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사마소(司馬所)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지방 선비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거나 정치를 토론하던 곳으로 유생들의 사설 집합소였으며, 생원·진사시를 연방(蓮榜)이라 하기에 사마소를 연계소(蓮桂所)라 달리 부르기도 하였다. 애초에 훈구파의 유향소(留鄕所)에 반발해 사림파의 생원․진사들이 따로 사마소를 설치하는 등 정치적 성향과 그에 따른 폐단도 상당하였다. 다만 지방의 유생들이 강학하고 지역 간 소식을 전하는 등 사마소의 순기능이 우선되었으니, 경주의 사마소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학문적 공간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화계(花溪) 류의건(柳宜健,1687~1760)은 경주 내남면 화곡에 머물며 벼슬을 멀리하고 선비의 본분에 힘쓴 인물로 1735년 49세에 진사에 합격하였다. 경주의 사마소가 언제 처음 건립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훗날 여러 차례 중건하였는데, 「연계안서(蓮桂案序)」를 보면 임인년(1722)에 중건 논의를 한 것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유생들에게 ‘도의(道義)를 숭상하고, 충효(忠孝)에 힘쓰라(道義相尙 忠孝自勉)’며 선비의 본분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영귀정기(詠歸亭記)에 의하면, “문천(汶川)가에 오래전 영귀정(詠歸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과거에 합격한 유생들이 편하게 쉬는 공간으로, 어느 때에 지어졌고 언제 헐리었는지 모르고, 그 땅이 비었는지가 백여년이 된다. 임인년(1722) 중건을 논의하여 먼저 정자의 북쪽 작은 땅에 작은 공관(公館)을 세우고, 때때로 그곳에서 쉬었다. 하지만 정자는 여러 해 진척이 없다가, 경신년(1740) 봄에 이르러 비로소 경영을 시작하여, 다음 해(1741) 초여름에 공사를 마쳤으니, 영조임금께서 재위에 오른지 17년 되는 해이다. 상사(上舍) 이덕록(李德祿)․손경걸(孫景杰)이 실제로 일을 주관하여 완공하였고, 이에 문천 가에 다시 정자가 세워져 오늘날 여러 유생들이 편하게 쉬는 마땅한 곳이 되었다.”며 사마소의 내력을 기록하였다. 본래 교동 48번에서 현재의 장소로 이건된 사마소는 문정(汶亭)·문양정(汶陽亭)·병촉헌(炳燭軒)·풍영정(風詠亭)· 영귀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사마소의 편액은 1762년 경주부윤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1724~1802)가 썼다. 과거시험은 인재를 등용하는 중요한 단계로 지역의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서 민생의 안정과 나라의 정사를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과거시험을 통해야만 벼슬에 나아갈 수 있는 어려운 현실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기에 선비들은 입신양명과 효행의 입장에서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다. 그래서 누군가는 과거시험에 드는 소모적인 힘을 부모봉양에 헌신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가는 처사적 삶을 살았고, 누군가는 과거시험에 합격해 부모와 가문을 빛내는 급제의 길을 찾아 과거시험에 매진하였으니, 예나 지금이나 출세의 힘겨움은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경주의 선비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 인물의 성향과 학문적 수준 그리고 정치적 성향 등을 파악한다면 제대로된 인물을 조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바로 화계 류의건이 늦은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한 이유가 사마소 출입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연계안서(蓮桂案序_ - 화계 류의건 우리 경주는 평소 선비가 많기로 일컬어지는데 고려 이전은 막론하고 조선 이래로 대과․소과에 급제한 사람은 한두 사람을 헤아리기도 어렵다. 게다가 세월이 거듭 변하여 징험할 문헌이 없고, 그 사람이 혹은 죽거나 끊어질 지경이 되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예전에 사마소(司馬所)가 있었는데, 당시에 반드시 장부[적기(籍記)]의 문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상고할 수 없다. 임인년(1722) 중건하려는 논의가 있었고, 일을 착수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올여름에 이르러 비로소 공사를 마쳤고, 마침내 연계소(蓮桂所)라 하고, 하나의 연계안(蓮桂案)을 두고 여러 유생의 성명을 나열해 적었다. 그리고 임인년에 함께 논의한 인원을 시작으로 문과(文科) 약간 명과 사마(司馬) 약간 명이었다. 아! 과거시험만이 어찌 선비의 귀한 바이겠는가? 하나의 이름을 얻고 잃음이 선비의 도리에 크게 연관됨이 있지 않겠지만, 국가가 이미 과거시험으로 선비를 취하고, 선비 가운데 임금을 섬기고 도를 행하려는 자는 과거시험을 버리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름난 선비들 역시 이러한 과정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 과거시험 역시 어찌 공이 적다고 하겠는가? 만약 이 연계안을 참고하는 자가 사마와 문과, 문과에 이어 조정에 들어가서 벼슬하더라도 도의(道義)를 숭상하고, 충효(忠孝)에 힘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후세에까지 오래도록 훈명(勳名)을 드리운다면 후대의 사람들이 장차 그 이름을 차례로 보고 아무개가 이러하였고, 저러하였고 칭송할 것이니,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내기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녹음이 짙어지더니 어느덧 황금물결을 맞이하기 위해 연두빛을 띄기 시작했다. 창밖 논의 색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기에 아줌마는 또 ‘논멍’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번의 태풍을 무사히 견디고 이겨낸 논의 벼들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길 바라며… 어릴 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특권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제 기성세대, 중년, 아줌마 소리가 익숙한 나이가 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진짜 어른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무엇 하나 완벽하게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이 이제 내가 철이 드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를 들어갈 나이가 되어 신년 새해 소원에 “받아쓰기 100점 받게 해주세요”라고 적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낸 아이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상이 마스크와 동행하고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반 가린 지 삼 년째다. 경주 시내 아이들을 전문 상담하는 곳은, 대기가 한두 달이 기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가 생소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통 부모는 아이들에게 완벽한 존재이며 세상의 전부로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의 빈틈을 하나씩 알아간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는 일찍 인정하고 고백했다. “엄마는 물건 잘 못 찾아. 네 물건은 네가 찾아. 중요한 거면 보물창고에 잘 넣어두고” “엄마도 모르겠는데, 같이 검색해볼까?” “종이접기나 블록 조립은 아빠가 잘하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서부터 엄마의 고백이 하나둘 늘어났다. 아이들은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세 아이가 서로 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일찍 인정했다. 잘하는 것을 해주고 부족한 것은 서로가 메꿔주는 식이다. 첫째는 일찍 일어나서 이불을 개면 아침잠이 많은 둘째는 식사 후 식탁을 깔끔히 닦고 막내는 베개를 정리하는 식이다. 엄마의 빈틈 고백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형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엄마가 되어 아이가 크는 동안에 엄마도 성장한다는 말을 이때 처음 실감했다. 이십 대에 남들에게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센 척하고, 악바리처럼 모든 일에 매달렸었다. 그리고 같이 작업하는 선후배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했다. 결과론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이 많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매번 긴장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서른이 되면서 자연스레 주변정리를 했다. 삼십 대 중후반이 되어 편안해진 삶을 살게 된 것이 바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함에서 시작되었음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십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임을 자청했다. 아이들에게도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모르는 데 아는 척 하는 게 창피한 일이다’라며 마치 주문처럼 자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쭈뼛쭈뼛했던 아이들이 주문에 익숙해지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그것이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잘하는 사람이 특히 가족이라면,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을 텐데 인정하고 나니 아이들은 한 뼘 더 자란 것 같았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워간다. 이래서 어른들이 아이를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했구나 싶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엄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갱년기로 무마시키겠지’하는 배짱으로 세 아이에게 “갱년기와 사춘기랑 붙으면 누가 이기는지 검색해봐라. 그리고 덤벼!” 하고 말하는 이상한 엄마이기도 하다. 빈틈 많은 엄마지만 세 아이를 무척 사랑하는 엄마다.
