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천년고도, 문화도시, 역사도시 경주. 최근의 경주시 슬로건은 ‘가장 살고 싶은 도시-경주’이다. 그러나 지금 경주는 어떤가. 위의 경주 이미지나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몇 년 전부턴가 경주시가지는 현수막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현수막은 도시의 붕대’라고 했던가. 그럼 경주는 온통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중증의 환자가 아닐까? 경마장 유치, 또 그 실패, 태권도공원 유치, 또 그 실패의 실망감과 분노가 검은 글씨의 흉흉한 문구로 나부끼더니 핵원전 반대 궐기의 붉은 문구로, 아마 지금은 또 돈 많이 준다는 핵폐기장 유치의 붕대들이 온 도시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축제행사 문구가 겨우 생색을 내고 있을 정도다. 경주시 산하 동읍면, 크고 작은 민관변단체들, 심지어는 문화단체들까지 한 개씩 내다 걸어대니, 한국어 모르는 외국인들은 온 도시에 나부끼는 축제의 깃발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를 노릇이요, 과연 문화관광도시라고 인정, 알아 모실지도 모를 일이다. 붕대는 외상을 치료할 목적의 처치방법이요, 겉으로 그 병증이 드러나 짐작할 수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요, 상처가 남더라도 언젠가 치유는 될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 곪거나 아픈 병은 언제 어디서 병증이 나타나 사람 쓰러지게 할지도 모르니 훨씬 더 심각하고 겁나는 병일 것이다. 경주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심각한 병으로 의심되는 증세가 있으니 바로 ‘문화행정 마인드 부재’가 아닌가 한다. 그 중증의 증세가 며칠전 언론에 보도되어 크게 망신살 뻗친 ‘불국사 경내 불법골프 연습장’일 듯싶다. 경주 제일의 이미지로, 아니 한국 제일경으로 손꼽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경주 불국사(사적 및 명승 1호) 안에 불법 골프연습장이라. 스님들 운동용이라며 불법으로 골프장을 만든 불국사나 “불국사 안에 테니스장이나 골프연습장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지 못했다”는 경주시나 큰 수술을 요하는 중증의 환자 아님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또 하나 더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03년 입안, 결정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편찬사업이 있다. 지방정부와 지역의 문화단체, 향토사학가가 중심이 돼, 지방정부 차원의 “디지털향토문화전자대전”을 제작, 2013년까지 완성, 통합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국비와 지방비로 각각 50%씩 부담, 지방비 3억 정도의 부담 있지만 약 1천억을 넘는 10년간의 대문화사업이요, 전국 어느 시군 할 것 없이 피할 수 없이 마땅히 하여야 할 사업이다. 2003년 성남이 시범기관으로 선정, ‘디지털성남대전’을 2년만에 완성, 3월 18일 발표하였다. 4월부터 인터넷으로 검색되고 있으며, 성남의 과거, 현재의 모든 것을 제공하며, 성남 홍보의 첨병이 될 만한 꿈의 전자사전이었다. 2005년의 사업기관으로 강릉, 남원, 전주, 구미가 선정되었고, 지난 1월 구미에서 ‘디지털구미전자대전편찬사업 세미나’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강원도의 강릉, 전북의 전주와 남원은 그 지역 나름의 문화도시인데, 경북에서는 구미라니? 마땅히 경주여야 하지 않을까,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강릉은 3억 이상의 지방비를 제공하겠다지 않는가. 정보 부재라면 이제라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득달같이 자료들을 구해다 경주시청 관계자에게 주었다. 경쟁적으로 신청, 선정되는 이 사업을 2006년도에라도 선정되어 문화도시다운 의연함을 보이고 뒤늦은 수치라도 감추라며 조급증까지 부렸다. 그런데, “현안사업이 많고, 하나도 급하지 않으니...”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특별히 준비한 경주출장설명회 제안 요청도 무시해버렸다는 말을 듣고 또 실색하겠다. 이것이 경주문화행정의 현주소다. 경주에서 이제 문화나 문화재는 도굴이나 되어, 실종되어도 좋다. 천년고도 역사성도 차라리 없앨 수 있었으면 좋을 걸림돌일 뿐이다. 우선 잘 먹고 잘 살아야 볼 일이니 공단이나 많이 유치하고 볼 일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가장 살고싶은 도시-경주’가 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