕왕릉, 경덕왕릉, 원성왕릉, 흥덕왕릉 등의 안상 형태를 관찰해 본 결과 성덕왕릉처럼 곡선 끝이 위를 보고 뽀족 형태의 안상이 시기가 빠르고 흥덕왕릉처럼 덜 뾰족하고 양쪽의 장식 곡선 끝이 만나는 형태의 안상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며칠 전부터 수 차례 방형분을 재답사하고 시상대 받침돌에 아담하게 새겨진 3개의 안상을 관찰하고 다시 사진을 찍고 포토샵에서 안상의 형태를 붓으로 그려보기를 반복하면서 얻은 결론은 󰡐방형분의 안상은 성덕왕릉이나 원성왕릉의 안상처럼 곡선끝이 위를 향해 뾰족하게 나온 형태이므로 대체로 시기가 빠른 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더 세분화하면 42대 흥덕왕릉 보다는 신라33대 성덕왕릉과 38대 원성왕릉의 조성시기(8세기말~9세기초)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사견을 던져보면서 방형분 안상에 대해 앞으로 더 많은 문화답사자의 발걸음과 애정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