멘델스존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은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의 부수음악으로 쓰인 결혼행진곡(축혼행진곡/1842년)이 아닐까? 지금도 전 세계의 결혼식장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이니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멘델스존과 맹렬히 대립각을 세웠던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오페라 로엔그린의 ‘혼례의 합창’/1850년)도 지금껏 식장에서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퇴장할 때, 후자는 (신부가) 입장할 때 쓴다. 영국의 빅토리아 공주가 1858년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 두 곡을 직접 선택한 이래 결혼관습이 되었다. 사실 축복의 날에 듣는 이 행진곡들에 반유대주의가 개입되어 있는 건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바그너는 유대인을 싫어했고, 그래서 유대인 혈통의 멘델스존을 혐오했다. 20세기 들어 나치의 총수 히틀러(A.Hitler/1889-1945)는 같은 입장에 있는 바그너의 음악을 찬양했다. 반면, 유대인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금지곡이었고, 하이네(H.Heine/1797-1856)의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인 ‘노래의 날개 위에’(1834년)마저도 들을 수 없었다. 또한 게반트하우스 앞에 세워진 멘델스존의 동상은 철거를 면치 못했다. 멘델스존 가(家)와 나치와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38년 나치는 멘델스존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창립한 멘델스존 은행을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에 강제로 흡수해버린다. 나치는 유대인 및 포로 대학살(holocaust)에 ‘치클론B’라 불리는 독가스를 사용했다. 그런데 ‘치클론B’의 제조사는 멘델스존의 둘째 아들인 파울이 1867년에 만든 아그파 필름을 계승한 회사였다. 한편, 아그파 필름에는 나치의 끔찍스런 전쟁영상이 담겼다. 멘델스존 일가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들의 사후에 일어난 것이다. 멘델스존의 작품은 그의 경제적 환경만큼이나 밝고 아름답다. 20여 년 동안 무려 49곡(6곡×8권+별도의 1곡)이나 작곡한 무언가(無言歌)가 그러하다. 무언가는 가사 없는 노래(Lieder ohne Worte)다. 슈베르트의 예술가곡에 해당하는데, 다만 가사가 없다고 보면 된다. 원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지만 지금은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의 독주곡으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다. 5권의 6번째 곡 ‘봄노래’가 특히 유명하다. 우리나라엔선 통화대기음으로 많이 쓰이고 있어 친근하다. 한편,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헤브라이즈 군도를 여행하다가 감명 받아 쓴 ‘핑갈의 동굴(Die Fingalshöhle) 서곡’은 음악의 풍경화라 불린다. 이러한 단악장의 연주회용 관현악곡은 훗날 리스트가 주창한 교향시의 원형이 된다. 멘델스존은 교향곡을 5곡 썼다. 이중에서 3번 스코틀랜드, 4번 이탈리아가 자주 무대에 오른다. 애절한 멜로디로 시작하는 바이올린 협주곡(1844년)은 멘델스존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경주에서 찍은 ‘경주’라는 이름의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경주 시민들이 의외로 드물다. 주인공이 박해일, 신민아라는 당시나 지금이나 인기로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배우가 나온 영화인데도 그렇다. 2014년에 개봉되어 비록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경주사람들은 알 만한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았다거나 제목이라도 들은 사람을 보기 힘들다.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영화 줄거리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를 꼼꼼하게 관찰하지 않고는 이 영화가 제시하는 암시나 복선 같은 것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만큼 일반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영화가 제1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대상을 받았을 만큼 평단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면에서는 실패작이다. 그래서 더욱 ‘경주’라는 제목이 아쉽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 영화만큼 경주의 내면을 제대로 펼쳐낸 영화가 없다. 그렇다고 무슨 다큐멘터리 찍듯 경주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찍은 영화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이 영화는 경주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심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독자들을 위해 간략하나마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 분)은 선배 창희의 장례식에서 창희와 오래전 경주의 어느 찻집에서 함께 본 춘화를 떠올리고 경주로 향한다. 찻집 주인 공윤희(신민아 분)를 만나 오래전 본 춘화에 대해 묻는다. 윤희는 최현을 변태 취급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끌린다. 경주에 온 최현은 오래전 사귄 여정을 경주로 불렀지만 여정은 남편의 전화를 받고 급히 서울로 돌아간다. 다시 찻집을 찾은 최현은 윤희로부터 찻집을 인수한 5년 전 공연히 말이 많아 한지로 도배해 감추어버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우연히 윤희와 동행한 술집에서 북한학전공하는 박교수를 만나 뜻밖의 유명세를 치른다. 그러다 자신을 윤희네 찻집으로 안내한 형사 영민이 합류해 보문호에 빠져 자살한 모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모녀는 최현이 대구와 보문에서 하루에 두 번이나 우현히 만난 모녀임이 확인된다. 취해버린 박교수의 막말로 판이 깨지고 낯선 이들과 노래방까지 거친 최현은 무엇에 홀린 듯 윤희의 집으로 함께 간다. 그것을 눈치 챈 윤희를 짝사랑하는 영민이 윤희 집으로 쳐들어오지만 여권으로 신분을 재확인하고는 허망하게 물러난다. 최현에게 거실에서 자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윤희는 방문을 슬며시 열어둔다. 최현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 불화로 인해 중국을 떠나오면서 싸운 아내로부터 온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고 조용히 윤희의 집을 나선다. 어느 국수 가게에서 국수를 먹는데 여정으로부터 자기 남편이 자신을 쫓아 경주로 갔으니 피하라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자리를 옮긴다. 마침 여정이 경주 왔을 때 우연히 들른 점집 할아버지를 찾아갔으나 할아버지는 없고 대신 점집을 지키는 여인으로부터 그 할아버지가 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는다. 무엇을 끌리듯 발길을 잡던 최현은 우연히 오토바이 충돌사고로 사람들이 널브러진 현장을 지난다. 이어 마른 하천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야산을 넘어선 최현은 강을 발견한다. 장면이 바뀌어 춘화 앞에 앉은 최현과 창희, 최현의 친구 앞으로 윤희가 다가와 차를 따르는데 풍경소리가 들려오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처럼 상세히 적은 것은 이 줄거리에 경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경주의 유적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 대신 경주의 능들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대릉원과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이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바로 이 무덤들이 이 영화의 모티브이자 경주의 내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교묘한 장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하지만 각각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중국교민3세 장률 감독이 얼마나 경주를 열심히 탐구하고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정말 탁월하게 경주의 특징과 경주사람들의 내면을 간파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이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과연 어떤 부분이 경주를 잘 묘사했는지를 숙제로 남겨 드린다. 하나씩 퍼즐을 맞추다 보면 놀라울 만큼 큰 재미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유튜브에서 무료 상영 중이니 영화 찾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천무천황이 사망한지 한 달 무렵 대진(大津)황자가 모반하였다. 노야황후는 모반사건이 제보되자 조사도 없이 다음 날로 교수형에 처했다. 대진황자의 아내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뛰어나가 황자와 같이 죽었다. 모두가 흐느껴 울었다. 