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해가 바뀌면 유별나게 찾는 책이 바로 토정비결이다. 토정비결은 조선조 명종 때의 토정(土亭) 이지함이 지은 일종의 도참서(圖讖書)로써 인본(印本), 태세(太歲), 월건(月建) 등을 숫자로 따지고 주역(周易)의 음양설에 근거하여 일년의 신수(身數)를 보는 것으로 중국에서 유행하던 여러 가지 술서(術書)를 인용하여 엮은 책이다. 토정은 잡학(雜學)을 즐기던 학자로서 이 책을 저술하여 사람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언하였다. 토정 이지함은 기인이자 점술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토정은 우리나라 최초로 자본주의 경제를 시도한 경제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지리학과 천문학을 탐구한 과학자였다. 그리고 토굴 속에 살며 빈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힘쓴 운동가이기도 했다. 토정의 이러한 행적이 더욱 빛나는 것은, 그가 당시에 설움을 받아 울분이 쌓여 있던 천민도 아니고, 집권 세력에서 소외되어 항거의 기회만 엿보고 있던 몰락 양반도 아닌, 좋은 가문의 전도양양한 선비였다는 점이다. 그는 고려 말의 대학자인 목은 이색의 7대손이었다. 그의 형인 지번은 청풍군수를 지냈고, 조카 산해는 북인의 영수로 영의정을 지냈으며, 산보는 이조판서를 지냈다. 그와 절친했던 율곡 이이는 당대의 정치와 학문의 중심에 있었고, 토정은 또한 권력의 핵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철저하게 야인 생활을 해나가면서 내우외환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물산과 지리를 파악하여 처음으로 유통개념을 생각해 내었다. 그는 경제라는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는 한편, 인간 개개인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은 왜 부모를 일찍 잃고 어떤 사람은 왜 병으로 평생 고생하는가? 어떤 사람은 왜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데,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방해를 받는가?’ 토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민중 속으로 뛰어들어 수십 년 동안 민중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직접 관찰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집대성한 인생사의 모든 문제와 방향을 이론적 입장에서 풀어,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명지침서 「토정비결」을 지었다. 토정비결은 요행이나 횡재를 가르치진 않는다. 안 될 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잘 될 때에는 보름달도 언젠가는 기우는 이치를 깨달아 겸허하게 살라는 식으로 인내와 중용과 슬기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토정이 참으로 몸 바쳐 풀려고 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한민족의 기를 고르게 잡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내분으로 한민족이 겪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해 그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토정비결의 내용을 믿건, 안 믿건 간에 많은 사람이 똑같은 운명으로 1년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점괘가 실소를 금치 못한 것들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좋은 쪽으로, 때로는 금기로 여기면서 믿고 지키기를 원한다. 7,8월에 물을 조심하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미성년자가 득남(得男)한다는 내용은 그 달에 좋은 징조가 비침을 믿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나라가 어지럽고 살기가 궁색하던 시대에 백성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큰 기대와 기다림을 가지고 산다는 점은 다소 낙관적인 내용이라 하겠다. 그러나 토정비결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늘 조심하면서 겸허하게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일 줄 알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