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 투표일을 앞두고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높지 않았다가 합동 유세를 시작으로 선거전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합동유세장에서 공공연하게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은 물론 유권자들을 모아 놓고 식사를 제공하고 돈 봉투가 돈 다는 등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혼탁 과열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유세장에서는 “권력에 빌붙어서 돈을 번 자”, “선거때만 나타나는 정치꾼” 등의 비방이 이어졌고 동원된 박수부대로 유세장 분위기가 엉망이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17명의 시의원을 뽑는 경주시지역 선거에는 성내동 이동천 후보와 정래동 오만두, 선도동 이영식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이 확정된 가운데 표심을 잡기 위한 나머지 13개 동지역의 각축이 벌어졌다. 성건동의 경우 4명이 출사표를 던졌으나 2명을 뽑아 상대적으로 느슨한 곳이었으나 황남동의 경우 백낙영씨를 미롯해 우동기, 유강희, 이상문씨가 출마해 각축을 벌렸다. 중앙동선거구에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 경주시지구당 부위원장이었던 박대근씨(56)와 전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냈던 이상효씨(41, 현재 경북도의회 의원))가 붙어 관심을 모았다. 경주군 지역에서는 가장 유권자 수가 많았던 안강읍이 관심을 모았다. 최학철, 이복우씨 등 4명이 출마해 2명을 뽑는 안강선거구에서는 최학철 후보가 38세로 4명의 후보중에 가장 나이가 적었으나 왕성한 지역사회 활동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어 당선이 일찍부터 유력시 됐다. 이조 최씨와 경주 김씨, 경주 이씨의 문중 대결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치열했던 내남면 선거구는 군 지역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이종근 후보가 농촌지역을 위해 젊음을 바쳐온 인물로 평가 받았다. 또 지역 유지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고 각종 협회장을 맡아 봉사해온 최상호씨, 11년간 예비군 중대장을 맡아 내남면 교통난 해소에 각별한 노력을 했던 김기호씨 등이 출마해 각축을 벌렸다. 그러나 당시 30년만에 부활된 기초 지방의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가 갑자기 3월26일로 공표돼 적잖은 후유증이 있었다. 선거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후보자들이 지금으로서는 허위사실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등에 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선거법 위반 사례를 묻는 시민들의 문의가 빗발쳤다고 본지는 전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