모반을 일으킨 황자는 노야황후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대진황자가 처형된 후 그의 죽음을 애닯아 하는 눈물가 6편이 그의 누이 대래(大來)황녀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엽집 105번가> 吾勢祜 乎/倭邊遣 登佐/夜深 而 鷄鳴/露 尓 吾 立所 霑 之 “내 권세와 복록의 근본이여. / 나라의 변두리로 보내졌구나. / 밤이 깊어 닭이 우는데 / 이슬을 맞으며 나는 서서 젖고 있지” 황자는 깊은 밤 목이 졸려 죽은 것으로 보인다. ‘야심이계명(夜深而鷄鳴)’이라는 구절은 황자가 깊은 밤에 닭 잡는 것같이 목 졸려 죽었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만엽집 106번가> 二人行 杼/去 過 難寸 秋山 乎 如/何君 之 獨越 武 “둘이 갔어야지. / 나도 가기에 어렵지 않은 가을 산이 아닌가. / 어찌 그대는 홀로 넘어갔는가” <만엽집 163번가> 神風 乃 伊勢 能 國 尓母 有益乎奈/何 可来計武/君 毛不有尓 “신풍 같은 너의 군세는 응당 나라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 어찌하여 그대가 모반을 계획했겠는가. / 그대는 가고 없네” <만엽집 164번가> 欲見 吾 爲/君 毛 不有 尒 奈/何 可來 計 武/馬疲 尒 “원한다, 너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를, 나에게. / 그대는 가고 없나니. / 어찌 모반의 계획을 세웠겠는가. / 말도 지치는 머나먼 저승길 그대 떠나갔구나” 황녀는 동생의 모반을 믿지 않고 있다. 동생에게 모반을 꾀하지 않았음을 드러내 보이라고 탄식하고 있다. <만엽집165번가> 宇 都曽 見 乃/人 尓有 吾 哉 従/明日 者 二上山 乎/弟 世登 吾 将 見 “동생의 무덤이 있는 곳이 멀리 들판에서 보인다. / 사람이 있어 나를 따른다. /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이상산에 올랐다. / 동생이 나에게 나타난다” <만엽집 166번가> 礒 之於尓 生 流 馬 酔 木 乎/手折目 杼/令視 倍 吉/君 之 在常 不言 尓 “바위에서 물이 나와 흐르니 말이 가던 걸음 멈추고 마셔댄다. / 따르는 사람이 손으로 나무를 꺾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동생의 무덤을 찾는다. / 보라고 안내한다. / 그대는 평소처럼 말이 없다” 말이 물 마시는 소리가 무덤가의 정적과 비교되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무덤의 황자는 평소처럼 과묵하다. 대래황녀의 작품은 만엽집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절창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푸른 바다에 남겨진 진주와도 같다. 대래황녀를 만엽향가 최고의 가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화랑마을 야외방탈출 모바일 미션게임 용화향도(이하 방탈출게임)’의 시범운영이 지난 18일을 마지막으로 성황리에 종료됐다. <사진> 시에 따르면 10월 정식 유료운영에 앞서 이달 5일부터 18일까지 게임 홍보와 프로그램 점검을 위해 방탈출게임을 무료 시범운영 했다. 시범기간 동안 일반 이용객은 총 282팀, 834명으로 하루 평균 65명이 이용했으며, 체험을 마친 이용객들은 98% 이상 지인에게 추천하겠다고 답변해 높은 관심과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화랑마을은 체험을 마친 이용객들의 이용후기에서 “친구에게 공유하겠다”, “너무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냥 화랑마을을 둘러보고 싶다면 야외방탈출 꼭 해보세요”, “시즌2는 언제?” 등을 보고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했다. 화랑마을 관계자는 “남은 기간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이용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모바일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랜 기간 동안 개와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개에 대한 구전 설화가 지역 곳곳이 무대가 되어 이야기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개는 가장 정감이 갔던 동물이며, 슬픔과 기쁨을 항상 함께했던 대상이며, 잔잔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소재였다. 그런 평범함이 이야기로 21세기인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되었다. 경주개 동경이는 우리나라 토종개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토종개이다. 오래된 역사만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많다. 경주개 동경이에 대한 구전 설화는 강남대학교 홍순석 교수의 저서인 『한국인과 개』(민속원, 78쪽, 2017)에 수록된 동경견의 설화(삼탄집 권4, 해동잡록 3)와 경주대학교 최재영 교수가 서술한 『경주의 신화전설집성』(慶州의 神話傳說集成, 264쪽, 2008)에 증보문헌비고(권제12, 수이 獸異조)에 수록된 충견 의구총 동경이 이야기 등을 전하고 있다. 조선 성종시대 문신인 삼탄(三灘) 이승소(李承召: 1422~1484)의 삼탄집 권4에 수록된 경주개 동경이의 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풍(延豐) 길가 언덕 끊어진 곳 산록(山麓)에 쌍분(雙墳)이 있어 마치 높이 솟은 돈대[路堠] 같았다. 그곳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동경(東京 경주)의 한 아전이 그 집의 개와 함께 책상자[笈]를 지고 도보로 서울에 과거보러 가다가 도중에서 병이 들어 이곳에 와서 죽으니, 그 개가 집에 돌아가 나들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마치 애절함을 호소하는 형상이었다. 그 아들이 개가 혼자 돌아온 것이 의심스럽고 이상하여 곧 개를 따라 나섰다. 개가 빨리 달려 길을 인도하여 그 아버지가 죽은 곳에 도착하자 숨이 막혀 죽어버렸다. 그 아들이 자기 힘으로 귀장(歸葬)하지 못하고 아버지 시체를 기슭 위에 가매장하고 개도 그 옆에 묻었다”한다. 이삼탄(李三灘)이 이곳을 지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뉘라서 길에서 죽어 언덕에 버려진 것을 가련히 여기랴 誰憐道死委山阿 개만이 돌아가 주인 집에 알렸네 犬獨還歸報主家 그 아들과 같이 달려와서는 숨막혀 죽으니 與子偕來仍暍死 언덕 위에 쌍총은 대대로 전하여 자랑하네 隴頭雙塚世傳誇 犬:東京狗. 李裕元 『林下筆記』, 「文獻指掌編」「東京狗」 『경주의 신화전설집성』(문경현, 최재영, 264-265p)에 기록된 충견 동경견이 설화는 다음과 같다. “동경견(東京견)은 꼬리가 없는 개요. 됭경견, 됭견, 댕견이라고 불리어온 경주 특산의 토종개다. 이 개는 충직하고 용맹 영리함으로 유명하다” 동경의 의구총(塚)이야기는 경주(동경)에서 전국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충청북도 연풍면(지금의 괴산군 영풍면 연(원)풍리) 길가 산기슭에 두 무덤이 있었다. 지방 사람들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동경(경주)에 사는 아전 집에 기르던 동경견을 데리고 개나리(괴나리) 봇짐을 싸서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다 문경 새재를 넘어 이곳에 이르러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따라온 개는 주인을 일으키려고 가진 애를 쓰다가 효과가 없고 죽은 것을 알자 주인을 지키다 두고선 새재를 넘어 동경 집으로 향하여 달려갔다. 개가 집에 당도하자 짖고 울부짖으며 가자는 시늉을 하여 그 아들이 이상하게 여겨 따라나서 갔더니 이곳에 이르러 주인의 죽은 시체를 가리키며 짖다 울다가 기진맥진하여 주인 옆에 쓰러져 죽었다. 아들이 아비의 시신을 찾았으나 고향 동경으로 옮길 수 없어 그 자리에 장사지내 무덤을 만들고 그 옆에 충견 의구(義狗) 무덤을 만들어 안장했다. 그래서 두 무덤 쌍분이 있게 되었고 이 동경견의 충견 의구총은 세상에 유명하게 되었다.”『증보문헌비고』권제12, 수이(異)조의 이야기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 시행령이 공포된 후 대한민국 지자체가 지속가능발전 업무영역 설정과 업무분장에 대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지자체가 ‘지자체 SDGs 시스템’ 구축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역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이 지속가능발전 업무영역과 업무분장을 시도해야 한다. 업무영역은 지속가능발전 업무를 맡은 담당자(행정)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예시를 나타내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 업무를 중심으로 업무 영역을 크게 구분하면 지속가능발전 이행체계 구축과 SDGs 작성, 이행평가의 두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 이행체계 구축에서는 지속가능발전 추진 로드맵 작성(SDGs 작성, 이행, 모니터링 과정 전반에 대한 구상), 지속가능발전 전담부서설치(지속가능발전 추진 업무에 대한 주무부서의 지정), 지속가능발전 기본조례 제정과 구현(제도기반 구축), 지속가능발전위원회·협의회 설치(조직 기반 구축)에 대한 것이다. SDGs 기본 계획 작성 업무는 먼저, 지속가능발전현황 진단으로 시작된다. 이는 지역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진단과 주민의 참여와 지역사회의 제한적인 자원 여건에 맞는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둘째, 지속가능발전 비전, 목표, 이행계획 수립은 지역사회의 중점 방향과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의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다(비전과 목적). 그리고 정해진 기간 내에 성취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며, 채택된 행동의 적절성과 행동계획의 실행에 따른 성과를 평가할 기준이 되는 것이다(목표). 한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각 부서별 사업과 추진 일정, 재정·기한·인적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과업을 포함한 구체적인 전략과 과제가 설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진단하고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지표 개발도 준비 또는 진행되어야 한다. 지표계발은 지자체 부서별 성과지표의 지침이자 중장기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구체적으로 수치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역주민과 소통할 수 있고 지역사회의 특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 SDGs 기본계획 작성에서 중요한 것은 지역의 조건과 상황에 대한 진단과 주민의 참여이다. 현황진단은 지역사회의 제한적인 자원 여건에 맞는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전과 목적을 세우는 것은 지역사회의 중점 방향과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의 개발을 유도하는 것도 이행계획수립에서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SDGs 작성, 이행평가는 기본계획 작성과 진단과 피드백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기본계획 작성 업무부분은 지속가능발전 현황진단, 지속가능발전 비전·목표·이행계획수립, 지속가능발전지표개발을 들 수 있고, 진단과 피드백 부분은 지속가능발전지표 진단과 모니터링, 지속가능성보고서 작성, 지속가능발전이행계획 수정·보완, 주요조례와 계획의 지속가능성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파악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의 역량을 모아야 할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대표지표들의 경우 지역주민이 함께 모니터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발전지표의 진단과 모니터링 결과, 전략과 과제의 이행상황을 담는 지속가능성 보고서가 작성된다. 지지체는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를 진단하고, 전략과 과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SDGs 진단과 피드백 업무는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파악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의 역량을 모아야 할 영역을 발견하는 것이며, 지속가능발전 지표의 진단과 모니터링 결과와 전략과 과제의 이행과정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발전 이행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며, 특정한 사업은 전환하고 새롭게 발굴하는 업무라 할 수 있다. SDGs의 작성-이행-모니터링 단계별 각 행정기관의 역할은 인식전환, 조직구성, 제도형성, 지역 SDGs 작성, SDGs 이행, SDGs 평가 전 과정을 포함한다.
-론다의 투우장 7/11 세비야에서 우리는 이곳 ‘론다’로 왔어요. 론다는 스페인 남부지역에 있는 인구 30여 만 정도의 작은 도시로 펑퍼짐한 높은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도시입니다. 신구 시가지 가운데로 ‘타호 협곡’이 생겨나 있고, 그 위로 ‘누에보 다리’가 연결되어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절벽 도시와 흰색 집들, 누에보 다리, 헤밍웨이가 산책하고 집필하던 길 등으로 많은 관광객의 필수코스로 이름나 있는 곳입니다. 또한, 여기가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요,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가 피카소와 함께 이 투우장의 경기를 즐겨보며 지냈다지요. 이 투우장은 1785년 준공된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입니다. 지름이 66미터, 원형으로 생겼어요. 이곳은 원래 ‘왕림기사양성소’로 기사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가상의 적을 황소로 삼아, 소들과의 싸움터였다고 해요. 여기에 있는 투우박물관에 가니, 투우장의 역사와 관련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관람 장소는 승마연습장, 마구간, 투우소 대기소, 투우경기장, 투우사 동상 등이 있습니다. 이곳은 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투우장으로, 현대투우의 개척자인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붉은색 보자기로 소를 흥분시키는 전투적인 투우를 여기서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가 6000여마리의 황소를 부상시키지 않고, 쓰러트린 역사적인 현장(투우장)이기도 합니다. 처음 투우는 17C경 왕실의 오락으로 시작되면서 그 후 국민이 즐기는 구경거리로 되었답니다. 소들은 경기가 열리기 전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경기당일 철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빛과 함성에 극도로 흥분되어, 투우사가 흔드는 붉은 천으로 돌진, 그들이 죽음으로써, 투우장을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동물 애호 환경 추세에 따라 사라지는 경기로 무슨 축제일이나 특별한 날에 개장한다고 합니다. -투우장 주변 풍경 헤밍웨이가 론다에 있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고, 그 후 이 영화도 여기서 일부 촬영을 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은 곳’으로 이 도시를 꼽았다고 하지요. 누에보 다리, 전망대, 무어왕의 집, 주변 공원, 헤밍웨이의 산책길 등 이곳 관광명소를 십 수분이면 걸어가서 볼 수 있는 근접 거리에 있으며, 론다 도시만 해도 짧은 시간에 걸어서 거의 다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투우장 주변에는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투우장에서 걸어와 전망대에 서면, 절벽 앞 멀리 아늑한 시골길이며, 오렌지, 올리브 단지와 농촌 마을의 푸른색 비유(view)가 관람객의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무어왕’의 집을 지나며 전망대에서 나와, 헤밍웨이 산책길을 지나서, 5분 정도 누에보 다리를 건너면, 길가 좌측 첫 번째 내리막길 끝 집이 무어왕의 집입니다. 14c경 나스르 왕국시대에 지어진 집이라고 해요. 현재 개인 사유 저택으로 항상 관람이 가능한 집은 아닙니다. 협곡으로 내려가면서 눈으로 훔쳐볼 수밖에 없는, 3층 집으로 내부가 365계단으로 되어있으며, 옛날 한때는 무기고와 지하 감옥으로 활용되었다고 가이드가 설명합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4년(문무왕 14년, 674) … 2월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으며 진기한 날짐승과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 등장하는 기록이다. 이 기사의 ‘연못’이 바로 월지다. 679년(문무왕 19년) 안압지에 동궁을 지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두 곳 모두 문무왕 재위 시절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궁과 월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임해전에서 군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효소왕 6년 9월, 697) △동궁아를 설치하고 상대사 1인, 차대사 1인을 두었다(경덕왕 11년 8월, 752) △동복 아우 수종을 부군으로 삼고 월지궁에 들였다(헌덕왕 14년 1월, 822) △임해전에서 군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연이 무르익자 왕이 거문고를 타고 좌우에서 노래를 부르며 매우 즐겁게 놀고 파하였다(헌강왕 7년 3월, 881년) △고려 태조가 기병 50여명을 거느리고 수도 근방에 이르러 만나기를 요청하였다. 왕이 백관과 더불어 교외로 나와 맞이하고 궁으로 들어와 마주 대하며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예우하고 임해전에 모셔 연회를 베풀었다(경순왕 5년 2월, 931) 등의 기록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동궁과 월지는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며 외국의 사신들을 영접하는 연회장이자 태자의 공간이었다. ◆문무왕에게 왕권 강화는 ‘숙명’ 동궁을 지은 679년은 당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뒤였지만, 월지를 조성한 674년은 아직 나당 전쟁이 끝나기 전이었다. 이 1년 동안 대규모 전투는 없었다 하더라도, 이듬해 신라의 당에 대한 항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것으로 미뤄보면 하루하루가 급박한 형세를 이루고 전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문무왕은 왜 하필 이 시기에 월지를 조성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의문은 674년 이전인 고구려 멸망을 즈음해 ‘왕권 강화’에 골몰하던 문무왕의 명으로 인공 연못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나당 전쟁 중이던 674년 완성됐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생긴다. 5년 뒤 조성된 동궁 또한 월지 건설 단계에서부터 함께 지어질 것으로 계획됐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문무왕에게 ‘왕권 강화’는 숙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숙명은 아버지 김춘추(무열왕)의 즉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귀족회의에서는 상대등 알천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비담의 난 이후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춘추·김유신 연합세력에 의해 김춘추가 왕위에 올랐다. 이는 당시 신라에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는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였고, 성골 출신인 기존 왕과는 달리 진골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무열왕은 자신의 즉위를 둘러싸고 야기된 진골귀족들의 불만을 회유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해야만 했다. 무열왕이 백제를 멸한 이듬해인 661년 사망한 이후 즉위한 문무왕 또한 아버지 대와 같은 고민이 있었다. 안으로는 왕권을 계승·발전시켜야 했고, 밖으로는 고구려와 당에 대한 어떤 입장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게 당면 과제였다. 문무왕은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부터 외교적·군사적으로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 결과 668년 고구려를 멸하며 삼국 간의 전쟁을 종식시켰고, 676년엔 백제·고구려 평정을 위해 일시적 동맹을 맺었던 당의 세력도 축출했다. 또 자신의 세력 기반인 무열왕계와 김유신계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권력의 외연을 넓혀갔다. ◆월지·동궁 조성 통해 왕실 권위 기틀 다져 이런 상황 속에서 문무왕은 왕실 권위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월지와 동궁을 조성한 것이다. 특히 문무왕에게 있어서 동궁을 짓는 것은 왕위계승을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을 것이다. ‘삼국사기’는 29대 무열왕에서 36대 혜공왕까지를 중대(中代)로 구분했다. 이 시기 왕위계승 원칙은 재위 중인 왕의 장자를 태자로 삼아 왕위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성골왕 시기 왕위계승이 왕과 그 형제의 가족이라는 확대가족에서 이뤄진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문무왕은 신라 역사상 태자로 책봉돼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무열왕은 즉위 2년째 법민(문무왕)을 태자로 책봉했다. 문무왕도 즉위 5년이 되던 해에 신문왕을 태자로 책봉한다. 다만 32대 효소왕과 34대 효성왕은 아들이 없어 각각 동생에게 왕위를 전했으나 장자상속이라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태자 책봉은 왕위계승 문제로 빚어질지 모를 우려를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가 컸다. 왕이 갖춰야 할 자질과 능력을 미리 함양시키려는 뜻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태자궁인 동궁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신라의 동궁은 태자의 거처뿐만 아니라 태자의 교육기관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한편에선 문헌 속 임해전에서 펼쳐진 많은 횟수의 주연(酒宴)을 예로 들며 태자 교육기관 내에 연회를 베풀던 임해전이 위치한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외국의 사신 접대나 연회가 펼쳐지는 전각이 있는 곳에 태자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동궁의 위치에 대해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월지 서편 건물지와 동편 영역을 포함한 곳을 동궁으로 보기도 하고, 월지의 동편을 동궁, 월지 서편을 월지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국립경주박물관 남측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가 기존에 있었고, 최근엔 월지 서편이 동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렇듯 연구자마다 다양한 학설을 제시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월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동궁 관련 유물, 문헌에서 확인되는 동궁관(東宮官) 기구(機構)속에 월지 관련 관청명 등으로 볼 때 월지 주변에 동궁이 있었던 것은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어찌됐건 동궁을 따로 세운 것은 왕위계승 준비를 위한 예비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문무왕이 순조롭게 왕위를 이어가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주시가족센터는 이달 13일부터 11월말까지 ‘2022년 찾아가는 다문화이해교육 사업’을 실시한다. <사진> 다문화이해교육 사업은 올해 다문화 이해교육 강사 양성과정을 이수한 결혼이주여성 10명이 주체적으로 다문화 공존에 대한 인식 변화와 포용력을 키워 더불어 사는 사회분위기 제고를 위해 시행하고 있다. 시는 지금까지 다문화 이해교육을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 한해 시행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시민이 교육 받을 수 있게 대상범위를 경로당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교육은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와 연계해 지역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경로당 20개소를 선정해 지역사회 다양한 구성원에게 다문화를 알리고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어르신들이 문화의 다양성을 쉽게 이해하도록 전통놀이 및 문화를 체험해보고 음악과 소품을 이용해 작은 축제 체험 활동도 진행한다. 특히 지난 13일 사정경로당에서 실시한 교육은 베트남의 문화 소개와 전통놀이, 체험활동, 노래, 춤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박정우 센터장은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문화의 다양성과 타인을 존중하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경주시는 다문화 인식개선과 사회통합을 위해 지속적으로 다방면의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경주시 지원으로 지난 7월 25일부터 9월 5일까지 한궁보드를 경로당에 보급했다. <사진> 올해 경로당에 보급되는 한궁보드는 노인복지기금 공모사업에 선정돼 22대를 보급했다. 또 현재까지 경로당에 300대가 보급되고 있으며, 타 기관 사업으로 보급된 곳도 30여개소에 이른다. 실내에서 손쉽게 이용이 가능한 한궁은 희망하는 경로당에 보급한다. 경로당 한궁보급은 한궁 심판 및 지도자 자격을 취득한 행복선생님이 직접 교육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계절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에게 건전한 여가생활을 제공하고 신체 좌우 평형성 증진과 팔의 유연성 및 근력을 키워주고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돼 경로당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매년 경주시노인회장배 한궁대회가 진행되고 있으며, 최고 우승팀은 경상북도 대회의 출전권도 획득하게 된다. 코로나19로 2년 동안 개최하지 못한 한궁대회도 오는 10월 진행될 예정이다. 구승회 회장은 “재미와 건강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생활스포츠 한궁으로 무료함도 달래고 즐거운 경로당 생활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행복하고 건강한 경로당이 되도록 좋은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경주시 치매안심센터는 치매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힐링 프로그램인 ‘기억을 지켜주는 His cooking’을 운영한다. 이달 15일부터 내달 6일까지 매주 목요일 주민건강지원센터 영양교육실에서 치매환자의 가족 중 남성 보호자 1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사진> 이번 프로그램은 보호자로 하여금 잠시라도 돌봄의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특히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이 남편인 경우 식사를 준비하는 부담감을 감소시키고, 균형 있는 한 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위덕대 외식산업학부 이지현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며, 메뉴는 치매에 좋은 재료를 이용해 구성했다. 경주시는 추후 레시피 북을 제작해 지속적으로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방침이다. 최재순 보건소장은 “이번 힐링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치매환자와 가족들이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더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포항공대 메타버시티 교육추진단은 지난 19일 포항공대 전자기술연구소에서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과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협약식을 통해 두 기관은 보유하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와 시설 및 기술 인프라를 활용한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다짐했다. 장애인복지증진을 위한 메타버스 기반의 장애인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 메타버스를 활용한 장애인 프로그램 우수사례 확립, 장애인교육활동에 필요한 연계 체제 구축 등의 업무추진에도 뜻을 모았다. 특히 포항공대 메타버시티 교육추진단 김욱성 교수의 강의를 통해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을 이해하고 직접 시연 및 체험하며 장애인 교육에 적용 가능한 기술에 대한 의견을 서로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욱성 교수는 “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혼합현실 강의실을 포함한 메타버스 기반 연구결과를 장애인복지 프로그램에 활용, 확대할 수 있도록 재능기부도 함께 약속한다”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선행적으로 경험한 메타버스관련 연구의 성과는 자립을 준비하는 장애인의 일상생활훈련, 직업훈련, 안전훈련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쌍방향 소통을 통해서 자립지원이 가능할 것이다”고 전했다. 종성스님은 “메타버스기반의 장애인복지서비스 개발에는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장애인 교육에 관한 전문 지식이 융합적으로 필요하다. 양 기관의 협약을 통해서 세계 최초 장애인 메타버스 복지관이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 포항공대와의 협약이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협조를 하겠다”고 말했다.
누구나 복권당첨을 꿈꾸지만 쉽게 당첨되지 않는다. 그 흔한 5등도 쉽지 않아 돼지가 용을 쌍으로 물고 드러눕는 꿈을 꾸어도 번번이 돈만 날리기 일쑤다. 지난주 목요일, 경주 우리광고사 대표 박성범 씨가 그 어려운 로또 복권에 무려 3등으로 담청된 사실을 올렸다. 말이 쉬워 3등이지 여섯 개 번호 중 무려 5개 번호가 맞아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확률이다. 당첨 상금도 거금 120여만원. 이 정도면 추석 연휴 동안 가족들이 제대로 맛난 것 실컷 사 먹고도 남을 만했다. 그러나 박성범 씨는 추석연휴 끝난 페이스북 글에서 로또 3등 상금 모두를 마침 수마에 허덕이는 이재민을 위해 쓰겠다고 약속했다. 3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멋진 결정에 박성범 씨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온통 칭찬 일색이다. 9월 19일 현재 ‘좋아요’가 157개 찍혔고 댓글이 104개나 달렸다. 대부분 댓글이 박성범 씨의 선한 결정에 감사하는 한편 이렇게 큰마음을 냈으니 앞으로 더 큰 행운을 얻게 될 것이라 기원하는 댓글이었다. 박성범 씨는 지난 9월 13일 경주시청을 찾아 100원 성금을 지원한 사진을 올리며 이 약속을 지켜 다시 한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정황상 받은 당첨금에서 불로소득 세금 공제한 후 자신의 돈을 더 보탰을 것이다. 이날 올린 글과 사진에는 무려 262명의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이 124개나 달렸다. 박성범 씨는 마침 지난 회 ‘SNS는 즐거워’에도 잠깐 등장했다. 동네를 순찰하다 떨어질 위기의 전광판을 신고하고 비상대기 중인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간식을 챙겨주었다는 미담의 주인공이었다. 박성범 씨의 로또 나눔이 일시적인 기분으로 낸 마음이 아님을 보여 준다. 박성범 씨의 큰마음과 함께 경주의 많은 SNS들도 수재 당한 이재민들을 위해 십시일반 성의를 표하는 분위기다. 어떤 이는 비용을 내어 도왔다고 올렸고 또 어떤 이는 수재 복구 현장에 나가 일손을 거들고 나서야 애처로운 마음이 일부나마 풀렸다고 전했다. 박성범 씨를 비롯,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마음으로 품는 모습이 수재로 낙담하는 경주 주민들에게 적잖은 힘이 된다. 이래서 SNS세상은 분명히 즐거운 것이다.
경주는 오랜 기간 자전거 천국이었다. 가장 많은 자전거를 보유했던 1980년대에는 경주시가 온통 자전거로 북적거릴 정도였다. 지금도 유적과 유적 사이가 가까운 경주의 특성상 자전거 여행이 매우 적절하고 이를 증명하듯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많이 늘려 있다. 그런가 하면 경주는 자전거 도로도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잘 깔려 있는 편이다. 인도와 자전거길의 구분이 미흡한 길이나 지나치게 좁은 길,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길이 많은 등 아직 손볼 곳은 많지만 시내에서 중요한 유적지로 가는 길에는 자전거길이 대부분 놓여 있다. 서울의 경우 한강을 축으로 한강에 합류되는 샛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발달해 있다. 특히 한강에서 하남을 통해 경기 서부와 경기 남부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우리나라 자전거길의 표본이라 불릴 만큼 잘 만들어져 있다. 마침 기자가 서울-하남 접경 부분의 자전거길에서 의미 있는 구급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서울에서 하남시에 진입한 후 1km쯤 지나 하남 구리 간을 잇는 암사대교 아래쪽에 하남시가 만들어 놓은 응급상자다. 여기에는 일회용 밴드와 찰과상에 바르는 연고, 면봉, 붕대, 소독약 등이 들어 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서울에서 오거나 서울을 통해 긴 길을 달려왔을 경기 서부 지역 라이더들에게는 적잖이 반가운 응급 의약품들이다. 따지고 보면 값으로 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사람이 있다면 이만큼 반가운 상자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상자가 있다는 것을 자전거 동호인들끼리의 정보를 통해 공유되면 이 길을 지나는 동호인들의 마음이 조금은 든든할 것이다. 아쉽게도 하남 구간에 마련된 이 응급 상자는 이후 팔당대교를 넘어 광주시나 남양주시로 접어들면서는 볼 수 없다. 지자체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공유해 군데군데 응급상자가 놓인다면 자전거를 즐기는 동호인들에게 큰 반가움이 될 것이다. 경주의 자전거길에도 마땅히 놓여 있기 바란다.
책 표지 디자인까지 끝났다면 책을 만드는 것은 이제 완전히 마무리된 셈이다. 이제 인쇄만 하면 책을 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만약 책을 유통하고자 한다면 아직도 남은 절차가 있다. 물론 혼자서 찍어 지인들에게 판매하거나 나누어 주는 데는 지금까지의 과정만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식으로 인정받고 서점에서 팔 수 있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그것은 책이 자신의 고유성을 가지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동사무소 가서 출생신고부터 하는데 이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서점에서 책을 팔 수가 없다. 책의 출생신고는 ISBN신청이라고 한다. ISBN이란 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의 약자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국제표준도서번호’다. 즉 책을 분류할 때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방법에 의해 책의 종류에 따라 붙이는 고유한 식별기호다. 여기에는 국명, 출판사, 도서 코드 등이 세분화되어 모두 13개의 숫자로 표시된다. 책에 보면 책 뒤표지에 바코드 표시가 있고 그 밑에 깨알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ISBN이다. ISBN은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한다. ISBN이 중요한 이유는 책을 어떤 도서 종류에 포함 시킬지를 세부적으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서전을 써놓고 과학서적 분류에 넣었다면 책을 찾은 사람들이 해당 책을 못 찾게 될 것이다. 서점의 책들도 모두 ISBN의 분류에 의해 진열하는 것이므로 ISBN을 신청할 때는 책의 성격을 분명히 규명할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한다. ISBN은 신청하면 보통 5일 이내에 바코드를 받게 된다. 최근에는 빠를 경우 3일 이내에 바코드를 받을 수도 있다. 급하게 책을 낼 때 이 기간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ISBN과 함께 지적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책이면 저작권 신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 신청은 전문적인 서적에 해당하는 일로 일반 자서전에서는 거의 필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인생을 쓰는 일인 만큼 누가 일부러 베낄 염려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 일반 자서전이라도 내용상 중요한 기록 사항이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주장, 명문장 등을 썼다고 생각하면 저작권을 신청하는 것도 무방하다. 저작권은 한국저작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등록할 수 있다. ISBN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자서전을 내면서 꼭 ISBN을 등록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만하다. 대부분 자서전이 자비출판, 즉 자기가 돈을 내어 책을 출판하는 경우이고 서점에 유통시킬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 자서전 저자들이 ISBN을 마치 무슨 명예라도 되는 것처럼 등록하려고 한다. ISBN이 책을 서점에서 판매할 때 필요한 정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마치 ISBN이 없으면 책이 아닌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서 책을 내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볼 정도의 책을 냈다면 굳이 ISBN을 신청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책을 유통하되 서점에 풀지 않고 특정 출판사에서 책을 배송하는 식으로 출판할 때도 굳이 ISBN을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ISBN은 책을 분류하는 수단이지 책을 꾸미거나 가꾸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ISBN을 신청하려고 애쓰는 것은 혹시라도 책이 인기 있어서 유통시킬 가능성을 고려해서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ISBN쯤 따 놓아야 제대로 책의 구색을 갖추었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 출판사에서 펴낸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모두 ISBN에 등록했지만 서점에 판매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대부분 정치인들의 책이었는데 그 책들이 어떤 내용이건 독자들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출판기념회에 직접 와서 친분을 과시하거나 지지를 표명하는 수단으로 책을 사고 사진을 찍고 싸인을 받아 갔지만 그 책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우습게도 이런 책들 대부분이 출판기념회를 먼저 잡아놓고 펴낸 책들인데 유명한 정치인일수록 이런저런 추가 내용이나 요구가 많아 책이 다 제작되기까지 일정이 급해질 대로 급해지기 일쑤다. 그런데도 아무 필요 없는 ISBN을 따가며 출판 막판까지 시간이 모자라 피를 말리게 하곤 했다. 자비출판이고 서점에 유통도 하지 않을 책이지만 ISBN을 달아야 책이 책답게 보인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출판사의 입장에서야 빤하게 보이는 필요 없는 일이지만 책을 내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의 형식도 그만큼 중요하게 보일 것은 이해되지만 말이다. -색인은 일종의 주민등록증과 같다 ISBN코드가 발행되고 저작권 등록까지 되었다면 이제 정말 마지막 책을 꾸미는 마무리를 하면 된다. 그 마무리는 ‘색인’을 만드는 것이다. ISBN이 책의 출생신고서라면 색인은 책의 주민등록증인 셈이다. 색인은 오래전에는 별도의 색인표를 만들어 책 맨 뒤쪽 페이지에 붙였지만 지금은 그냥 맨 뒤쪽 페이지에 인쇄하는 정도로 만든다. 근래에는 색인을 꼭 뒤쪽에 넣지 않고 앞쪽으로 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뒤쪽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색인에는 책을 만든 실질적인 참여자들이 들어간다. 지은이, 발행인, 출판사, ISBN번호, 책 출판 연월일, 책을 인쇄한 이력, 책값 등이 들어간다. 자서전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대형 출판사의 기획 서적의 경우에는 책에 따라 책을 기획한 기획자와 디자이너, 인쇄소를 넣어줄 때도 있다. 보통 자서전에서는 기본적인 사항만 들어간다. 내 경우 책을 펴내면 반드시 우리 출판사와 함께 인쇄소의 이름과 디자이너의 이름까지 책에 넣어주곤 한다. 책을 혼자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오래 함께 일해 온 인쇄소의 노고와 마지막까지 책을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공을 인정해서다. 이때 디자이너에게는 색인에 이름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이력에 관련되는 일이라 의미가 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훨씬 신경 써서 책을 디자인하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입장에서야 색인에 디자이너 이름쯤 넣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이게 작은 배려가 될 수 있다. 특히 유명 정치인이나 기타 이름 있는 인사의 자서전들은 비록 서점에 유통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누구의 자서전을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자서전을 왜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또 책의 구조를 알아보고 자서전을 낼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도 알아보았다. 지금까지 모두 스물 한 번의 지상강연을 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자서전을 계획하고 쓰는데 작게나마 도움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서전 쓰기 강의는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직접 쓴다는 차원에서 살펴본 내용들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글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만 제대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들을 위한 강의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글을 전혀 쓸 줄 모르거나 글 쓰기에 도통 자신이 없는 분들은 어떻게 자서전을 내면 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반대로 한 단계 올려서 적어도 글을 자기 마음대로 쓸 줄 아는 준 프로 이상의 글 고수들이 남의 자서전을 써줄 수 있도록 강의해 볼 예정이다. 이것을 ‘대필(代筆)’이라고 하거니와 만약 대필작가의 세상이 궁금하거나 아르바이트나 직업으로 대필작가가 되고자 하는 글 고수들이 있다면 앞으로의 강의에 관심을 가져 보기 바란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전 세계 10대 사망원인 중 4위에 오른 질환은 무엇일까? 바로 세기관지염과 폐렴 등 하기도 감염이다. 국내 통계청에 따르면 폐렴은 2020년 국내 사망원인 3위를 기록했다. 2007년 폐렴이 국내 사망원인 10위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암과 뇌혈관질환은 의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망 확률이 점차 감소 추세인 반면, 폐렴 사망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폐렴 사망률의 급증은 빠른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70세 이상의 노년층 환자에서는 폐렴 사망률이 매년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으며 노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또 기대수명이 점차 길어지면서 폐렴에 의한 고령층 사망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고령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 중인 만큼 고령층에서 더 높은 발생 빈도와 사망률을 보이는 노인성 폐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사회의학적 문제로 이어진다. 폐렴과 관련한 건강보험 급여 비용 및 65세 이상 폐렴 입원 환자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치료 기간이 길고 다른 합병증이 동반될 위험이 큰 만큼 환자뿐만 아니라 주위 가족들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만성질환자에 더욱 위험한 폐렴 이렇듯 폐렴은 위험성이 매우 큰 질환인데, 중요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폐렴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등에 의해 세기관지 이하 폐 조직에 염증이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이다. 폐렴의 전형적인 증상이 발열, 기침, 가래, 몸살 등 감기와 유사하다 보니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노인에서는 젊은 폐렴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급성 호흡기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다 보니 폐렴을 알아채기가 어렵고 진단 및 치료가 매우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호흡기 증상 없이 입맛이 떨어지고 식사를 제대로 못 하거나 기운이 없거나 대소변을 못 가리고 헛소리를 하는 등 막연하고 뚜렷하지 않은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단순히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고 오인하기가 쉽다. 이에 따라 병원에 내원하여 폐렴이 진단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며,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쳐 급격히 악화되고 사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노인을 보살피고 있는 보호자는 어르신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 급성 호흡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더라도 병원 진료를 받아보도록 하는 것이 좋다. 특히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은 폐렴에 더욱 취약하므로 더욱 주의해야 한다. 만성질환자가 폐렴 진단을 받으면 중증 폐렴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으며, 폐렴으로 인하여 기존의 기저질환이 악화될 우려도 높다. 일례로 천식과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의 폐렴 발병률은 일반 성인에 비하여 7.7~9.8배, 심혈관질환자는 3.8~5.1배, 당뇨병 환자는 2.8~3.1배 높았다. 노인성 폐렴의 위험인자로는 만성 폐질환, 심장질환, 알코올중독, 70세 이상 등이 있으며, 요양원에 재원 중인 경우에도 폐렴 위험도가 1.8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젊은 환자와 달리 노인성 폐렴의 경우, 원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흡인성폐렴이다. 흡인성폐렴이란 구강 분비물이나 위에 있는 내용물 등 이물질이 기도로 흡인되면서 폐에 염증이 발생하는 폐렴을 말한다. 특별한 지병이 없을지라도 노인에서는 자는 동안 무증상 흡인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고 이러한 것이 폐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뇌혈관질환이나 퇴행성 뇌 신경계 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들의 경우에는 연하 곤란과 기침 반사의 저하가 동반되어 있을 수 있어 흡인성폐렴의 위험성이 매우 높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구강위생에 더욱 신경 써야 하며, 경구 식사 시 사래가 걸리는 빈도가 잦아진다면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노인성 폐렴 예방하기 그렇다면 노인성 폐렴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노인성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면역기능이 떨어지지 않도록 건강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구강위생을 철저히 하고 영양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폐렴 예방 대책이다.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은 물론이고, 습도와 온도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기저질환으로 인하여 거동이 어렵고 침상 생활을 해야 하는 노인은 흡인의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되므로 더욱 주의해야 한다. 침상 생활 시 완전히 누워 있기보다는 몸을 반쯤 일으킨 상태를 유지하여 위 내용물의 역류 및 흡인을 최소화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식사 전후에는 한동안 눕지 않고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중추신경계 질환이 있는 환자에서 지속적으로 사래 걸리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코위영양관을 삽입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의료진과 상의해보아야 한다. ◇예방접종이 무엇보다 중요 노인성 폐렴의 위험을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예방접종이다. 예방접종은 미생물의 병원성을 죽이거나 약하게 만든 뒤 인체에 투여하여 항체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노년기에 백신을 통한 예방접종은 감염병 발병, 합병증 발생 및 사망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가장 중요한 예방접종은 인플루엔자 백신과 폐렴구균 예방 백신으로, 65세 이상에서는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두 가지 백신을 모두 접종 받아야 한다. 폐렴구균의 침습적 균혈증의 경우 노인에서의 사망률이 약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65세 이상에서는 반드시 폐렴구균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외부 활동 및 보건소, 병원 방문이 줄어들면서 65세 이상 고령에서의 23가 폐렴구균 백신 접종률은 2019년 약 66.4%에서 2020년에는 약 44.3%로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우려된다. 건강한 65세 이상 고령자는 23가 백신을 1회 접종하거나 13가 백신과 23가 백신을 1년 이상의 간격을 두고 각각 1회씩 순차 접종을 받아야 한다. 또 18세 이상의 만성질환자(만성 심혈관질환, 만성 폐질환, 당뇨병, 알코올중독, 만성 간질환 등)나 면역저하자(뇌척수액 누수, 인공 와우 삽입 환자, 기능적 또는 해부학적 무비증 환자 포함)는 13가 백신과 23가 백신을 각각 1회씩 순차 접종을 하도록 권고한다. 따라서 과거에 이미 13가 백신을 접종한 적이 있더라도 23가 백신을 추가 접종해야 하며, 예전에 폐렴구균에 감염된 적이 있더라도 폐렴구균 백신 접종은 받아야 한다. 단, 65세 이상 연령에서 23가 백신을 이미 1회 접종했다면 추가 접종이 필요하지는 않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일지라도, 특히나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는 예방 접종을 반드시 받아서 폐렴 발생의 위험을 줄여야 한다.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글 : 곽세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용인세브란스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자료제공 :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건강검진센터
설총의 문장력과 깊은 학문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 ‘화왕계’를 바탕으로 제작한 창작극 ‘꽃향기 달빛타고’가 월정교 특설무대에서 첫선을 보인다. 교촌 홍보관 뒷골목에는 지역미술인들의 작품이 인쇄된 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신화의 숲 계림에서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 이야기가 샌드아트 공연으로 펼쳐진다. 경주의 대표 야간 문화콘텐츠 ‘2022 경주문화재야행’이 오는 30일부터 10월 2일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 신라문화와 조선 시대의 문화가 병존하는 교촌한옥마을 일원에서 열리는 것. 경주문화재야행은 경주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재 야간문화 향유 및 체험 프로그램으로 2016년 문화재 활용사업으로 처음 선정돼 7년째 경주문화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은 오랫동안 보존에만 치우쳤던 전통문화의 영역에도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보존 우선 정책 속에 빠져 있던 문화재들도 이제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문화재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다. 그동안 전통문화 보존과 현대화를 주도해 온 경주시와 경주문화원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소명에 발맞춰 지난 2016년부터 매년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경주문화재 야행(夜行)사업’을 진행해 오고있다. 지난해 경주문화재야행은 ‘2021 문화재 활용 우수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적인 관심을 끌며 지역을 대표하는 야간문화축제로 성장하고 있다. 경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신라문화와 조선 문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2022 경주문화재야행’은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평가를 바탕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새로운 야행 모델을 제시, 역사문화 콘텐츠를 새롭게 해석한 경주문화재야행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세부적으로는 △야경-밤에 빛나는 월정교, 세계문화유산 밤을 품다 △야로-교촌 문화재 나들이, 사랑의 징검다리 △야사-창작극 ‘꽃향기 달빛타고’, 경주 최부자의 품격, 신라놀이 문화체험, 십이지야 소원을 부탁해, 오자미놀이 퀴즈대회 △야화-교촌 아트갤러리, 달·별 관측체험, 야행포토존, 100년 전의 경주를 만나다 △야설-코스프레, 신라인을 만나다, 인형극 ‘김현감호 이야기’, 신화의 숲, 교촌 골목 버스킹 △야식-교촌야식, 한국의 명주 ‘교동법주’ △야시-교촌 공예장터 △야숙-한옥숙박체험이 진행된다. 특히 올해 진행하는 한옥숙박체험 ‘야숙’은 다양한 계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경 경주향우회를 대상으로 고향 경주로 초청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고, 애향심 고취 및 지역 향우 간의 유대감 형성을 목표로 마련됐다. 경주문화원 측은 “‘유서 깊은 역사와 달빛에 물든 신화’를 풍요롭게 간직하고 있는 만큼, 경주는 문화재에 스며든 신화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과 꿈을 자극하고 있다”면서 “잠자는 문화재를 ‘살아있는’ 문화재로 끌어내는 ‘경주문화재야행’은, 곧 경주의 신화들을 깨우는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2 경주문화재야행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 다채로운 꿈을 펼치는 역동적인 현대인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면서 “노인, 장애인, 한부모가족 등 사회적 약자들도 불편함 느끼지 않고 함께 경주문화재야행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경주문화재야행 스탬프 투어가 함께 진행된다 ‘신라의 숲’ ‘인형극 김현감호 이야기’ ‘교촌 아트갤러리’ ‘십이지야 소원을 부탁해’ ‘달·별 관측체험’ ‘사랑의 징검다리’를 체험하고 스탬프 6개를 모두 받으면 경주문화재야행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1일 250개 한정. 경주문화재야행에 대한 문의는 경주문화원 홈페이지(http://www.gjnighttrip.or.kr) 및 대표전화(054-743-7182)로 하면 된다.
오이타 아시아 조각전 수상작 전시회가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내 전시실에서 10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올해 경주와 함께 ‘2022 동아시아 문화도시’에 선정된 일본 오이타현이 경주시를 위해 마련한 것으로 동아시아 신진 조각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전시 작품 중에는 제7회 조각전에서 대상을 받은 우리나라의 최일 씨의 작품과 14회 조각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모준석 씨의 작품이 포함돼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태국, 인도 작가들의 작품 10점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아시아 신진 조각가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일본 오이타 아시아 조각전은 오이타현은 50세 미만의 아시아 국가 및 지역 거주자는 누구나 출품가능하다. 1992년 첫 개최 이후 올해로 16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공모를 통해 격년제인 비엔날레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